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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이플랜드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아류작들. 그중에서도 우리의 눈길을 끈 건 옛날 메이플의 3D화를 시도한, 일명 리얼 메이플이었다.

 

 리얼 메이플은 방대한 볼륨과 그에 걸맞게 높은 퀄리티로 오픈 베타 시절부터 여러 게이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정식 출시 후엔 인터넷 방송에서의 유행에 힘입어 동시 접속자 수 10만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건, 게임 출시 1주년이 되던 날의 일이다.

 

 예정대로 자쿰 업데이트가 진행됨과 동시에, 게임에 접속 중이던 플레이어들 모두가 게임 속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빨려 들어갔다… 그것 외에 달리 적합한 표현을 찾기란 힘들었다. 마치 X이나 X 호라이즌에 나온 것처럼.

 

 탈출하기 위한 조건은 현시점 최강의 보스인 자쿰을 잡는 것. 그마저도 확실한 것은 아니고, 단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깨진 글자 퀘스트를 통해 추측할 뿐이었다.

 

 『○?????

 레벨 1 이상

 

 귙겒잆겗?뷩겎?

 랬윗적힙났텝텝엥땀났커깃뒈헷

 쮀카똬바풰똬쫘풰붸느졔궤

 간섟.

 

 퀘스트 요약:

 자쿰 처치 0/1

 

 보상!!

 ?????(서버 내 전원 적용)

 

 게임 속 세계에 갇히고 나서 일주일이 흘렀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고,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힘을 합쳐 정체불명의 퀘스트를 깨고 현실로 돌아가자는 공략파.

 

 메이플 월드에 남길 바라며 공략파를 방해하고 나서는, 통칭 반달.

 

 그리고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세력으로.

 

 내 입장을 말하자면, . 솔직히 지금 당장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여기 영영 머무를 수는 없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 선배!”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긴 생각에서 벗어났다. 내가 말했다.

 

 “또 여기까지 나와 있었어? 많이 기다렸지?”

 

 “아녜요. 저도 금방 나왔어요.”

 

 “거짓말치시네.”

 

 “거짓말 아니그든요-”

 

 하루 일과인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같은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

 

 하늘색 리린 헤어에 졸린 눈을 현실로 옮기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그대로 현실상에 구현한 듯한 얼굴. 얇은 팔뚝이 다 드러나는 연갈색 숄에는 식물을 본딴 패턴이 수놓아졌다.

 

 그녀는 나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한 학년 후배에, 같은 동아리(만화연구부) 멤버이며.

 

 “얼른 가요! 오늘 저녁은 모듬 버섯 전골이에요!”

 

 나에게 이 게임을 함께하길 권한 장본인이다.

 

 2.

 이곳 메이플 세상에선 죽어도 부활할 수 있다.

 

 다만 부활의 대가로 무언가를 잃게 되는데, 고작 경험치만의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면 또 무엇을 잃는가?

 

 바로 기억이다. 뻔하디 뻔한, 그러나 질리지는 않게 잔인한 이야기. 죽으면 일정량의 기억을, 정확히 말해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

 

 누군가는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잃고, 누군가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다. 바깥 세상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잊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공략파 인원들이 혈안이 되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것도 그래서였다. 더 이상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쾅쾅쾅!

 

 선생님들요, 안에 있는 거 다 압니다. 저만 급한 게 아니라요, 먹여 살려야 할 딸아이를 두고 온 아저씨도 있다구요, ? 다들 어떻게든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중이다 아닙니까!

 

 잠시 정적. 그리고 한숨.

 

 오늘은 이만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쇼.

 

 끼익…….

 

 “……그 사람들 갔어요?”

 

 “, 이제 나와도 돼.”

 

 잊을 만하면 나와 후배가 사는 곳을 찾아와 최전선에 서달라고 부탁-을 방자한 강요를-할 만큼, 그들은 필사적이었다.

