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계단을 밟고 올라선대도
왕관을 받아 머리에 올려놓는대도
너만은 나를 용서치 말라.
칼끝을 콧잔등에 밀어 두드린대도
꽃 한 송이 따다 살포시 두고 간대도
간이라도 쓸개라도 씹어 삼키라.
원망만으로 사는 나무 없다지만
구원만으로 사는 나무 역시 없겠지,
그러니 항상 꿰어두고 있어라.
나는 구름 위로 올라간대도 언제고 눈알 하나만은
파내고 짓이겨서라도 수풀에 두고 갈 테니
흰 계단 건너, 궁전을 지나, 칼자루를 쥐고, 꽃향기를 맡으며
볼 필요 없이 따른 곳은 우리가 있던 곳일 테니
땅속 깊히 묻힌 관짝을 열어 헤쳐라,
그곳에는 낡고 바랜 보물이 들어 있겠지.
무슨 뜻인지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싶지마는
그럼에도 이 문장을 네게 남겨두는 것은
죽을 날에 기어코 쫓아와 울부짖으며
내가 넘겨 주었던 칼을 나에게 되돌려 주리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요,
그 칼이 나에게 있어 두꺼운 부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