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채널

정말 '공부' 자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함?

뭐 교과서 공부든, 어떠한 학문이든, 아니면 자기 삶 자체든, 그냥 뭘 배운다는 것이라면 다 ㅇㅇ.


즐거움?

무엇 때문에 하게 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지속하고 있음?

앞으로 하고자 하는 공부가 있음?

더 잘 하고 싶은 분야가 있음?


,


난 뭔가를 배우는 걸 굉장히 좋아함. 이건 정말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딱히 머리가 좋진 않은데, 뭐... 이런 건 그거랑은 상관 없나 봐. 뭐 하나 새로 알 때마다 너무 기뻤음. 나는 정말 학교를 공부하고 싶어서 갔었다.

문제는 아는 것만 좋아하고, 그걸 반복해서 학'습'하는 데에는 너무 익숙치 않아서 걸려 넘어진다는 것이었음.


이런 데다 쓰려니 좀 낯부끄럽긴 한데, 나 과학 꽤 좋아했었음. 그리고 아마 지금도... 나름 좋아함. 뭐 과학만 좋아하는 건 아니긴 한데, 유치원 가기 전부터 해서 가장 오랫동안 빠져 있었던 학문임. 유딩 땐 꿈이 의사였고 그 후부터 쭉 과학자였고, 그게 바뀔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음.

그런데, 그걸 받쳐줄 '수학 실력'이 한참 모자라서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어야 할 판임. 정말이지 수학은 초등학생 때부터 바닥을 쳤음. 솔직히 지금도 받아올림 있는 식 암산하려면 손가락 써야 해. 한국인이라는 전제 하 초등학생이 나보다 수학 잘 할 걸. 뭐 그 땐 그냥 무시했음. 수학을 못 하든 말든 뭔 상관이야. 난 과학자 할 거야. 하면서. 뭣도 몰랐던 거지.

중1 때 중간고사 점수 폭망했음. 안 되겠다 싶어서 잠깐 학원을 다녔는데, 오히려 점수가 떨어지더라고? 역시 많이 안 한 탓인가 싶기도 한데, 주위에 학원 안 다니는 다른 애들 대다수도, 나만큼 못하진 않더라고. 우리 학교 수학이 어렵다고 하긴 했지만, 반타작 하기조차 어렵더라.


아니아니 단순히 저것 때문이면 그래도 좀 낫겠지. 그냥 어떻게든 공부해내면 되잖아. 그럼 뭐, 이 글 쓸 필요도 없었을 거고.


전에 한 번 이런 글을 본 적 있었음. "과학을 진로로 정하고자 할 때는 네가 과학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과학을 좋아하는 건지 잘 생각해 보라" 고.

그걸 읽은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거 못 본 체하고 싶었음. 생각해 보니 내가 과학 책은 많이 읽어 왔어도 직접 과학을 대면한 기억은 없었거든. 과학적 지식은 알아도 그것에 맞춰서 실험해본 기억도, 문제 풀어본 기억도 없는 거야.

심지어 갈수록 과학이, 거의 수학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여기저기 살펴보니 계산하고 식 쓸 것들이 차고 넘치더라? 물리는 개념은 좋아하면서 나오기만 하면 점수 바닥 치고. 과학을 하고 싶은데, 일단 하고 싶은데, 이때까지 그것만 보고 왔는데 내가 해 온 게 아무튼, 뭔가 실제 '과학'이 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에 충격받았음. 나는 과학을 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일단... 과학을 하고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순환논증이었다 젠장. 내가 '진짜 과학'을 좋아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했는데... 확답을 못 하겠더라.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애들은 이미 영재원 들어갔던가, 어디서 상 받아 오거나, 최소한 학교 영재반에라도 들어가서 뭘 하고 있더라.

현타 왔음. 내가 뭘 하고 있던 건지 감이 안 잡히더라. 내가 뭘 좋아하는 건지도.