 

 우리를 끌어들이지 못해 왜 저렇게 안달인지, 이유야 간단하다. 우리의 스펙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둘 다 레벨 100을 넘어가는 데다가, 장비도 모두 엔드급 풀셋. 직업도 각각 다크나이트와 프리스트로, 보스전에서는 필수 전력이다.

 

 그렇게 높은 레벨로 나는…….

 

 마을 근처 초보자용 사냥터에서 달팽이나 슬라임 정도를 잡고 있다.

 

 “오늘은 안 나와 있어도 돼.”

 

 집을 나서기 전, 나는 후배에게 당부한다.

 

 “알았어요,” 라고 그녀는 답하지만, 오늘도 마중을 나와 있을 걸 안다.

 

 ‘귀찮게 일부러 안 나와 있어도 되는데,’ 그러면서도 역시 나와줬으면하고 기대하는 내가 있다.

 

 하루가 끝나면 마을 북서쪽 어귀의 솟아오른 나무로 가는 길, 사람들이 보통 북쪽 포탈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만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 단 한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3.

 놀라운 사실 하나.

 

 주황 버섯에게는 사실 이빨이 있다.

 

 다만 그걸 공격용으로 쓰진 않고, 몸통박치기를 한 다음 먹이가 쓰러졌을 때 아가리를 쫙 벌리더라.

 

 “꺄악-!”

 

 “진정해. 너 쟤한테 물려도 흠집도 안 나.”

 

 후배는 늘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런 한편으로 살아 움직이는 몬스터를 무서워해서, 공략파 원정대에 참여하는 건 고사하고 마을 바깥 필드에 나가는 것도 힘들어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를 데리고 가끔 이렇게 피크닉을 나왔다. 집 아니면 일터인 단조로운 생활 패턴에 정기적인 환기는 필수적이다.

 

 “와아.”

 

 아름다운 숲길. 자그마한 탄성. 에스코트의 보답으로는 충분했다.

 

 “선배, 저기 봐요. .”

 

 그녀는 네 마을 중 엘리니아를 유독 좋아했다.

 

 페리온은 너무 황량하고, 헤네시스는 너무 복작거려. 커닝시티는 뭔가 쓸쓸해.

 

 우리가 엘리니아에 거처를 정한 것도 그래서였다.

 

 “, 페어리들이 날고 있어요. 예쁘다아.”

 

 그녀는 엘리니아에서 흐르는 BGM을 좋아했다.


 이제 그 음악은 들리지 않지만, 대신 울창한 숲 특유의 청량한 공기가 있다. 또 그녀는 까탈스러운 요정들의 독특한 문화와, 마법이 녹아든 일상과, 오르비스행 승강장에서 울리는 우렁찬 뱃고동 소리를 좋아했다.

 

 그것은 희망의 소리였다. 어쩌면, 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그녀는 엘리니아를 사랑했다.

 

 나도 이곳이 좋다. 이곳에서는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일을 마치면 돌아갈 집이 있고,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는 그녀가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별을 따다준다는 표현이 어떻게 왔는지 알 것 같았고, 그렇기에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졌다.

 

 눈에 보이고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점점 더 현실적이어서, 나는 계획을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었다.

 

 4.

 인간에게는 옷과 밥, 그리고 잠을 잘 집이 필요하다. 그건 이곳이 낮과 밤이 있는 현실인 이상 당연했다.

 

 우리는 요정에게 집을 빌렸다. 2층의 방 하나를 빌려 함께 살았다.

 

 거대한 나무의 옹이구멍을 파서 만든 딱따구리 둥지 같은 집. 울퉁불퉁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 문을 열면 유리구슬을 엮어 만든 문발이 짤랑거린다.

 

 벽에는 해독 불가능한 마법식이 적힌 오래된 종이를 발랐고, 한쪽 구석에는 집주인이 치우겠다고 말만 해둔 마법적 잡동사니들(말린 개구리나 반짝이는 가루 등등)이 쌓여 있다.

