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 끊기에 리돌은 무슨 말이 나올지 굉장히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표정은 곧 고통과 의구심에 찬 표정으로 가득 찼다. 내가 정수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으니까.

 

 "왜 나를 때립니까?"

 

 "임마, 달나라에서는 다른 사람 집에 이렇게 과자가루하고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고 다녀도 괜찮다든? 응?"

 

 그렇게 이야기하고서는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과자부스러기들을 가리켰다. 리돌은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다, '헐' 하는 표정과 멍청한 눈빛으로 나를 다시 돌아 보았다. 내가 헐이다. 아니, 방금 전에 큰절할때 이마와 팔에 과자가루를 그렇게 묻혔는데도 모르는 척을 하시겠다?

 

 "몰랐습니다."

 

 설득력이 없는 설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녀석의 처분에 대해서는 재고의 가치가 없다. 나는 리돌의 손에 아무 말 없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쥐어 주었고, 리돌은 그러자 다시 멍청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이 녀석이? 지금까지 내가 청소하는 것을 그렇게 보았는데도 모르는 척을 하시겠다 이거지? 

 

 "안 해?"

 

 "뭘 하라는 겁니까?"

 

 "뭘 해야 되는지 몰라?"

 

 고개를 절레절레. 

 

 "안 하면 오늘 밥 없다."

 

 그 말과 동시에 내 방에서는 텍사스 사막지대에서 허리케인이 강타한 듯한,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만들어진 먼지바람이 일어났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게 얼만데. 달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청소를 한다 한들, 리돌은 일단 내가 쓸고 닦는 모습을 많이 봤다. 모른다고 하면 그냥 발뺌일 뿐인 것이다. 

 

 


 다음 날도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주말의 하루였다. 어제의 피로와 저혈압이 융합되어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굴려 침대밖으로 내 몸을 내쫓고, 잠시 덜 깬 잠에 취해 방바닥을 조금 더 굴렀다. 가까스로 천장을 두들겨 리돌을 깨운 후, 마찬가지로 잠에 취해 있던 이 녀석이 침대 위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래도 천장 출입구 바로 아래가 침대인 것을 너무 믿고 있는 모양이다. 뭐라고 훈계를 하려 하였으나 그 때 내 입이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혓바닥이 귀찮아 하였다. 두 명 다 몸을 움직일 정도로 잠에서 깬 다음, 어제 성희 씨가 갖다 준 닭도리탕을 끓여서 아침밥을 차려 먹었다. 그리고 먹는 내내 리돌 녀석이 맛에 감탄하며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을 활짝 열면서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주욱 지켜 보았다. 그것이 매워서 그런 건지 맛있어서 그런 건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언제나의 주말처럼 모텔로 발걸음을 향하는, 그런 평범한 하루였다.

 

 "민재야, 너가 오늘 고생 좀 해 줘야 겠다."

 

 이 말만 아니었다면.

 

 "네?"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뭔 소리여? 나는 1층 음료수 바에서 커피를 뽑다가,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느냔 이야기를 얼굴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배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고. 갑자기 업무량이 두 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고생'. 상사한테 들으면 피로도가 증폭되는 마법의 단어. 출근하자 마자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더 파괴력이 강한 것 같다. 강만수 지배인은 나한테 밑도 끝도 없는 부탁을 하고서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다른 방향을 쳐다 보았다. 아니, 지금 기차게 어이없어 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요, 이 아저씨야. 나는 심정만큼이나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지배인에게 되물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 다른 건 아니고..."

 

 지배인이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내려왔다. 우리 모텔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도착시 안내음이 없기 때문에, 사실 내려왔다는 것을 눈을 보지 않고 알기는 힘들다. 어떻게 알았느냐면,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내는 것 같지 않은, 그런 괴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통곡의 주인공은 류다였다. 류다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이반에게 뭐라뭐라 자기네 나라 말로 하소연하듯이 울부짖으며 그를 부여잡으며 나가는 것을 말리고 있었고, 이반은 굳은 얼굴로 커다란 캐리어를 양 손에 잡고 묵묵히, 빠른 속도로 모텔 문을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이반의 얼굴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다. 뭐, 뭐야?

 

 "지배인님, 저거 무슨 일이에요? 잡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내비둬, 저 개새끼들. 겁나 아프네, 씨발."

 

 그에 대한 대답은 내 뒤에서 흘러 나왔다. 아까 꼭대기에 있던 다른 엘리베이터로, 형우가 여기저기 붓고 멍든 얼굴을 부여잡고서는 1층에 내려오면서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지배인은 그런 형우의 모습을 보더니 혀를 찼다. 그러고서는 류다가 정문을 열고 자신을 부르는 듣고서는, 한숨을 쉬고 정문으로 그녀를 따라 나갔다.
 나는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서, 흡연장소로 가는 형우의 뒤를 따라 갔다. 형우는 담뱃불을 붙이기 전부터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를 쏟아내고서는, 말 없이 담배를 반 가까이 태우고 나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된듯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옥상에 위치한 식당 옆에는 직원들 숙소가 있다. 숙소라고 해 봤자 오밀조밀하게 붙여 놓은 쪽방 몇 개일 뿐이긴 하지만. 전에 이야기한 외국인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형우나 다른 한국인 직원들도 출퇴근 시간이나 자취비를 아끼기 위해서 이 곳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식당 이용이 자유롭기 때문에, 보통 술을 마시고 싶으면 좁은 방에서 나와 식당 식탁에서 TV를 보면서 넓게 앉아 한 잔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한명 두명 모이다 보면 모두 마실 때도 있고.

