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자마자 하는 말이라는 것이 이것일줄은 몰랐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는 멸망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말을 하자면 사람들이 상상할만한 멸망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 중국이 평택과 종로에 핵미사일을 쐈고, 곧이어 무슨 짓을 한 건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수뇌부가 통째로 날아간 대한민국은 이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고, 순식간에 대부분의 서울 시민은 시체와 살아 움직이는 시체, 그리고 시체 예정자들만 남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저 셋 중 시체 예정자였다. 오늘도 좀비 무리를 피해 하루하루 연명하던 나는 우연히 어느 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오게 되었다. 대학교 캠퍼스 안 편의점에는 무언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왔지만 안타깝게도 편의점은 물론이고 편의점 창고까지 텅텅 비어있었다.


"이 캠퍼스에도 아직 죽지 못한 저주받은 사람들이 있구만. 아직도 살아 있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침 방학이라 다른 번화가 보다는 텅 비어 있는 대학교 건물들을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대학원생이나 계절학기 중 참사를 당한 좀비 몇이나 건물을 돌아다닐 뿐인 대학교. 천천히 건물을 하나하나 뒤졌다. 법대, 아무도 없었다. 상경대, 대학원생 좀비나 있었다. 안타깝게도 좀비들 입장에선 대학원생도 사람이었나 보다. 미대, 다행히 히틀러 좀비는 없었다. 자연대, 이 씨발 왜이렇게 좀비가 많아. 공대, 역시나 시체들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건물인 음대만 남아 있었다. 음대를 천천히 뒤지다 지하의 어느 방 문을 여는 순간, 내부의 누군가 칼을 들이밀었다.


"누구야?!"


"좀비인가?!"


"잘 봐, 사람이야!"


"정체를 밝혀!"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진정하시죠, 생존자 여러분. 딱히 무기가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학생 4명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행히 이 학생들은 무기를 거두고 어느정도 적개심을 풀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나는 가만히 아껴뒀던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왜 '피웠다'가 아니라 '물었다'냐면, 라이터나 성냥이 없었기 때문이다. 멸망한 세계에 그런거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아나?


"그런거 내가 잊어버렸어. 그냥 발이 가는 데로 가는거지. 그래서, 너희는 여기 학생 '이었나'?"


그 중 한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넷이 밴드를 하고 있었어요. 단순히 커버곡만 불렀지만."


나는 어차피 피울수도 없는 담배를 뱉어버린 뒤 짐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렇다면 사태 이후로는 드럼 한번 못쳤겠구만. 저 놈들은 소리에 민감하니까."


머리카락이 긴 남자가 말했다.


"그렇죠. 처음에 사태가 터졌을 때 멋 모르고 소리 지르다 죽은 사람이 많았었어요."


"그러고보니, 많이들 도망치려 하던데 너희는 왜 여기 있는 거야?"


"그게..."


셋은 머뭇거리며 자리를 비켰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잠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들 중 한명은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동료를 두고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 휠체어를 탄 청년이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가끔씩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서울 바깥도 다를 바 없다면서요."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나도 한 달 쯤 전에 서울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서울 밖도 여기만큼이나 지옥이야. 좀비 사태만 아닐 뿐이지. 따지고 보면 여긴 나은 편이야. 그나마 예측 가능한 멸망이었거든. 씨발 거기 사람들은 운도 없지, 성별이 바뀌어서 멸망하는 건 너무 웃기잖아? 다른 나라도 다 똑같아.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중국은 생존 자체가 불가능이라더군."


그러고 잠깐동안 말이 없었다. 넷 모두 다 사실 서울 밖은 안전하다고 믿어온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거짓으로 희망을 주는 것 보다는 냉혹한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얼마나 시간이 또 흘렀을 까, 그들은 결심을 한 듯 서로서로를 바라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저기 있는 물건들을 캠퍼스 중앙 광장까지 옮겨주세요."


그들이 말한 물건은 악기와 엠프였다.


"갑자기 왜? 좀비들 앞에서 공연이라도 하게?"


"당신이 그랬잖아요. 서울 밖에도 희망은 없다고.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걸 하고 죽으려고요. 뭐, 좀비가 되는 건 아니고요. 저기 저걸로 죽을 거에요."


