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며 바다에서 범선의 시대가 막을 내린데 이어 증기기관과 철강은 세계의 대양뿐만 아니라 하천, 운하, 육지에서도 교역의 혁명을 일으킴.


 이리 운하가 1825년 완공되면서 북미 내륙의 수상 운송비를 크게 줄였지만, 철도 운송의 효율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오대호는 거기 접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지대에서만 접근성이 있을 뿐이었기에, 미국으로서는 철강 기술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했음.

 영국은 작은 섬나라여서 경작 지역이 해안에서 100km 거리를 넘지 않는다는 지리적 이점에다 육상 운송비가 막대하다는 점 때문에 프랑스나 미국같은 국가들에 비해 엄청난 이익을 누림.

 그렇지만 1830년대부터 약 80년간 1톤 화물을 대평원에서 오대호 수계로 옮기는 비용이 170달러에서 20달러로 줄었고, 여기에는 베서머의 철강기술로 만들어진 고압 강판 보일러와 철강 궤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1855년 슈피리어 호가 이리 운하 수계와 연결되면서 대평원의 접근성이 매우 향상되었고, 미네소타의 철과 다코타의 곡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수상 운송의 효율성이 육상 운송보다 낫다는것이었음.

 하지만 갈수록 철도의 속도와 안정성이 더 신뢰받았음. 운하 운송에 필요한 환적도 없고 겨울의 결빙 위험도 없었음. 

 결국 철도가 운하계를 누르게 되는데, 동부의 해안으로 향하는 철도의 중심지가 된 시카고를 거치는 화물의 가치는 점점 커지는 반면, 이리 운하를 거치는 화물의 가치는 점점 떨어졌고 결국 운하계는 분탄이나 철광석 등 값싸고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수단으로 전락함.

 철도는 북미 대륙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의 농민들에게도 저렴한 운송으로 인한 혜택을 줌.

 한편, 고전경제학의 생산요소에는 노동력, 토지, 자본이 있음. 각 요소는 임금, 지대, 이자를 발생시키는데, 철도로 인한 운송비 하락이 결국 이들의 수렴을 가져옴. 


 곡물법 폐지,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관세 인하 분위기가 고조되고, 운송비 인하와 기술의 발달로 관리 부담과 보험료가 줄었는데, 이는 결국 전 세계적인 가격 수렴을 불러옴. 


 구세계와 신세계에서 밀 가격 차이는 93%에서 16%로,  선철 가격 차이는 85%에서 19%로, 제련 동의 차이는 32%에서 0%로 줄었고 섬유는 역전됨. 밀과 쌀을 모두 소비하는 인도의 영향으로 쌀 가격도 점점 동조됐고.


 임금과 금리는 노동력과 자본이 부족한 신세계에서 높았고 지대는 토지가 부족한 구세계에서 높았는데, 19세기 중-후반 이들이 점점 수렴되는 모습을 보임. 


 지대는 당연히 신세계의 곡물과 육류가 유럽으로 대거 건너오면서 농지 가격이 수렴된 거. 자본시장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자율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심지어 자본과 신용의 전송도 가능해짐. 미국이나 프랑스나 인도나 비슷비슷해짐.


 임금 수렴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한데, 가장 유력한 설명은 신세계의 높은 임금이 이주를 유도했다는거? 결국 유럽인의 이주로 임금 격차도 점점 줄었음.  1900년 아르헨티나의 실질임금은 이탈리아의 3배였지만 지금은 역전되어 이탈리아가 5배 넘게 높음. 


 어쨌든, 미국 노동자들과 영국 지주들의 패배에 반해 영국 노동자들과 미국 지주(농민)은 승리한거임. 19세기 말에는 이에 대한 반발이 자유무역을 수용한 제2제정 프랑스를 시작으로 멕시코, 영국, 미국에 퍼져나갔음.


 프랑스는 드넓은 내륙국이고 농업국가였음. 19세기 당시 영국 인구의 1~20%가 농업에 종사한데 반해 프랑스는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력이 농업에 종사했음. 게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져서 자본시장까지  망해버림. 


 그런 상태에서 출발한 공화국이 농민 표를 무시할순 없었기에 점차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됐고, 관세장벽으로 프랑스 농업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전개됐는데, 보호무역이 늘 그렇듯이 별로 좋은 결과를 내진 못함.


 영국에서는 네빌 체임벌린의 아버지인 조지프 체임벌린이 20세기 초 몰락하는 산업(특히 철강)을 보호하기 위해 영연방 블록관세를 주장하기도 했음.


 이와중에 자유무역으로 차별화된 길을 걸은 덴마크는 공업국가 루트 대신 협동조합과 품질좋은 돼지고기와 낙농업 제품을 중심으로 하는 개방적인 경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음.


 독일은, 유럽에서는 토지가 남아 도는 상황이었지만 미국, 아르헨티나 등 너무 강력한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망하게 생긴 융커들이 보호무역을 주장하기도 했음. 물론 노동자들은 희소한 요소를 보유했기에 자유무역이 유리하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