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흰 당신들을 부른 겁니다."
"저희는 모든 평행우주 속 영웅들을 그러모아서 [멸망] 에 대처하기로 했거든요."
"저희가 관측할 수 있는, 모든 평행우주죠."

남자가 여자의 말을 보완했다.

자그마한 지하실.
이곳에는 지금 세 명의 사람이 앉아있다.
나, 낯선 남자, 낯선 여자.
낯선 남자와 낯선 여자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 보였다.

"아직 제대로 설명이 안된 거 같은데요."
"... 우리는 정말 다양한 세계에서 영웅들을 모았기 때문에 그 집합은 처음엔 꽤나 이질적이었죠."
"[북풍의 아들], [중원의 지배자], [가장 오래 산 진], [미래에서 온 협객], [푸른 하늘의 지배자] ..."
"그 수가 전부 50에 달했지. 제가 신세계 판 황금양털원정대를 만들려고 했으니 확실할 겁니다."
"헤라클레스는 밥 안 준다고 삐쳐서 돌아갔잖아요."
"... 걔 빼면 49명이겠네."


이번엔 여자가 남자의 말을 보완했다.
나는 지긋이 이마만 눌렀다.

"그럼 남은 이들은 다 어디로 간 건데요."
"어... 우선 저희가 너무 근본없이 멤버들을 모아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서로 다투다가 반 이상이 원래 세계로 돌아갔어요."
"그때 남은 사람이 한 스물 됩니다."
"하..."

그야 천마랑 정파 고수를 붙여 놓으니 싸움이 나겠지.
엘프랑 드워프를 붙여 놓으니 싸움이 나겠지.
용사와 마왕을 붙여 놓으니 싸움이 나겠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낸다.

"살아남은 게 스물이라고요?"
"예."

"이름 좀 다들 불러봐요."

이름을 불러주라는 요청에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인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서 남자가 종이 한 장을 꺼낸다.


"어디 보자...
가루다, 디오스쿠로이 형제, 쿠 훌린, 멀린, 칠성신 일곱 형제, 소이광 화영, 페넥스, 사오정, 알=라트, 바네무이네, 토르, 마우이..."
"그래도 아직 쟁쟁한 이름이 많네요."

방금 지나간 이름들은 대부분 세계 각국의 신화에서 신이나 신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자들이다.
다가온다는 멸망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충분히 헤쳐나갈 가능성이 보일 정도이다.
한데...

"근데... 왜 이 자리엔 저 밖에 없죠?"
"그게... 그..."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그..."
"됐으니까 뜸 들이지 말고 말하세요."

두 남녀가 연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라는 표정이었다.
둘은 입모양 만으로 한참 동안 뭐라 말을 주고 받더니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현대에 가장 무서운 무기로 꼽히는 게 있는데 이게..."
"저희가 너무 먼 시공의 분들을 모셔와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
"알았으니까 빨리 말하세요. 도대체 뭐 때문에 다들 안 보이는 겁니까."
"그...










현대에 도는 역병 때문에 다들 앓아 누우셔서요..."
"독감이라는 건데요..."
"아무래도 혼자서 대항하셔야 할 거 같은데요...?"

어쩐지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였다.
참고로 다가온다는 멸망은 크툴루라고 한다.
나 집에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