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1년간의 수험생 시절을 거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했어도, 여전히 1교시 9시수업을 들으러 지하철역으로 간다. 모순이다. 늦게 일어나 일찍 집으로 가는 미디어 속 대학생의 생활은 무한경쟁사회 유지를 위한 선동이었을까. 집은 학교 근처이다. 학교를 가기 위해선 청이역에서 열차를 타야한다. 청이역에는 8시 30분에 급행열차가 멈춘다. 그 열차를 타면, 다니는 학교 이름이 붙은 역에서 안 쉬고 내릴 수 있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서 간단한 아침식사, 그리고 강의실로 들어간다. 전공수업 강의실에는 새로움의 텐션(Tension)과 어쩔 수 없는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 두려움이 공존한다. 공기의 일부분을 차지할 정도이다. 통틀어, 어색함이 흐르는 곳에서도 스무 살의 어리숙한 레이더는 잘만 가동한다. 나는 애쉬브라운색 머리를 가진 여학우에게 눈길이 갔다. 분명 성인이 된 해방감에 주체하지 못하고 염색을 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검은 머리는 동기들로 가득찬 강의실에서 분명히 빛을 발했다. 과잠을 받은 이후로 그녀는 항상 과잠을 입고 다녔다. 그녀의 사이즈보다 두 치수는 더 커보이는 크기였다. 감히 용기를 내 치수를 잘못 신청했냐고 물었을 때, 원래 크게 입는 것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괜히 그녀에게 실수를 위증하게 하려는 의도로 들린게 아닌지, 인생에서 가장 당돌한 행위였다.


 지속된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녀가 청이역에서 환승해 학교로 통학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희소식임은 맞지만, 나는 내가 왜 그녀를 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현했다. 그녀는 2번출구 쪽 3-4에서 열차는 탔었다. 나는 그녀에게 7-2에서 타면 더 빨리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사실관계는 맞지만, 이성주의 관점에서 정보전달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유용한 정보전달을 만남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왜냐하면 나는 7-2에서 열차를 타고, 그곳에서 내리는게 빠르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튿날 나는 7-2에서 펑퍼짐한 과잠을 입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내가 항상 기대던 7-2가 써있는 기둥에 그녀가 기대있었다. 내 모습을 내 시점 밖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자신보다 늦게 온 나를 질책했다. 나는 그 질책을 받아줬다. 열차가 오고,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고, 역에서 내린 후 5분 정도의 거리에 마주하게 됐다. 나는 그 거리를 15분으로 늘릴 생각이었다. 나는 일일 가이드였다. 주변 맛집과 상권을 소개하는 나의 모습은, 역 주변 부동산 주인들보다 전문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나의 모습은 오히려 정말 전문적인 가이드로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그녀에게는 색다르게 느껴진 듯 했다. 그녀는 나에게 색채를 부여했다.


 다음날. 청이역에 8시 36분에 와버린 날이다. 급행열차는 당연히 가버렸고 배차시간이 엉망인 청이역에서 한참을 기다리게된 꼴이 되었다. 나는 열차를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억지로 증폭시켰다. 은하철도를 놓친 철이의 처지처럼. 하지만 부질없었다. 그녀는 7-2가 써있는 기둥에 그녀가 기대있었다. 그녀는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급행열차를 놓친 나를 질책했다. 나는 그 감정을 받아줬다. 열차가 오고, 각자 핸드폰을 바라보고, 역에서 내린 후 5분 정도의 거리에 마주하게 됐다. 설명한 적 없는 와플집의 연혁에 대해 생각하려는 순간, “오늘 개강파티 올거지?’ 그녀가 말했다. 영어로 Yes나 Of Course면 될 말이, 한국어로는 왜 이리 많은 표현이 있는지에 대한 원망감이 피어올랐다. “가야지, 안 갈 수 없는 곳이잖아.” 나는 그녀가 쥐어준 색채의 문법을 따랐다. 성공적인 서브와 리시브에 대한 기억을 안고 강의실로 향했다.


 개강총회는 별 일 없다. 앞으로의 학사일정, 전공과목의 커리큘럼 등을 안내해주지만 그 전부터 그랬듯 별 일 없이 지나갈 것이라 넘겼다. 총회 이후 그녀를 청이역에서 처음 만난 날 2 번째로 설명해주던 넓은 술집으로 이동했다. 군인이 전장에서는 두려움을 잊듯, 나는 과감히 그녀 옆 자리에 앉았다. 술은 나에게 필로폰과 같은 존재였다. 모든 이에게 술이 들어가고 경계가 허물어 질 때, 그녀의 대한 목적이 상기(想起)되었다. 그녀를 알기 위해 그녀가 만지고 있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경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친절히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Instagram 프로필을 보았고, 팔로우까지 했다. 페이스북을 넘기는 화면을 같이 보며 희로애락을 같이했다. 그녀의 남자친구와의 대화를 보며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갔다.


 그녀가 쥐어준 나의 색채는 파랑색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파랑색이었다.



고양이심리에대한이해 초단편소설 #2 | [놀랍게도, 실화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