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말 개성의 왕건네 가문도 황해도 평주, 정주, 황주 등과 함께 패서 호족으로 분류됐었고 왕건의 정략결혼도 확실히 한양 쪽보단 황해도 쪽 위주

고려 초기까지도 패서계 호족 위주로 정치가 돌아갔고

고려의 경기는 지금의 황해도 지역이 꽤 많이 포함됐었음.

물론 고려시대까진 황해도의 변두리도 경기도의 변두리도 아닌 개성 그 자체가 중심도시였지만 아무래도 임진강 남쪽보단 북쪽이랑 더 관련이 많았던 느낌이고

조선 건국 후 개성을 격하시키려고 일부러 경기도의 북쪽 끄트머리 도시로 넣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