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제가 완전히 사라진걸 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함. 갑오개혁으로 공식적으론 폐지됐지만 마을단위에선 여전히 어느 집은 양반이고 어느 집은 상놈이다가 각인됐는데, 일제랑 625거치면서 대다수가 못살게되고, 기회 잘 잡아서 출세한 사람 생기고, 지역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신분제가 희석된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앞에 두 사건이 없었다면 여전히 신분을 알게모르게 따질 거 같음. 아픔의 시대가 낳은 다른 순기능이 있을지, 내 생각이 맞는지 얘기나누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