여지껏 모르고 있었는데, 저쪽에 폭탄이 쌓여 있었다. 어디서 훔쳐온 거지?


"뭐, 알았다."


몇 시간 후,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움직일 때쯤. 모든 장비가 광장의 무대에 설치되고, 네 명의 청년들이 무대 위에 섰다. 그 중 마이크를 잡은 남자가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가세요. 아저씨는 희망이란게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웃고 말았다. 희망... 그런 말을 얼마만에 들어본 것일까.


"알았다. 잘 있어라."


그렇게 말하며 캠퍼스를 막 벗어나는 순간, 저 멀리서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멜로디지만 조금 다른 가사, 커버곡을 부르는 밴드 다웠다. 어차피 좀비들은 저 소리에만 반응할 것이기에, 나도 적당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마지막 공연을 지켜보기로 했다.

Seoul calling to the faraway city

서울 멀리 떨어진 도시에게 알린다

Now war is declared, and battle come down

이제 전쟁이 선포되었고, 전투가 개시되었다

Seoul calling to the underworld

서울이 지하세계에서 알린다

Come out of the cupboard, you boys and girls

너희 모든 남녀들은 찬창에서 나와라


Seoul calling, now don't look to us

서울에서 알린다, 우리에게 희망을 걸지 마라

Phoney A.R.M.Y. has bitten the dust

가짜 아미들은 이제 전부 죽었다

Seoul calling, see we ain't got no tear bomb

서울에서 알린다, 최루탄을 쏴 갈기는 것 말고는

'Cept for the ring of that truncheon thing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


The ice age is coming, the sun's zooming in

빙하기가 도래하고있다, 해는  가까워진다

Meltdown expected, the rice tastes so thin

멜트 다운이 예상된다, 쌀 생산량은 줄어든다

Engines stop running, but I have no fear

엔진 가동은 멈췄다, 하지만 난 두려움이 없다

'Cause Seoul is drowning, and I live by the river

왜냐하면 서울이 한강 아래에 잠기면 난 강변에 살면 되니까


Seoul calling than behind zone

서울보다 뒤떨어지는 지역들에게 알린다

Forget it brother, you can go it alone

그냥 잊어버려라, 혼자서도 해볼 수 있다

Seoul calling to the zombies of death

서울에서 죽은 좀비들에게 알린다

Quit holding out, and draw another breath

그만 참고 숨을 쉬어라


Seoul calling, and I don't wanna shout

서울에서 알린다, 그리고 난 소리지르고 싶지 않아

But while we were talking, I saw you drunkard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동안 네가 술에 취한걸 봤어

Seoul calling, see we ain't got no spirits

서울에서 알린다, 우린 술에 취하지 않지

Except for that one with the brown eyes

갈색 눈을 가진 한명을 빼면 말이야


The ice age is coming, the sun's zooming in

빙하기가 도래하고있다, 해는  가까워진다

Engines stop running, the rice tastes so thin

엔진 가동은 멈췄다, 쌀 생산량은 줄어든다

A nuclear error, but I have no fear

핵이 문제를 일으켰지만, 난 두려움이 없다

'Cause Seoul is drowning, and I live by the river

왜냐하면 서울이 한강 아래에 잠기면 난 강변에 살면 되니까


Now get this...

이제 알겠지...

Seoul calling, yes, I was there too

서울이 알리는걸. 그래, 나도 거기에 있었어

And you know what they said? Well, some of it was true!

걔네들이 뭘 말하는지 알겠어? 글쎄, 몇개는 진짜였어!

Seoul calling at the top of the dial

서울이 다이얼의 맨 위에서 알리고 있지

After all this, won't you give me a smile?

이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나에게 미소 지어주지 않을래?

Seoul calling...

서울에서 알린다...


I never felt so much alike alike alike alike...

난 ...과 같은 것을 절대 느끼지 못하겠다고...


...___...


마지막 가사가 불협화 음과 함께 끝나고, 거대한 폭발이 아까까지 그들이 있던 자리를 뒤흔들었다. 나는 가만히 폭발이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다 그들의 최후에 조용히 경의를 표하곤 다시 희망 없는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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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