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로3가 포장마차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얼마 안되는 기네스 생맥주 판매점이라 자주 온다. 기네스를 한 잔 시키고 내 테이블에 올려졌을 때 즈음,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다. 문자로 나에게 청량리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문자의 이전 내역은 무려 1달 전, 의미 없이 보낸 ‘잘자’와 ‘그래’ 뿐이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이전 대화 내용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네스 한 잔을 비웠다 그녀의 학교는 회기역 쪽에 있다. 그녀가 나의 위치를 묻자 나는 종로3가라 했고, 청량리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녀에게는 한 정거장, 나에게는 다섯 정거장이나 되는지라 형평성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지만, 나는 기네스를 두 잔으로 끝마치고 역으로 향했다. 휘황찬란한 거리를 지나며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았던 것은 거짓이다. 적어도 그 눈치 정도만 가지고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청량리역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면 넓은 발코니가 있다. 정원이라고 해도 좋다. 그곳은 역 근처의 풍경을 담고 있다. 산의 형태를 하고 있는 주택들과, 원근법을 과시하는 듯 높이 솟은 아파트들을 볼 수 있다. 그곳은 낮에는 관조적으로, 해질녘에는 슬픔으로, 늦은 밤에는 절망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벤치가 있지만 그 풍경이 보이는 난간에 서있었다. 그녀는 저녁 7시에 내가 있는 난간쪽으로 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렀다. 그것은 순식간에, 그리고 한순간에 역류(逆流)했다. 넘쳐나왔다. 마치 갓 새끼를 낳은 사슴의 양수처럼.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큰 댐에 난 작은 구멍에 내 팔을 꽂다가는, 그 댐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와 그녀가 서있던 장소에는 적막(寂寞)이 자리잡았다. 나는 바닥의 흙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내게 해야할 말이 있지 않냐고 물었다. 없었다. 나는 다시 적막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끄덕였다. 분명 그녀는 나의 생각을 보진 못했지만 들을 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는 웃음기는 없는 표정과 함께 뒷모습으로 답했다. 사실 5분 전과 같은 상황에서 내가 허튼 짓이라도 했었다면 이것보다 더 안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눈 뜨고 죽은 척’이었다. 이하 더욱 많은 잡설을 머릿 속에서 주고 받은지 10분 만에, 나는 그 냉전(冷戰)이 끝난 장소를 뜨려 발을 땠다. 나는 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민자역사의 화려함을 느끼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역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 움직였다. 사실 청량리역은 광장을 조금 벗어나면 굉장히 복잡하다. 나는 난생 처음 느낀 감정선을 정리함과 동시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찾느라 애를 썼다.
버스가 수유를 지날 때 즈음 감정선이 정리되며, 그것들은 수유사거리의 화려한 빛들로 스며드는 듯 했다. 아니, 그것들이 나에게 스며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거는 감정에 압도되었다. 강렬한 네온사인들과 난잡한 음악들은 한데 어우러져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감각이 무감각으로 바뀌어감을 느꼈다. 흙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민감함은, 과속방지턱의 충격이 내 하체에 흡수될 만큼 둔해졌다. 또한 내 집 앞 정류장 이름을 듣고도 하차벨을 누르지 않을 정도까지 둔해졌다.
동네이지만 두 정거장 정도의 낯선 거리는 너무 멀었다. 나는 그 길을 가다 넘어졌다.
고양이심리에대한이해 초단편소설 #1 | [놀랍게도, 실화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