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이 일본 인사들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결코 사죄 따위가 아니었다.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군이 최전선에서 싸우던 시절이었던 과거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몹시 달갑지 않았기에
방중하는 일본 인사들이 계속해서 과거에 대해 사죄하는 것에 대놓고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1961년 1월 24일, 일본 사회당 의원 구로다 히사오와의 대담에서도 모택동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마오쩌둥 외교문선" 460~461쪽]

"난고 사부로 씨와 만났을 때, 그는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사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네들은 그런 견해를 가지면 안 됩니다. 일본의 군벌이 중국의 대부분을 점령한 것이야말로 중국 인민을 교육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국 인민은 각오를 품고 단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됐더라면 나는 지금도 옌안의 동굴에 틀어박힌 신세가 되어서, 지금처럼 베이징에서 경극을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약 '감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나는 차라리 일본의 군벌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1964년 7월 10일, 일본 사회당 사사키 코조와 구로다 히사오 등 사회당 방중 대표단과 만났을 때의 대화가
"마오쩌둥사상 만세(도쿄대학 근대중국사연구회 역)"에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일본어 번역에서 "침략"으로 번역된 모택동의 말들이
원문에서는 '진공' '점령' 등의 단어로 에둘러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일본 측이 사용하는 '침략'이란 단어 자체에 속죄의식이 담겨 있기에, 모택동은 이를 극구 피했던 것이다.
사사키 코조도 계속 사죄를 거듭하는 통에, 마침내 모택동은 대장정 시절의 일까지 언급한다.


"우리에게 남은 병력이 얼마나 됐겠습니까? 30만에서 2만 5천으로 줄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왜 일본 황군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명확하지 않습니까?
황군의 진공으로 우리가 황군과 싸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운 좋게 다시 장개석과 합작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2만 5천의 군대가 8년간 싸우면서 120만 대군이 되어 인구 1억의 근거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런데도 황군에 감사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까?"


이 정도까지 실토해 버린 것이다.
'더 듣기 민망하니 제발 말하지 좀 말라'는 모택동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눈에 떠오르는 듯하다.




좌좀들은 마오 시진핑 개정은 숭배하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