방 안에는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코로 새근 거리는 소리, 비염을 앓아 힘이 들어간 소리, 입으로 쉬는 간헐적이고 거친 소리...

평소라면 지나쳤을 소리들, 하지만 숨소리 외에는 적막만이 방을 채우고 있고, 어느새 이 볼썽사나운 협주는 앉아 있는 나의 솜털을 일으켜 세울 정도로 나의 모든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방 안은 닫혔다.

 

천장은 눈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고 벽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다. 창문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도 평범한 방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니, 어쩌면 살면서 누군가 나에게 수없이 '이 방' 처럼 되어있는 것이 평범하다고 말해준 것인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자면 너무나도 평범하다. 그러나,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살펴 보고만 있자면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괴리감. 방 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것 뿐이다. 방 안에는 이상한 괴리감이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고, 나는 본능적으로 이 방이 닫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 뿐. 

 

아 참, 그리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 

 

옆에는 나와 똑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줄로 세워저 앉아 있는지, 원형으로 모여 앉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내 옆에 나와 같은 의자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것만을 안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모두 비슷하다.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비슷하다. 내가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을 힐끔거려 알아낸건 이것 뿐이다.

 

갑갑하다.

 

눈만을 돌려 사람들을 쳐다보았을 뿐인데 왠지 방 안이 확 좁아진 느낌이다. 갑갑하다. 답답하다. 심장이 갑자기 뛰어 나와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손바닥에 땀이 난다. 바지에 닦고 싶지만 움직이면 주목받을까봐 두렵다. 조용히, 마음 속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다.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온 몸에 혈액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턱을 조금 올려본다. 아무도 눈치를 채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알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눈을 돌려 사람들을 본다.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굴이 아닌 것 같다. 마치 매우 잘 만들어진 가죽 가면처럼,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 앉아 있는 몸뚱아리에 붙어 있지만 정말 자연스럽지 못하며, 가면 안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수많은 의자위의 수많은 가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눈구멍 속의 눈동자들만이 차갑게 빛나고만 있다. 찬찬히 앉아있는 사람들을 거쳐가며 움직이는 눈동자, 한 대상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동자,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다른 사람의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깜짝 놀란다. 마치 누가 나의 옷 속에 얼음물을 부어버린 것처럼. 남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불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마치 나의 나체가 보여진 듯  수치스럽다. 더불어 나의 소중한 무언가가 빼앗겨 버린 기분이 든다. 마치 나만이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된다는, 내가 당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해야된다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꿈틀거린다.

 

방 안은 닫혀있다. 고개를 들어 남들을, 저 가면 속의 눈동자들을 바라본 순간 다시는 고개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고개가 올라간 이상, 나 또한 그들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방에는 숨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앉아서 고개를 들은 채로 가면 속의 눈동자만 움직이고 있다. 나 또한 가만히 앉은 채로 열심히 눈동자만 움직인다.

 

방 안은 닫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