 

 그 외에는 의외로 평범하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는 이름 모를 노란색 꽃 화분이 놓였고, 큼직한 식탁 겸 책상을 비롯한 가구들은 모두 요정 장인들이 원목을 사용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침대가 있다. 나와 후배가 함께 잠드는 침대가.

 

 어슴푸레한 빛이 숲속에 차오르고 멀리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면 그날 하루가 시작된다. 나는 몬스터를 잡고 나온 부산물을 팔아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 돈을 마련한다.

 

 점심시간에는 후배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다.

 

 “어디 보자, 오늘은 장어구이인가!”

 

 메이플 월드에는 특이한 식재료들이 많다. 처음 보는 향신료에 도전했다가 혼쭐이 나기도 하고, 파랑 버섯 갓을 다져서 넣은 수프의 괴악한 비쥬얼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이곳 요리에 적응해서 이블아이 꼬리 꼬치구이 같은 것도 곧잘 먹지만.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도 장어 같은 것들은 어디서 나는지, 그것이 의문이다.

 

 내가 사냥터에 나간 동안, 후배는 보통 잡화 상점에 가서 로웬의 일을 돕거나 마르의 호출을 받고 펫을 돌보는 부업을 하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저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둘이 함께 먹는다. 오늘은 별일 없었는지, 있었다면 있는 대로, 없었다면 없는 대로 하루의 회포를 푼다.

 

 “로웬한테 들었는데, 허브가 비싸져서 물약값도 곧 오른대요.”

 

 “미리 사서 쟁여두는 편이 좋을까?”

 

 “흐흥, 그래서 미리 사뒀죠. 내일 원정대에 우편으로 부치려구요.”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차 한 잔과 함께 수다를 떤다. 성격 나쁜 요정들에 대해 약간의 뒷담을 나누기도 하고, 원정대 소식이나 무성한 소문에 관해서도 대화 소재로 삼는다.

 

 “남쪽 숲 지형이 조금씩 변하고 있대요. 이대로 패치가 계속되면, 그럴수록 나가기 더 힘들어지진 않을까요…….”

 

 이곳에는 티비도 핸드폰도 없다. 해가 지면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눈이 맞으면 내킨 김에 키스하기도 하고, 때론 함께 목욕도.

 

 “슬슬 불 끌게.”

 

 “.”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그리고 밤이 깊으면 등불을 끄고, 한 침대에서, 후배가 남몰래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다고 그녀는 운다.

 

 나는 자주 후배가 나오는 꿈을 꾼다.

 

 아직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 무려 두 학년이나 유급한 나와 여자들 사이 인맥 다툼에 휘말려 홀로 겉돌게 된 후배 둘이서, 패배자끼리 의기투합하여 게임을 즐기던 시절의 꿈이다.

 

 “틀딱 특, 유행에 둔감함.”

 

 “넌 옛날 메이플 해본 적도 없으면서.”

 

 낮에는 어두컴컴한 동방에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밤에는 피시방에서 밤을 새곤 했다.

 

 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후배와 함께인 것만으로도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항상 즐거운 꿈만 꾸는 건 아니다. 가끔은 악몽을 꾸기도 한다. 게임 속에 갇힌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반쯤 폐인처럼 지내던 후배에게 매몰차게, “따라온 내 잘못이지라고 비꼬는 꿈

 

 그런 말을 하는 건 내가 아니다. 그런 건 농담으로라도 말할 수 없다.

 

 그랬다간 후배가 엘리니아 숲이 다 잠기게 펑펑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늘 나에게 미안해했다. 모든 것이 게임을 권유한 자신 탓이라며.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얕은 잠에서 깨고 나면 내 곁에는 여전히 그녀가 있고, 차가운 새벽 숲 공기에 땀이 식는 것을 느끼며 다시금 결심하게 된다.

 

 나만이라도 원정대에 합류하기로. 나 한 명이 합류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힘을 보탠다면 혹시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은 희망으로 부풀고, 어느새부턴가 줄곧 그 희망을 품어 왔다.

