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dgmbc.com/article/A_JWr7OFkeuPhE

영덕 민간인 학살 관련 뉴스임..


울를 보고 마 사객을 하는데,
그래가 다부 쪼깨가지고 집으로 돌 갔죠

구디 파났는데 피는 개락이 되고
신체는 붜 가지고 머 부패 대가지고
거 엉마이 대 있고 그 야기 하지 마소

70년 지나논디도 거 안 생생하거든


(시신을 찾으러 간) 우리를 보고 막 사격을 하니

그래서 다시 쫓겨서 집으로 돌아 갔지요.

(다시 가보니) 구덩이를 파놓았는데 피가 흥건하고

신체가 부어서 뭐 부패가 되어서

그게 엉망이 되어 있고 그 이야기를 하지도 마세요.

70년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거든


그래 어머님은 하는 소리가
늘 감자 캐러 갔는데
그 질로 가가 아와딴 소리는 마이해


그래서 어머님께서 하시는 소리가

늘 감자 캐러 갔는데

그 길로 가서 안 왔다고 소리를 많이 하셨어요


그때 당시는 머 보돈맹도 머 그넌거도 했고
돌아가시고 인자 걸 이유를 삼았대


그때 당시는 무슨 보도연맹도 무슨 그런것도 (아무 말 안) 했고

돌아가시고 이제 그것을 이유로 삼았더군요


죄라도 있시믄 죽었이먼 문제가 틀리는데
아무 죄도 없는데 와가 죽여뿌이 억장이 팍 무너지드라


죄라도 있어서 죽었으면 문제가 다른데

아무 죄도 없는데 와서 죽여버렸으니 억장이 팍 무너지더이다.


===


1947년부터 1950년 5월까지

좌익 색출을 위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군경토벌로

수많은 무고한 민간 희생자 발생

(김순규, 해방 후 경상북도 영덕군의 군경토벌 작전과 민간인 학살, 대구사학회, 2019)

1950년 1월 영덕군 지품면 송정리,원전리 학살


전쟁 중 민간인 학살

1950년 7월 미군 영덕군 축산면 기암리 민간인 학살

1950년 7월 국군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 보도연맹 학살


해방 직후 미군정, 이승만정부,

북괴 김일성, 인민군, 국군, 미군 등에 의해

민간인 학살이 일상이던 1945~1953년의 한반도 ㅜㅠ 


억울한 넋들이 얼마나 많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