 

 사건의 시작은 어저께, 내가 퇴근하고 난 직후였다. 언제나처럼 일을 끝내고 모두들 숙소로 올라온, 별 다를 바 없는 날 중에 하나였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들어가서 쉬고 있었고, 이반과 사샤만이 식당에 남아서 둘이 냉장고 안에 있던 남은 반찬을 안주삼아 한 잔 걸치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발견한 것은 비번이었던 상철이였다. 이 녀석도 숙소를 옥상에 잡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잠시 밖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니, 이반과 사샤가 식당에서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둘을 뜯어 말리고 보니, 둘 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더란다. 그 때 지배인은 아직 술자리에 있었고, 형우가 부랴부랴 올라가서 무슨 일인지 파악을 하려 했지만 둘 다 술에 취해서 자기나라 말로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둘 다 진정시킨 다음에, 다음 날에 이야기를 듣기로 하고서는 어제는 그렇게 일단락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나서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에, 또 싸움이 붙어 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옆방에서 근무휴식을 하고 있던 형우와, 술 먹고 집에 못 가고 같이 자고 있던 지배인이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두 사람의 얼굴에서 어제 간신히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다시 터져나가고 있더란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부분에서였다. 무엇하는 짓이냐고, 다시 한 번 말리러 들어간 형우에게, 이반이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개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형우는 대한민국에서 정당방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맞고만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싸움은 세 남자의, 정확하게는 2:1의 육박전이 되었다. 형우는 부어오른 광대뼈 부분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일단 내가 이반만 뜯어 말리면서 사샤가 계속 때리게 내버려 뒀거든. 어제도 그렇게 해서 몇 대 더 맞고 끝났는데 오늘도 이반만 못 움직이게 하니까 이 새끼가 열받았나 봐. 그래서 나 때리고, 류다까지도 지금 뭐 하는거냐고 옆에서 계속 지랄하고. 그럼 뭐 해. 난 말린 죄밖에 없는데."

 

 싸움은 숙소 안의 모든 사람들이 뜯어 말린 그 시점에서야 종료가 되었다. 같이 나온 지배인도 싸움을 말리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고스란히 두 눈으로 담고 있었다. 싸운 사람, 구경한 사람의 말을 모두 종합해 보았을 때 잘못한 사람은 이반 한 명으로 압축되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해서, 사샤가 주먹질을 먼저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일단 어제 먼저 시비를 붙인 것은 이반이었고, 오늘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리는 형우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점으로 작용하였다. 

 

 지배인은 이반에게 노기충천한 말투로 너 같은 폭력배를 모텔에서 쓸 수 없다고 일갈하였다. 그런데 이반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상황판단도 되지 않은 채, 여전히 자기네 나라 말로 지배인에게까지 삿대질을 해가며 대들었다고 한다. 상황판단이 된 것은 류다뿐이었다. 옆에서 이반을 계속해서 말리고, 지배인에게 어설픈 한국말로 잘못했다고 그렇게 빌고 있는데도, 이반은 여전히 언성만을 높이며 지배인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퍼부어 대었다 한다. 그게 러시아말로 심한 욕지거리라는 것은 일이 끝나고 사샤가 알려 주었다. 지배인은 지금 당장 나가라고 두 사람에게 명령하였고, 당연히 지금은 나갈 수 없다고 뻗대었다. 하지만 지배인은 핸드폰을 눈 앞에서 흔들어 보여주며 지금 당장 경찰을 부르겠다고 이야기하였고, 결국 두 사람은 그대로 짐을 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내가 온 타이밍에 모텔을 나간 것이고.

 

 "차라리 잘 됐어. 원래 쫓아낼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쫓아내지 않으면 사샤 형님하고 아마 계속 싸웠을 거야. 없는 자리에서 둘이 엄청 싸웠다드만. 까쨔 형수가 오늘 얘기해 줬다."

 

 

 "그래? 난 몰랐는데." 

 

 

 나야 집에서 출퇴근하니 여기 안에서의 사정이야 모르지. 그런데 이야기하는 투를 보니 여기 사는 형우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뭐, 티격태격 했었나 보지, 자기들 방에서. 나도 잘 모를 정도면 그 때 까지는 주먹질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얘기 들어보니까 이반 새끼가 원래 쌈닭이었대. 열 받으면 어쩔거냐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막 그랬다데."

 

 형우가 말을 갈무리하고 담배연기를 조용히 내뱉고 있을 즈음, 지배인이 들어왔다. 흡연구역에 들어오기도 전에 담배를 꺼내는 품새가, 이미 이 사람도 열이 받을 만큼 받아 있는 모양이었다. 형우는 잽싸게 지배인에게 다가가서 불을 붙여주면서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형님, 어떻게 됐어요?"

 

 "하, 개새끼들, 거 참 드럽게 땍땍대네. 잘못해서 나가는 놈들이."

 

 아무래도 오래 같이 일하다 보니 말투도 닮아가나 보다. 지배인은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형우가 푸념조로 이야기했던 것마냥 기가 차다는 듯이 담배 연기를 뱉어댔다.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지배인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