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알아?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뭐 잘 못 먹었니?

 

아니, 난 멀쩡하지. 평소처럼.

 

평소처럼 이라는 건 멀쩡하지 않다는 뜻인데.

 

어쨌든, 아냐고.

 

몰라. 유튜브에서 잠깐 지나가듯이 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게 갑자기 왜?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인생이 너무 허무한 것 같아서 말이야.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도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 낸 하나의 시뮬레이션 속 엑스트라일 뿐이라는 거잖아. 나는.

 

넌 왜 이렇게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냐. 그렇게 따지고 들면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는 건데?

 

그것도 생각해 보니 그래. 우리는 끝끝내 죽을 건데 뭐 하러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까?

 

야, 됐어. 그런 생각 일일이 하면서 살면 힘들어. 그냥 당장을 바라보면서 살아.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뭐야?

 

글쎄. 이 얘기를 계속하고 싶은데. 너랑.

 

그래. 그럼 계속해 봐.

 

응. 그래서, 이 세상이 만약 시뮬레이션이라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겠지?

 

그치, 뭐 사람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글쎄다. 그 사람한테 너는 네 말대로 하나의 엑스트라에 불과할 테니까 모르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근데 또 몰라. 네가 나중에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유명인이 된다면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사람도 알 수 있게 되겠지.

 

내가 시뮬레이션의 주인공일 가능성은 없을까? 메인 캐릭터 같은 거지.

 

난 잘 모르겠다. 애초에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것부터가 상상하기 힘든 주제라서.

 

그런데 꼭 시뮬레이션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같은 게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사실 게임 속이라거나 소설 같은 창작물 속 인물이라거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만약 그렇다면 너의 의사를 전달하는 건 좀 더 쉬울지도 모르겠네.

 

왜?

 

만약 게임 속이라 하면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캐릭터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둘이서 실없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있을 리가 없잖아? 소설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주인공일 확률이 높다는 거야?

 

그치. 뭐, 애초에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나 게임, 소설이라는 가정이 맞다는 전제하에 그런 거지만.

 

음.. 만약 그중 하나가 정말이라면 아마 소설일 거야.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게임이라면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 따위는 없겠지. 이런 지루한 게임을 누가 하겠어. 그나마 소설이라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그러면?

 

생각해 보니 그러네. 만약 이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창작된 거라면 소설 속일 확률이 가장 크다. 이거지?

 

응. 그리고 우리의 이런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는 걸 봤을 때 우리가, 혹은 너 아니면 내가 주인공일 거고.

 

그럼 이제 이 세상을 만든 사람에게 네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네. 작가한테 뭐라고 말해 봐.

 

그럴까. 작가님, 이왕 제 이야기를 쓰실 거라면 저 좀 잘나게 만들어 주세요. 이런 평범한 인생은 재미없어요.

 

이루어질까?

 

그럴 리는 없겠지. 만약 이 세상이 소설 속이 정말 맞다고 해도, 지금 내가 한 이 말조차 작가가 직접 생각해서 쓴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는 거구나. 근데, 그러면 우리가 뭘 하든 간에 의미 없는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우리가 직접 자신의 의사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없는 거 아니야? 이 모든 게 작가 한 사람에 의해 창작된 거라면.

 

그게 문제야.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소설 속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우리는 분명히 자신이 사고해서 직접 행동하고 있잖아. 그렇지?

 

응,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