 

 그녀가 나에게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곳으로.

 

 그녀가 나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자.

 

 희망은 다시 막연한 계획으로, 그리고 막연하던 계획은 점점 구체성을 띄게 되었고.

 

 그리하여 계획의 결행일이 밝았다.

 

 시간은 동이 트기 전. 나는 조심히 몸을 일으켜 짐을 쌌다. 하지만.

 

 “……어디 가요 선배?”

 

 그녀 몰래 출발한다는 계획은 초장부터 실패하고 말았다.

 

 “오늘은 조금 일찍 나가려고.”

 

 “거짓말.”

 

 조용히 나온다고 나온 거였는데, 후배를 깨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잠귀가 밝다.

 

 그녀는 잠옷 위에 망토를 두르고, 마른 풀을 엮어 만든 샌들을 신고 문밖으로 따라 나왔다.

 

 그녀는 졸려보이는 눈에 부릅 힘을 주고,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잊어버릴지도 몰라요.”

 

 무엇을 잊어버린다는 건지, 나 역시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자의식 과잉이라고는 생각해요. 그래도 만에 하나, 선배가 절 잊는다고 생각하면, 저는…….”

 

 “괜찮아.” 나는 말했다. “내가 널 잊어도, 넌 날 기억해줄 거잖아?

 

 “안 괜찮아요!”

 

 , 그녀는 내 가슴팍을 때렸다. 아무리 힘 스탯을 찍지 않는 프리스트여도, 레벨 100쯤 되면 주먹질이 맵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잘하면 나갈 수 있어. 드디어 나갈 수 있어.”

 

 나는 시간을 들여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다 잘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응? 그러니까.”

 

 등을 토닥이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녀를 고개 들게 하고,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엄지로 훔쳤다.

 

 내 품에 안긴 후배의 몸은 길고 얕게 들썩이다가 점차 잠잠해졌다.

 

 그녀가 마침내 꺼낸 말은, “싫어요.” 였다.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싫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지만. 선배가 절 잊는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말했다.


 “선배를 잃는다고 생각하면, 그게 더 싫어요.

 

 믿고 기다려줄 수 없냐는 내 말에, 그녀가 말했다.

 

 “저도 데려가요.”

 

 5.

 “돌아왔다.”

 

 선착장에 닿기도 전부터 코를 간지럽히는 짙은 녹음의 냄새.

 

 오랜 비행 끝에, 드디어 엘리니아였다.

 

 자쿰 공략 실패 이후, 원정대원들은 짧은 휴가를 가지기로 했다. 나는 휴가가 결정된 즉시 엘나스를 떠나 오르비스로 가서 엘리니아행 티켓을 끊었다.

 

 용무는 하나뿐이다. 이곳 엘리니아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너를 기다린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강렬하게, 맹목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이건, 북쪽 숲 어귀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릴없이 엘리니아 경치를 바라보던 중의 일이다.

 

 “안녕하세요.”

 

 너를 기다리던 중에, 나는 내 옆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누굴 기다리는 건지, 나만큼이나 오래 앉아 있었다.

 

 “그쪽도 바깥에서 오셨나? 아하, 저랑 같네요. 누구 기다리세요?”

 

 “.”

 

 “여긴 경치가 참 좋아요. 원래 세상에서는 꿈도 못 꿨을 텐데.”

 

 “.”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텐데. 불편하죠, 여긴 그런 것도 없으니까.”

 

 “네에.”

 

 대답이 박한 그녀를 보며 필시 말수가 적으리라 생각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왠지 모르게 용기 내어 말을 걸게 된다. 전에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나는 왜 갑자기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까? 왜 저 사람에게 이토록 귀찮게 구는 건지.

 

 그것을 모른 채로, 나는 너를 기다린다.

 

 언제 오는지, 누군지도 모를 너를 이곳에서 줄곧.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 단 한 가지 암묵적인 규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