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농협은행 뒤쪽 골목으로 가면 보성양탕이라는 식당이 있다.

 

흑염소 육수랑 흑염소 고기를 넣은 국을 전라도 말로 양탕이라고 함. 염소고기랑 토란대, 머윗대(이것도 전라도에선 머굿대라고 그럼)가 들어가며 육개장처럼 약간 얼큰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임. 한국에 그 털 복실복실한 양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염소를 양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양을 넣은 양탕일 수도 있고, 보양식이라고 해서 보양탕을 줄여서 양탕인 것일 수도 있음.

 

보성에 보성양탕만 있는 것은 아니고 미력면사무소 쪽에도 양탕집들이 있는데 본 글에선 그냥 싸그리 묶어서 미력양탕이라고 부르겠음. 보성양탕과 미력양탕은 약간 다른데 미력양탕은 고기를 칼로 썰어서 비계가 붙은 채로 내주지만 보성양탕은 비계도 일일이 다 뜯고 살코기만 엄선해서 직접 손으로 찢어서 줌. 그리고 미력양탕은 다대기를 풀어서 더욱 얼큰하게 먹지만 보성양탕은 맵지 않고 염소 육수 본연의 맛을 더 느낄 수 있음. 가격도 미력양탕보다 쌈. 그리고 미력양탕은 보신탕을 같이 팔지만, 보성양탕에선 개고기를 팔지 않고 오로지 염소고기만 취급함. 메뉴라곤 양탕이랑 염소수육 2개밖에 없음.

 

매장 외관은 일반적인 2층집이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중앙에 홀이 크게 있고 오른쪽에 객실이 있고 정면 좌측에 주방이 있음. 그리고 오래 전에 만든 메뉴판과, 파워포인트로 만든 듯한(...) 원산지 표기가 걸려있음. 가격은 1그릇에 1만원, 특은 1만5천원.

 

이 식당이 아빠 친구네 집이라 그랬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도 이미 장사를 했었음. 1980년에 발급된 사업자등록증이 걸려있는 것을 보니 저 때 최초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고 해도 40년이 다 돼가는데, 바깥에 있는 간판에는 62년간 양탕만을 전문으로 취급했다고 돼있음.

 

애초에 염소고기 자체가 마이너한 식재료다 보니 양탕이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니다만, 지갑 사정이 나쁘지 않은 분들한테라면 부담 없이 소개할 수 있는 정도 같음. 녹차 드립이나 치는 관광객용 식사들 뺨치는, 진짜 보성 대표 향토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언젠가 보성양탕이 명맥이 끊길까봐 무서움. 양탕이라는 음식 자체가 잘 알려져있지 않다 보니까 사실상 아는 사람만 와서 먹는 수준인데, 계속 말하다시피 양탕이 자주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격이 아니다 보니까 고정 수요층들이 찾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음. 근데 양탕, 염소고기란 것이 너무 생소해서 관광객들한테 소개해도 뭔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 같단 거... 그나마 주인 할머니 밑에 아들이랑 며느리 분은 양탕집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아래로 세대가 내려가면 과연 장사도 별로 안 되는 양탕을 자식이든 누구든 이어받으려고 하기는 할까, 그래서 명맥이 끊기지는 않을까 샹각을 하니까 굉장히 아쉽고 허함. 보성양탕뿐 아니라 대부분의 토속음식이 비슷한 처지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