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톰 왔구나! 음? 또 자전거가 부서졌구나. 내가 좀 조심히 타라고 했잖니. 이번에는 그냥 체인만 바꾸면 되겠구나.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고치기 시작했냐고? 벌써 몇 번이나 들은 이야기잖니. 또 듣고 싶은게냐? 그래, 우리 톰이 듣고싶다면 또 해 줘야지. 

나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자전거를 고치는 법을 배웠단다. 하지만 나는 자전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 누구나 그렇지 않니? 어렸을 때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단다. 고작 자전거나 만지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 생각이 처음으로 바뀐 건 내가 21살 때, 듣기만 하던 프랑스에 처음 갔었을 때였단다. 21살이던 나는 전쟁에 징집돼 프랑스로 갔었어. 파리로 향하기 얼마 전, 우리 부대는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지. 

비가 오는 날이었단다. 빗길에 자전거가 미끄러져 그 소녀는 걷지 못하는 상태였고, 자전거는 부서져 있었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니? 난 그녀를 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단다. 우연히도 그곳이 그녀의 집이더구나. 그녀도, 나도 각자의 말은 한마디도 못했지만 뭐랄까,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만은 알 수 있었지.

음? 쿠키구나. 고맙다만, 난 괜찮단다. 그 어떤 쿠키도 그 맛이 나지 않거든.

* * *

음? 지젤이니? 마침 잘 왔구나. 막 쿠키를 다 구운 참이었는데. 하나 맛보렴. 뭐? 파는 것 보다 맛있다고? 호호. 우리 지젤은 말도 참 예쁘게 하는구나. 하나 더 먹어보렴.

쿠키를 구운지 얼마나 됐냐고? 글쎄, 내가 굽기 시작한 건 벌써 60년은 된 것 같구나. 처음으로 굽기 시작한 때를 기억하느냐고? 그럼. 다른 일은 몰라도 그 일은 확실하게 기억한단다. 또 그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마침 할 일도 끝났으니 해주마. 어디부터 하면 되니?

아, 그래서 그 자전거는 어떻게 됐냐고? 나는 다친 상처만 치료하고 피곤해서 바로 잠들어서 몰랐는데, 그 사람이 와서 고쳐주고 갔다지 뭐니. 참 고마운 사람이었지. 우리 마을에는 그걸 고칠만한 사람이 없었거든.

그 사람은 일요일마다 우리 집에 왔단다. 처음에는 병원을 찾아왔다고 했었어. 세상에, 나는 그때까지는 군대에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얼마나 그가 많이 들락거렸는지 몰라. 뭐, 나중에는 그냥 날 보러 왔다고 당당히 왔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요일마다 들을 내달렸어. 나는 그가 고쳐준 자전거를 타고, 그는 어디서 굴러다니던 고물 자전거를 고쳐타고. 나는 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줬고, 그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줬지. 4월처럼 아름답고, 활기차며 새로운 나날들이었단다.

* * *

 왜 떠났느냐고? 이런, 톰. 내가 앞에서 한 말은 잊은거냐? 군인이었다고 했잖니. 우리 부대에 파리로 진격하라는 명이 떨어졌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단다. 짓궂게도, 그 날은 마침 일요일이더구나. 이번 일요일에는 그 숲 속으로 피크닉 가기로 했었는데 말이지. 

* * *

아주 괘씸한 사람이지. 떠날 때 떠난다는 말도 없이 그냥 가려했으니 말이야. 하마터면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내야 할 뻔 했지 뭐니. 막 출발히기 전에, 내가 있는 걸 알면서도 그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더구나. 그래서 내가 그냥 달려가 잡았지. 그제야 날 꽉 안아주더구나. 그때가 내 첫 키스이자 마지막 키스였어.

* * *

보고싶냐고? 글쎄, 난 잘 모르겠구나. 내 인생ㅡ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그대로 두고싶은 마음도 있단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거든.

* * *

난 만나고 싶단다. 날 떠나서 어땠는지, 날 잊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속삭였는지, 매일 밤 배게에 눈물을 적시던 날 그리워하긴 했는지... 묻고 싶은게 많거든.

* * *

"지금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기 기념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앞서, 아름다운 사연의 주인공들을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두 남녀는 짧았지만 강렬했던 '한 여름밤의 꿈'을 함께 꿨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서로를 추억하며 지내왔다고 합니다. 70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사회자가 뭐라고 하든, 주위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들이 본 것은 이제는 늙어버린 서로의 모습과, 서로의 언어로 인사말을 건네는 그 목소리 뿐이었다.

"Hello."

"Bonjour."

"영어 공부 열심히 했네, 자냉."

"그쪽은 프랑스어 공부 많이 한 거 같고."

"나 안보고 싶었어?"

"그럴리가. 그래도 이번 생에는 더 못 볼거 같으니 다음 생에는 꼭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다음 생에는 꼭 이어달라고... 매일 그렇게 기도했지."

"...그래."

두 노인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 * *

미 육군 정복을 입은 사내가 막 게이트를 빠져나와 길을 걷고 있었다. 그가 손에 쥐고있는 여권에는 프랑스와 미국의 도장밖에 찍혀있지 않았다. 

"이번에도 허탕치면 그냥 프랑스에서 살까."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런 남자에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꿈 속에서라도 잊을까, 익숙한 금발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게 보였다. 그는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여자를 불러 세우며 남자는 말을 걸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여자는 그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작업멘트라기엔 너무 클래식하네요."

그제야 굳어있던 남자가 미소를 띄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자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Welcome to France."

"Merci."

"잘 지냈어?"

"그럴리가. 누구 찾느라 여자 손도 못 잡아봤는데."

"그거 다행이네. 나도 남자는 쳐다보지도 못했거든."

그렇게 두 남녀는 활짝 웃으며 서로를 끌어안았고, 이내 입술을 맞췄다.


첫 번째 키스였지만 첫키스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