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랜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그동안 너무 슬펐을 뿐. 바보같았을 뿐. 나는 이상성의 추구를 버렸다. 애초에 불가능했으며, 현실과 유리되어 있었다.

 그래도 돌이켜본다면 세상은 화려하고 복잡하였다. 유년기의 기억은 나 자신의 것과 가족이 일러준 것들로 채워져있다.

 혼자 무턱대고 서울에 올라가서 미술관에도 가보고 남산타워에도 올라가봤다.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난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세계에는 분명 틈이 있음이 분명하다.

 완전한 수학의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게 바로 불완정성의 법칙이라고 하지. 만약 물리세계가 완전하지 않고, 오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면 어떻게될까? 그 오류가 시작된 지점부터 우주가 찢어지기 시작할까? 문학적 상상력을 더할 수도 있겠지. 낭만적으로 생각하자면, 마치 시간폭탄처럼 그 주변의 공간의 시간이 정지해버릴 수도 있겠지. 그게 우주의 예외처리 방식이라고 치자면. 그러면 그 공간만큼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박제, 냉장고, 타임캡슐 등 다양하게 비유해볼 수 있겠지. 어떤 진지한 과학자가 물리학 법칙의 오류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자신의 실험실에서 마침내 실현시키고 그 여파로 해당 공간의 시간이 정지하게 되고 그 실험실과 주변은 폐쇄되었는데 수십, 수백년이 지나 외부인이 우연히 그 광경을 발견하게 되는 상황 같은거 말이야. 아니면 그 공간에 어떤 추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서 찾아본다거나.

 아니면 내 기억에 틈이 있다면 어떨까? 어느날 누군가가 찾아와서 나에게 2006년 8~9월에 어떤 일을 겪지 않았었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금시초문인거지. 그 방문자는 답답해하면서 내가 그것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한다. 일기장을 펴보았으나 해당 기간의 일기는 손실되어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상황을 깨닳게 되고 곧 질문을 던지게 되지. 나는 왜 그 일을 잊어버린걸까. 정신적인 고통으로? 아니면 머리에 가해진 물리적인 충격이 원인일까?

 나는 어차피 내 기억에 틈이 많다는 것을 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이어지지만 그만큼 틈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땐 내가 아니라 그저 주변의 일상을 본다. 그것이 진짜 과거에 나와 관계된 물건이었든 아니면 단지 잃어버린 기억을 연상시킬 수 있는 표지었을지 몰라도, 나의 틈들은 그런데에 모여서 하나의 의미를 이루고 있곤 하다. 이상하지.

 나는 항상 바보였고, 앞으로도 바보일거야. 그렇겠지. 세상은 정교한 하나의 그릇같아. 어디서 본 말이다.

 벼랑끝에 몰리면 죽고 싶어진다. 우리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이해할 수 있어서 더 혼란스럽다.

 난 순진하게 모르는 것도 많다. 그건 틈이라고 부를 수 없지. 하지만 자책은 하지말자.

 땅바닥에 고인 축축한 웅덩이가 습도를 올린다. 아이들이 뛰어논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조잘대다가도 마주치게 되면 그럭저럭 공손히 인사를 한다. 옷 입은 강아지들이 지나간다.

 시끄럽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코인세탁방의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하늘을 울리는 저음은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다. 세상이 너저분하고 기분나쁜 소리로 가득하다. 귀를 막으면서 걸어가고 싶다. 하지만 막아지지 않는다. 어두운 골목은 그런 법이다.

 세계는 학종이로 이루어져 있는 듯 하다. 모든 물건이 학종이로 뒤덮여 있다. 다양한 색으로 그라데이션이 되어있는 작은 종이들이 세상의 모든 물건 표면에 붙어있다. 바람이 불면 표면에 붙어있는 종이들도 흔들린다. 햇빛이 비추면 그것들이 빛난다. 빛이 사라지면 그것들은 어둠에 잠긴다. 과연 색종이와 색종이 사이에는 틈이 있단 말이지. 어딜 봐도 보이는 수천만장의 학종이들. 그것들 하나하나가 어떤 메세지를 전해주려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