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날씨가 나의 기분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온몸이 젖어 끈적끈적했고, 한시라도 빨리 몸을 씻고싶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이용해 빠르게 집에 도착했다.

도어락 버튼의 삐삐대는 소리가 나에게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급히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욕실로 뛰쳐들어갔다.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욕조에 들어가 물을 틀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적지근한 물줄기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옷이 물을 잔뜩 머금어 무거워질때 즈음, 나는 옷을 벗어 비누를 연신 문질러댔다. 옷을 전부 빤 후 수건걸이에 잠시 걸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역시 끈적끈적한건 질색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을 마친 후 돌아와서 씻는 쾌감은 정말 끝내줬다.

오히려 이러한 쾌감 때문에 일을 계속하는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턴가 일을 마친 후 옷을 빨고 샤워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었다.

잠시동안 샤워기 쪽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감은 후 물줄기가 나의 얼굴을 타고 발뒤꿈치까지 내려오는 느낌을 즐기다 이내 물을 껐다.

찬장에서 수건을 한 장 꺼내 머리를 가볍게 털고 몸을 닦았다.

옷도 물기를 짠 뒤 베란다의 옷걸이에 걸어 널어놓았다.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소파에 걸터앉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티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요즘 떠들석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시체는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훼손되어 있었고, 사지가 잘려있었다는 시시콜콜한 내용의 이야기였다.

수없이 들은 같은 내용의 뉴스를 또 듣기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어느새 나의 손가락은 다시 리모컨의 전원을 향해있었고,

나는 손가락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게 내버려 둔 후 침실로 터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유난히 업무의 강도가 강했던지라 한숨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며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핸드폰의 알람소리가 나의 귀를 강타했다.

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사과 한 개를 씻어 한 입 베어물며 현관문을 나섰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정말 사랑하지만 가끔은 쉬는 날도 필요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오늘 업무를 마치면 며칠은 푹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어두워진 골목길에서 조용히 장갑을 꼈다.

그 후 목표물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오늘도 뉴스에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겠지, 

진절머리나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