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동탁(139?~192)

자는 중영. 농서군 임조현 출신.

지휘관이자 군벌로는 나름 A급. 정치인으로선 폭군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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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양과 단규는 소제와 진류왕을 위협하며 자욱한 연기를 무릅쓰고 불속을 뚫고 나가 그날 밤 북망산(망산, 낙양 북쪽에 위치해 있다.)에 이르렀다. 대략 이경쯤에 뒤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더니 인마가 쫓아왔다. 앞선 사람은 하남중부연 민공이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쳤다.


"역적은 달아나지 마라!"


사태가 다급해진 것을 본 장양은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황제와 진류왕은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어 감히 큰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강변 잡초 속에 엎드려 있었다. 군마가 사방으로 흩어져 쫓았으나 황제의 소재를 알 길이 없었다. 황제와 진류왕은 사경까지 엎드러 있었는데 이슬이 내리고 배도 고파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으나, 사람들이 알아챌까 두려워 풀숲 안에서 소리를 삼켰다. 진류왕이 말했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니 달리 살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에 두 사람은 옷자락으로 서로를 묶고 강 언덕으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가시나무가 가득한 데다 캄캄하여 걸을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데 별안간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가 무리를 지어 환하게 불빛을 내며 황제 앞에서 빙빙 날아다녔다. 진류왕이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형제를 돕는 것입니다!"


반딧불이를 따라서 걸으니 마침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속 걷다가 오경이 되자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때 산등성이 쪽에 풀 한 더미가 눈에 들어왔고 황제와 진류왕은 그 옆에 누웠다. 풀 더미 앞쪽에는 장원이 한 채 있었는데, 그곳 장주는 그날 밤 두 개의 붉은 해가 자신의 장원 뒤로 떨어지는 꿈을 꿨다. 놀라 잠에서 깨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와 사방을 살펴보니 장원 뒤쪽 풀 더미 위로 붉은 빛이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황급히 가서 살펴보니 두 소년이 풀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장주가 물었다.


"두 소년은 뉘 집 자식들인가?"


황제가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류왕이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금상폐하이신데 난을 만나 이곳까지 피란 오셨다. 나는 황제의 동생인 진류왕이다."


깜짝 놀란 장주가 두 번 절하고 아뢰었다.


"신은 선조 때 사도 최열(崔烈)의 아우 최의(崔毅)라고 합니다. 십상시가 관직을 팔고 어진 사람을 시기하여 이곳에서 은거하고 있습니다."


즉시 황제를 부축해 장원 안으로 모셔 무릎 꿇고 술과 음식을 올렸다.

한편 민공은 단규를 추적하여 붙잡아 물었다.


"천자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이미 오는 도중에 잃어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다."


분노한 민공은 즉시 단규를 죽여 머리를 말목에 걸고 군사를 나누어 사방으로 흩어져 찾아보고는 자신은 홀로 말 옆구리를 차며 황제를 찾아 나섰다. 공교롭게도 최의의 장원에 이르렀는데 최의가 수급을 보고 묻자 민공이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최의가 민공을 이끌어 황제를 알현하게 하니 황제와 신하가 해후하고 서로 붙잡으며 통곡했다. 민공이 아뢰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주가 계시지 않으면 아니 되오니 폐하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주십시오."


최의의 장원에는 삐쩍 마른 말 한 필밖에 없었으나 황제가 타도록 준비를 마쳤다. 진류왕은 민공의 말에 함께 탔다. 장원을 떠나 도성으로 가는데 3리를 채 못 가서 사도 왕윤(王允), 태위 양표(楊彪), 좌군교위 순우경(淳牛瓊), 우군교위 조맹(趙萌), 후군교위 포신(鮑信), 사례교위 원소 일행이 수백의 인마를 거느리고 황제를 맞이했고 군신이 모두 울었다. 먼저 사람을 시켜 단규의 수급을 도성에서 효시하여 백성이 보게 했고, 별도로 좋은 말로 바꿔 황제와 진류왕을 모신 다음 호위하여 도성으로 돌아왔다.