4학년 때였나 어떤 분야의 과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답시고, 잠깐 과학자 때려치고 화이트 해커로 전향(...)했던 적은 있었음. 그런데 이건 그거랑은 달랐다.


생각해 봤음. 나는 뭐, 그림도 그럭저럭 그리고, 악기도 그럭저럭 다루고, 공부도 그럭저럭 하고, 글도 그럭저럭 쓰고, 책도 그럭저럭 읽고, 컴퓨터도 그럭저럭 다루는데... 그냥 그게 다 허상 같았음. 그저 쓸데 없는, 보여주기 식의, 현학적인, 뭐 하나 건지기 정말 애매한, 재능이라고도 부르기 애매한 재능이라 해야 하나? 차라리 나머지 걸 아주 못 해도 되니까 하나라도 아주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니면 최소한, 그 '못 하는 것'이 수학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었음.


뭐 그렇게 중1 때 과학 포기했다. 과학 공부 포기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진로를. 아예 컴퓨터 쪽으로 나가야겠다 마음을 잡고 학원에 다녔는데, 솔직히 엄청 안 맞더라고. (물론 코딩은 나중에 필요하긴 하겠는데, 하라면 하긴 하겠는데, 도저히 직업으로 삼을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 때부터였나? 누가 나한테 장래희망 뭐냐고 물어볼까 봐 엄청 겁났음. 그 실력으로 컴공한다고? 그 성적으로 화학한다고? 그런 소리 들을까 봐 늘 쫄아 있었음.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때가 방사능, 원자, 양자역학 등등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 또 과학에 꽤나 빠져 있던 시기기도 했음. 심지어 중2, 중3땐 과학동아리 부장까지 하고 그랬다. ㅋㅋ 미련 못 버린 거지. 특목고 관련 유인물 날아오면, 차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자세히 훑어보고 그랬으니.


그러다 일 생겨서 중3 말엽에 갑작스레 학교 나왔음. 검정고시로 중졸 땄고. 교환학생(J-1비자)신분으로 미국행 결정났음.


정말 놀랍게도 여기서 다시 과학고 도전할 기회가 있더라. 엄밀히 따지면 영재고 형식에 가깝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번 12월에 원서 넣기로 했음.

나한텐 거의 기적 수준이었음. 한국도 아니고 타국에서 과학고를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다는 게.

다만 솔직히, 난 여전히 '엄청나게' 켕김. 다른 사람들 면전에는 이렇게 말 못 할지도 모름. 아니 못 함. 너무 쪽팔려서. 아! 내가 기본적인 실력이라도 뭣도 있으면 최소한 원서 쓰거나 면접 볼 때 쪽팔리진 않을 것 같은데, 나 맡은 유학원한테도, 지금 SAT 가르쳐 주는 학원에도, 부모님한테도 벌써부터 미안하고 난리다. 괜히 저지른 것 같다에서 그래도 좋아하는 일 끝까지 해 볼래까지, 하루에도 무거운 추가 몇백 번이고 양옆으로 진자운동 하신다. 실감이 잘 안 난다고? SAT 수학 680점 받은 한국 고1을 상상해 보면 된다.


아무튼,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있음. 나는 과학이란 것을 고등 수준으로 공부하고, 직업으로 삼을 자격이 있긴 한 건가? 나는 그런 과학을 과연 즐길 수 있을까? 그냥 예체능이나 할까(물론 엄청 고되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니 아직까지 고민하지.)? 아니면 그냥 사회 쪽으로 갈까?

머리는 아직 복잡함. 모르겠다. 해 보면 알겠지. 일단 해 보면 코가 깨지든 두개골에 구멍이 나든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두서 없이 썼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두서없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지금은 여기까지 왔네.

이거 쓸 시간에 수학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힘써보는 게 실질적으로는 더 유익할 테지만..., 아몰랑. 학챈 온 김에 써 본다. ㅋㅋㅋㅋ

혹시 다 읽은 사람 있으면 박수쳐드림. 기지개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