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타올라 다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도록.
그냥, 세상 모든 걸 집어삼키고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싹 불태워 다오.
얼마 전, 몸에 불이 붙은 혹자는 불평했다.
이 세상이 너무 뜨거워졌다고.
사람들이 불 지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소싯적 자신이 지르고 방관한 불길은 잊어버렸다.
나는 좋아.
그냥, 내가 애정하고 또 괴로워하는 이 세상이,
전부 불타 없어지기를.
내가 의지하고 또 혐오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찌르고 베고, 집어삼켜 불길 속에 던지는 게.
나는 보고 싶어.
불아, 불아, 어느 때보다 뜨겁게,
만년설을 녹이고, 금빛 밀밭을 잿더미로 만들고,
모든 가족과 연인을 갈라놓고,
내 몸과 영혼까지 모두 집어삼켜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