어가가 몇 리를 채 못 갔을 떄, 갑자기 깃발이 해를 가리고 먼지가 하늘을 뒤덮더니 한 무리의 인파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백관은 놀라 새파랗게 질렸고 황제 또한 크게 놀랐다. 원소가 말을 달려나가며 물었다.


"누구냐?"


수높은 깃발 그림자 아래에서 한 장수가 나는 듯이 달려나오며 엄하게 물었다.


"천자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황제는 벌벌 떨면서 입을 가렸다. 진류왕이 앞으로 나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는 호통을 쳤다.


"거기 오는 자는 누구인가?"


"병주목 동탁이다."


"너는 황제를 보호하러 왔느냐? 아니면 위협하러 왔느냐?"


"특별히 황제를 보호하러 왔다."


"호위하러 왔다면서 천자께서 여기 계신데 어찌하여 말에서 내리지 않는가?"


동탁이 깜짝 놀라 허둥지둥 말에서 내려 길가에서 절을 올렸다. 그제서야 진류왕이 동탁을 위로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말에 실수가 없었다. 속으로 의외라고 생각한 동탁은 이대부터 이미 폐립(廢立)의 뜻을 품었다.


이날 궁으로 돌아와 하태후를 알현하고 모두 통곡했다. 궁중을 점검해보니 황위 이양에 필요한 전국옥새(傳國玉璽)가 보이지 않았다.


동탁은 삼천의 군사들을 성 밖에 주둔시키고 4~5일 간격으로 밤에 네 개의 성문으로 병사를 내보냈다가 이튿날 깃발과 북을 늘어놓고 규모가 큰 것처럼 기세 드높게 성으로 들어와 '서쪽의 군대가 또 낙양에 도착했다.'고 선언하게 했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동탁의 군사는 이루 다 셀 수가 없게 여기고 불안해했다. 게다가 동탁은 궁정을 출입하면서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


후군교위 포신이 원소를 찾아가 동탁이 틀림없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니 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하자 원소가 말했다.


"조정이 이제 막 안정되어가는데 가볍게 행동할 수 없소."


포신이 왕윤을 만나 역시 그 일을 거론하자 왕윤이 말했다.


"차차 상의해보시지요."


포신은 자신의 군사들만 이끌고 태산군으로 가버렸다.

동탁은 하진 형제 부하의 군사들까지 모두 장악한 뒤 이유에게 은밀히 일렀다.


"내가 황제를 폐위하고 진류왕을 세우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이유가 말했다.


"지금 조정에는 주인이 없으니, 이때를 이용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늦어져 변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일 온명원(경극의 제목)으로 백관을 소집해 폐립의 일을 알리고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참수하십시오. 권력을 행사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동탁이 기뻐했다.


이튿날 연회를 크게 열어 공경(삼공구경. 고관을 뜻한다.)들을 초청했다. 공경들이 모두 동탁을 두려워하니 누가 감히 오지 않겠는가. 동탁은 백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원문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검을 차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동탁이 술을 멈추고 연주를 그치게 한 다음 이내 엄하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께 할 말이 있는데 조용히 들어주시오."


모두 귀를 기울였다.


"천자는 만백성의 주인이라 위엄 있는 모습과 행동거지가 없으면 종묘사직을 받들 수 없소. 그러나 금상께서는 나약하시어 진류왕의 총명함과 학문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니 진류왕이 제위를 계승할 만하오. 그래서 내가 황제를 폐위하고 진류왕을 세우고자 하는데, 여러 대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모든 관원이 들었으나 감히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때 좌중에서 한 사람이 상을 밀치고 곧바로 나와 술자리 앞에 서서 크게 소리쳤다.


