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은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짐을 나르고 정리하는데 하루를 썼고 이곳의 길을 익히는데 하루를 썼고 이곳의 풍경을 익히는데도 하루를 썼습니다. 그리고 내가 본격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이토록 재미없고 따분한 내 인생의 서막을 글로 남겨 지금까지 쓰게 해 준 그 여자를 처음 만나 그 여자를 생각하는데 하루를 썼습니다. .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이런 기분은, 이런 감정은, 어릴 때 사랑했던 선생님을 처음 봤었을 때 이후론 전혀 느껴본 적 없었던, 그리고 느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감정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짐을 다 내리고 마당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 그 여자가 찾아왔죠. 그 여잔 새로 온 것을 환영한다면서 먹을 것 몇 개를 주고 갔습니다. 그리곤 자기는 옆집에 살고 있으니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자고도 말했고요. .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저는 그 여자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 여잔 다른 여자들처럼 눈 화장을 진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본 눈 중에선 최고로 아름다운 눈을 가졌고 아기자기한 코와 입은 여자의 얼굴과 어찌나 조화를 잘 이루던지요! 단정하게 자른 머리칼은 신이 주신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그 여자가 입고 있던 빳빳한 재질의 아름다운 재킷은 천사가 선물해 준 것일까요?

다시 글을 쓰기가 꽤 어려웠습니다. 특히 그 여자에 대해 묘사한 부분을 적고 난 뒤 저는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내 글 솜씨가 어찌나 형편없는지 그 여자의 아름다움을 절반이라도 종이에 담질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제가 가장 잘하는 그림 그리기로 그녀를 표현해보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날 저는 구겨진 몇 십 장의 종이 속에 파묻혀 우울한 기분들과 싸워야 했는데 문득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어느 예술가도 그 여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얼마 뒤 잠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싫습니다. 외모며 성격이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타고난 찌질이로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걸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래서 그런지 친구도 거의 없고 다른 사람들과 말해본 경험도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가끔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올 때 대답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인사를 받아주는 것과 간단한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 뿐.

 

그 여자에게 어울리는 호칭을 하루 종일 생각해보았습니다. 여자라는 호칭은 너무 일반적이고 여인이라는 호칭은 너무 늙어 보입니다. 여신이라는 호칭은 어딘가 천박하게 들리네요. 그래서 저는 천사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 천사. 천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대가 웃을 땐 정말 천사 같다니까요. 너무 아름다워요. 내 한평생 그런 아름다운 웃음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대의 웃음만 보면, 그러니까 그대가 나와 가끔 마주쳐 인사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보이는 미소를 상상하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그대는 정말 아름다워요.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글자 따위로는 절대 표현하지 못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어느 잘난 작가라 할지라도 그 웃음은 표현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난 그저 그대가 아름답고 웃는 얼굴은 더욱더 아름답다고만 적겠어요.

 

오늘은 천사에게 그대의 그림을 그려도 되겠냐고 물어볼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사의 그림을 그리는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저도 제가 천사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저 천사를 보고 싶은 것뿐입니다. 세상에 나만큼 찌질한 사람이 있을까!

 

오늘은 정말 황홀한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천사에게 다가가 내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수 없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천사는 웃으면서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대답했고 내 집 앞마당에 있는 흰색 의자에 앉았습니다. 아 천사여. 그대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대의 눈을 쳐다볼 수도 없었답니다. 그림 그리는 것 따위는 잊어버렸어요. 난 멍하니 그대의 얼굴을 보았답니다. 천사가 자신의 그림이 완성되면 보여 달라고 말했기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억을 되살려 그리고는 있지만 너무나 어렵습니다. 천사의 얼굴을 떠올릴수록 내 가슴이 미어지는걸요. 천사. 그대는 너무 아름다워요.

 

제가 몇 달 동안 천사인 그대와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 뒤 내린 결론은, 그대는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대는 너무나 착하고 선하다는 것, 그대는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이에요. 알아요. 섣부른 판단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인답니다. 아 참. 어젯밤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자고 있던 도중에 깨어났는데 이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저란 존재와 제가 살아온 것, 그리고 제가 천사를 만난 것까지 말이에요. 특히 천사인 그대를 처음 만나 알아가게 된 것은 정말 짧은 꿈속의 한 장면처럼 다가와 저는 너무나 두려웠답니다. 그대가 제 꿈속 상상에 지나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공포에 휩싸여 몇 시간 동안 다시 잠들지 못한 채 가만히 있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거실로 갔는데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이 제가 그린 그대의 그림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그제야 그대가 정말 존재한다고, 천사가 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답니다.

 

. 오늘은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제가 그대 그림을 그대에게 주기 위해 그대에게 다가갔을 때 그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대답했고 제 그림 솜씨를 칭찬해 주었지요. 그리곤 내일 같이 밥을 먹자고도 했고요. 맙소사 이제 진짜 현실인가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그대가 같이 밥 먹자고 한 것이 맞는 거겠죠? 내가 헛것을 들은 건 아니겠죠? 오늘 밤은 못 잘 것 같아요. 잠들려면 머릿속이 텅 비어있어야 하는데 오늘 밤 내 머릿속은 그대 생각으로 가득 찰 테니까요.

 

 

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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