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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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지원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에 들어온 풍경이 BDV 방이라는 것을 안 지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란 놈은 잘 곳이 없어서 놀러와서까지 자는구나… 요즘 자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다시 둘러보던 지원은 수화가 BDV 플레이어를 낀 채 다른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원은 그를 톡톡 건드렸다.


“뭐 보고 있어?”


수화는 깜짝 놀란 듯 제자리에 앉은 채 펄쩍 뛰더니 이내 BDV 플레이어를 벗고는 지원을 보며 안도했다.


“일어났어? 깜짝 놀랐잖아.”


“미안, 내가 얼마나 잤던 거야?”


“1시간쯤? 슬슬 정리할 래?”


“그러자. 돈은 내가 낼 게, 다음에 갚아.”


깊은 어둠이 내린 하늘 아래 홍대는 밤이 없다는 듯 밝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듯 욕지거리를 하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이, 어디론가 향하는 용병은 물론이고 추위를 못 느끼는 듯 아슬아슬한 복장을 고수하는 창녀와 그런 여자에게 접근하는 이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이 거리를 채운 가운데 지원은 자기 옆에서 걷고 있던 수화에게 물었다.


“그래서, 방금 보던 건 뭐였어?”


“그냥 옛날 영화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고.”


지원은 수화를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오~ 그거 거의 70년도 더 된 영화잖아. So, Sally can wait She knows it's too late as she's walking on by~”


수화는 깜짝 놀라 지원을 제지했다.


“그건 ‘오아시스’ 노래야. 전혀 관련 없다고.”

‘아니 그보다, 저 목소리로 그 말도 안 되는 음치는 어떻게 되먹은 거야?’


“뭐라도 먹을까? 시간은 많이 늦었지만 간단하게라도 먹자.”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너 먹고 싶은 거로.”


수화의 선택은 라멘이었다. 라멘 면을 간결하게 마시던 지원은 노란빛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 바라보았다.


“이 면은 말이야, 뭘로 만든 걸까? 역시 삼성 플랜트의 GMO 밀가루겠지?”


“그 이상의 무언가 나올 수 있을까? 세상에 자연적으로 재배하는 밀이 거의 없잖아. 보리나 쌀, 옥수수도 그렇고. 여기 라멘 육수도 전쟁 전에는 진짜 돼지 뼈를 우려서 만들었대. 그런데 구제역에 돼지독감까지 돌아서 돼지가 엄청나게 줄어드니까 고기는 대체육으로, 그리고 이런 육수는 그냥 공장에서 적당히 합성해서 만들어진 거야.”


“당연한 상식이지. 그래도 다행인 건 말이야, 얼마 전에 진짜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배양육이랑 맛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거야.”


“진짜 돼지고기를 먹어봤다고? 부럽다…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말이야.”


“확실히 경찰 월급으론 사기 힘들지. 아님 너도 나처럼 용병이 되는 건 어때? 너 정도 실력이면 벌이도 짭짤할 걸?”


수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됐어. 난 이게 편해. 그리고 내가 용병일을 한다 하면 동생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어릴 때도 그랬지만 고집이 세서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 안 바꾸거든.”


“네 동생도 이해해. 남편이 그렇게 됐는데 하나 남은 가족까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 못하지.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그래.”


나란히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던 중, 수화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지원을 바라보았다.


“혁이는… 이제 퇴원해서 쉬고 있어. 그, 그래서 말이야. 크리스마스 전에 혁이 데리고 동물원에 가려 하거든? 너, 너도 같이 가지 않을래?”


지원은 추위가 아닌 다른 이유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수화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좋아. 대신 내 친구들도 데려갈 거야. 괜찮지?”


수화는 활짝 웃었다. 아무리 봐도 뛸 듯이 기쁜 것을 꾹 참은 모양새였다.


“상관없어. 그때 되면 연락할 게! 또 보자!”


수화가 지하철역으로 사라지자, 지원은 담배를 물었다.


“나 같은 게 그렇게 좋은 건가…?”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던 그때, 갑자기 조 씨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이제 시킬 일 없다며.”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여기서 바로 설명해줄 게.”


지원의 바이오 모니터에 한 인물의 사진이 나타났다.


“전 인민사회당 원내대표 김혁수야. 엊그제 의정부시에서 목격됐어.”


지원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니, 엄청 중요해. 의정부시라고 했지?”


“잠깐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 이 자는 조선인민파의 보호를 받고 있어. 그냥 쳐들어가면 무조건 죽을 거야. 지금 놈을 추적하고 있으니까 조금 여유를 두고 기다려. 동선이나 위치 파악이 되면 이 건에 대해 다시 말할 게.”


그제야 지원은 좀 진정한 듯 다시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걸 알려주려고 전화한 거야?”


“그래. 참, 나 파트마랑 재혼하려고. 오늘 이야기가 나왔어. 파트마도 긍정했고.”


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 백년해로하라고.”


“미세스 리 당신이 다해준 거야. 당신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런 사이였겠지. 고마워.”


“내가 해줬다고? 아니, 당신이 먼저 파트마 씨한테 다가갔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거지. 마침 잘 됐네, 수화 기억나지?”


“그 경찰 친구가 왜?”


“내가 구했던 그 녀석 조카 퇴원 기념으로 동물원에 데려다 준다 했는데, 내 친구들 다 끌고 와도 된다고 했거든. 레나랑 알리사, 인호도 데리고 어때?”


“난 상관없어. 아마 다들 좋아할 걸? 그보다, 그 애도 데려갈거야?”


“꼬마? 데려가지 싶은데.”


“뭐, 알았어. 언제 가는 건지나 말해줘.”


“수화는 크리스마스 전이라고만 했어. 나오는 데로 알려줄 게.”


전화가 끊기자, 지원은 새 담배를 물었다. 회색 담배 연기가 광공해로 빛나는 밤하늘로 타고 올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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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강수화 씨는 주인공과 놀러다니고 데이트 신청까지 받았나요?

A: 개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