"안 된다! 그건 절대 아니 될 말이다! 네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감히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느냐? 천자께서는 바로 선황제의 적자(嫡子)이며 애초에 아무런 과실도 없으신데 어떻게 폐립을 논할 수 있으냐! 네가 찬탈하여 반역을 꾀하고자 하느냐?"


동탁이 보니 병주자사 집금오 정원(丁原)이었다. 동탁이 성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내게 순종하는 자는 살고 거역하는 자는 죽으리라!"


동탁은 바로 패검(佩劍. 허리춤에 차는 검)을 뽑아 들고 정원을 베려 했다. 이때 이유가 정원 뒤에 있는 한 사람을 보았는데 타고난 기개와 풍모가 범상치 않고 위풍당당했으며 손에 방천화극(方天畫戟)을 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동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유가 급히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오늘 이런 술자리에서 국정을 의논하는 것은 불가하오니 내일 도당(대신들이 정사를 의논하는 곳)에서 공론을 벌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백관이 모두 권하자 정원도 말을 타고 떠났다. 동탁이 백관에게 물었다.


"내가 한 말이 공정한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 단 말이오?"


노식이 말했다.


"명공께서 틀렸소. 옛날에 상나라 태갑이 사리에 밝지 못하자 이윤(伊尹)이 그를 동궁(허베이성 린장)으로 쫓아냈고, 창읍왕(전한의 9대 황제)은 즉위한지 27일 만에 3000여 가지의 나쁜 짓을 저질렀기에 곽광(藿光)이 태묘(太廟. 봉건황제가 선조에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에 고하고 그를 폐위했소. 금상께서는 비록 어리나 총명하고 어진 마음과 지혜가 많으며 아울러 털끝만 한 과실도 없소. 더구나 공은 지방주의 자사로서 평소 국정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또한 이윤, 곽광 같은 탁월한 재능도 없으면서 어찌 폐립의 일을 억지로 주장하시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이윤과 같은 뜻이 있으면 그럴 수 있지만, 이윤과 같은 뜻이 없으면 찬탈이다'라고 했소."


동탁이 크게 성내며 검을 뽑고 앞으로 나와 노식을 죽이려 했다. 시중 채옹과 의랑 팽백이 간언했다.


"노상서는 천하에 명망이 높은 분이라 지금 그를 해치면 천하가 놀라 두려우할까 염려됩니다."


동탁이 비로소 멈췄다. 사도 왕윤이 말했다.


"폐립의 일은 취중에 상의할 일은 아니고 다른 날 다시  의논하기로 하시지요."


이에 모두 흩어졌다.


동탁이 검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원문에 서 있는데 갑자기 극(일반적인 창에 횡날을 붙여 찌르고 벨 수 있는 창)을 든 사람이 말을 채찍질하며 뛰어오르고 원문 밖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동탁이 이유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냐?"


"저 사람은 정원의 수양아들로, 정원의 주부(主簿)이기도 합니다. 성이 여(呂)이고 이름이 포(布)이며 자가 봉선(奉先)이라는 자입니다. 주공께서는 잠시 피하십시오." **


동탁은 바로 온명원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이튿날 정원이 군사를 이끌고 성 밖으로 와서 싸움을 걸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화가 난 동탁은 군사를 거느리고 이유와 함께 나가 맞섰다.


승부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동탁의 군사: 실제로 동탁은 이 당시 병사 3000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 방식을 이용해 병주에서 많은 군사들을 불러들인 것처럼 꾸몄다. 그의 군세가 늘어난 것은 하진 형제의 군사를 흡수한 다음이다.


** 여포와 정원: 연의에선 정원이 여포를 수양아들로 삼았다고 하지만, 정사에선 드러나지 않아 허구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여포의 아빠 트리플크라운이 사라지므로 대체로 따르지 않는다. 또한 여포는 지능 1짜리 돌대가리로 자주 그려지는데, 주부는 문관이다. 아마 그렇게까지 돌대가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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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관 메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