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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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의심이 현실로


잠깐의 대치가 이어지고, 곧바로 아인이 게비알을 향해 달려들었다. 늑대보다도 빠르게 달려든 아인의 공격을 게비알은 가볍게 피하더니 긴 지팡이를 휘둘렀다. 아인은 가까스로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 충격은 방패 너머까지 전해져왔다.


‘역시 노전사라는 칭호가 함부로 붙은 건 아니군…!’


아인은 재빨리 칼을 휘둘렀다. 게비알은 지팡이를 들었고, 놀랍게도 용의 가죽도 찢는 아인의 검이 고작 나무 지팡이 하나에 막히고 말았다. 아인이 당혹감에 잠시 머뭇거리자 게비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팡이 끝으로 아인을 쳤다. 아인은 배를 잡고 뒤로 살짝 뒷걸음질 쳤다.


‘뭐 하는 지팡이야, 젠장할!’


곧바로 게비알이 달려들자 이번엔 아인이 그의 공격을 피한 다음 방패로 그를 쳤다. 게비알이 방패에 맞아 비틀거리자 아인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게비알은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여기서 아인은 확신했다.


‘역시, 뭔가 있어!’


푸른빛의 칼과 나무 지팡이가 서로 맞붙길 수십차례, 슬슬 아인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음에도 게비알은 호흡의 흐트러짐이 전혀 없었다.


“역시, 네놈은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구나. 이 이상 강해지기 전에 끝내주마. 내가, 여기서.”


게비알은 조금씩 지친 아인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아인은 어떻게든 우세를 잡으려 했으나,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묶여 있던 탓에 힘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제길… 힘이 안 들어가…!’


계속해서 밀리던 아인은 그만 방패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인은 포기하지 않고 칼로 계속해서 지팡이를 쳐내며 저항했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 약속을 위해서라도 난 절대 쓰러지지 않겠어! 나는 그날…’

“그날 약속했어!! 우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순간, 또다시 아인의 검이 빛나더니 또다시 그때처럼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이 이상현상에 입을 다물줄 모르고 있었지만, 오로지 아인과 게비알 만큼은 전혀 이 현상에 반응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봤다.


“그 힘… 역시, ‘각성’이 얼마 남지 않았군. 지금 여기서! ‘그분’을 위해 네놈을 죽여야 겠다.”


“역시 네놈… 뭔가 있군. 간다!”


둘은 마지막 일격이라는 듯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빛이 번쩍 하더니, 게비알의 지팡이가 반으로 부러지며 그는 모래 바닥 위로 쓰러졌다. 또다시 그때처럼 잠깐 침묵이 돌더니 곧이어 수많은 오크들이 아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빌빌거리는 게비알에게 지난번 아인이 쓰러뜨린 그 오크, 리그렛을 비롯한 병사들이 다가와 그를 둘러쌌다. 다름아닌 레드암스의 호위병이었다.


(“게비알, 이전부터 의심스러운 것이 많았소. 당신과는 진지하게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군.”)


(“감히… 나를 뭘로 보고… 뭐 하고 있어, 부족장! 저 이방인은 우리의 전통을 모욕했다!! 빨리 놈을 죽여!”)


(“그는 결투에서 이겼다. 죽이는 것은 조금 뒤야.”)


(“이 자식! 난 노전사다!!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 두렵지 않나?!”)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게비알. 도대체 당신이 원래 있던 부족의 이름이 뭐지? 당신이 보여준 마법도 아니고, 정령술도 아닌 그 힘은 뭐고?”)


게비알은 가만히 땅바닥을 쳐다보더니, 이네 비웃음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노려봤다.


(“역시 자네처럼 눈치 빠른 놈은 정말 싫어.”)


그 순간, 게비알의 눈이 번뜩이더니 놈의 양 손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레드암스와 아인을 제외한 호위병들을 감싸더니 그들을 한순간에 마치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진 시체로 만들었다. 아인도 레드암스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곧이어 게비알의 상처투성이 피부가 순식간에 탱탱해지고, 몸에 근육이 몇 배로 불어나더니 마침내 오크의 몇 배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괴물이 되었다. 레드암스를 비롯한 오크들조차 경악하고 말았다. 마침내, 회색 피부를 가진 거대한 괴물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죽여주마.”


레드암스가 괴물로 돌아온 게비알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도 안 돼… 트롤이라니!”)


아인도 레드암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트롤, 용들의 전쟁 당시 용이 만들어낸 수많은 괴물들 중 가장 강하고, 가장 덩치가 큰 괴물. 제국에선 1200년에 이르는 토벌 끝에 극히 험한 오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아직 오크들의 땅인 황무지에는 몇이 남아 있었다. 본디 트롤의 평균적인 키는 6~8미터였는데, 저 놈은 12미터에 달하는 데다가 아직도 무엇을 꾸미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게비알은 하늘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큰 고함을 질렀다.


“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모두가 귀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던 그때, 정착지 외곽에서 커다란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모든 오크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인과 어찌어찌 풀려난 잔, 마리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령이 오지 않았다면.


(“부족장님! 북서쪽에서 괴물들이 무리지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제야 아인 일행도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게비알은 황무지에 득실거리는 괴물들을 부를 줄 알았던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레드암스가 초인적인 냉철함을 발휘했다.


(“군사를 소집해 빠르게 집결시켜라! 내가 그리 가겠다…!”)


아인이 다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잠깐, 레드암스 님. 당신은 여기서 저와 게비알… 아니, 저 트롤을 막아야 합니다! 당신과 제가 아니라면 이놈을 절대 못 막아요!”


(“…알겠네. 전원 마을 바깥에 집결해 괴물들을 막아라!”)


“레드암스 님, 오크들은 사제처럼 치유를 할 수 있는 자들이 있습니까?”


“주술사들이 할 수 있네.”


“잔, 마리. 너희도 우리를 도와줘!”


(“샌디, 자네가 나 대신 군사들을 맡아 주게. 할 수 있겠지?”)


(“예! 맡겨만 주이소!”)


샌디까지 떠나자, 두 사람은 무기를 고쳐잡고 트롤을 바라보았다. 게비알… 트롤은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냥 순순히 죽었다면 불쌍한 오크들이 개죽음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오크들의 싸움에 개죽음은 없다!”


“지금 네놈들의 싸움도 허무한 개죽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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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럴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