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왜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그 배경인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안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거 먼저 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90년, 길었던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라고도 하죠)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을 정비하기 시작합니다. 폐도령으로 무기를 거둬들여 농민들이 무기를 쥐는 것을 방지했고, 검지(토지조사)를 통해 세금을 정확히 걷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여담이지만 그렇게 크지 않은 한 번에서 거둬들인 검이 배 두쳑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의 혼란을 짐작할 수 있죠. 암튼 여기까지만 했으면 히데요시는 꽤나 유능한 지도자로 우리나라에도 기억되겠죠. 그런데 이 쥐새끼는 조선과의 전쟁을 택합니다. 물론 그게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죠.


일단 남아도는 병력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정부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죠. 히데요시도 그걸 알아서 세력이 강한 다이묘는 외곽으로 보내버렸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만 해도 개깡촌인 에도로 쫓겨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습니다. 일본사를 대강 아시는 분이라면 들어본 사쓰마, 초슈 번도 그런거거요. 암튼. 히데요시는 이들을 효과적으로 써먹는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한겁니다. 겸사겸사 땅 먹어서 자기 측근도 나눠주고 자기도 가지면 개이득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전쟁이 시작됩니다.


슬슬 일본 내에서 전운이 감돌 때 쯤, 가장 이 상황을 우려스럽게 지켜보던 건 대마도 도주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마도는 땅이 참 사람이 농사짓고 살기에는 별로였습니다. 


저거저거 평지 하나도 안보이는거 봐봐 저거


그래서 대대로 쓰시마 도주는 조선과 일본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먹고 살아야했죠.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 뭐가 좋겠습니까.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면 일본군은 다 저기를 거쳐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 부담이 매우 커지겠죠. 그래서 쓰시마 도주는 조선에 여러차례 경고의 목소리를 냈지만 조선은 그거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죠. 그런데 도주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께림직하긴 했는지 통신사를 파견했습니다. 여기서부턴 다 아시는 이야기죠? 정사와 부사의 대답이 완전히 반대였다는 점. 여튼 조선 조정은 침략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짓고 대비를 안합니다. 끽해야 좀 괜찮은 장수 승진시키고 성벽 정비 정도? 그런데 저 '좀 괜찮은 장수'에 이순신 제독이 계셨습니다. 2계급 특진이었는데, 이마저도 너무 진급이 빠르다고 태클이 들어왔었죠. 받아들여지진 않았습니다 게임 시작도 못하고 끝날 뻔 


암튼 그렇게 시작된 전쟁. 뭐 과정은 생략하도록 합시당. 다 아시잖아요? 


설명 끗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단 한 번의 해전도 없이 스무스하게 랜딩한 일본군은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합니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명나라로 지원을 요청하러 간 사신에게 중국 관료가 처음에는 조선이 일본과 손잡고 명을 치려는 거 아니냐고 했답니다. 너무 빨리 무너져서;;


쨌든 그렇게 나아가던 일본군은 2달이 지나자 멈칫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의병장과 킹갓앰퍼러충무공마제스티 이ㅡ순ㅡ신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명나라 군대도 참전했고요. 당시 일본의 전략은 육군을 주력으로 하고, 해군이 나아가 보급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급을 담당해야 할 해군이 제해권을 잃고, 육지로 보급을 하려해도 



이 한반도의 크고 아름다운 산지는 그것조차 힘들었죠. 길게 늘어진 보급선은 의병들의 먹잇감이 되었고요. 더구나 명군의 맹렬한 공격은 일본군을 궁지에 몰아넣었죠. 그러나 벽제관 전투에서 크게 한 번 데인 명군은 진군을 멈추고 일본과 협상에 들어갑니다. 애초에 자기네 나라 싸움도 아닌데요 뭐. 그래서 강화회담에 들어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1.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으로 삼는다.
2. 무역 증서제를 부활한다.
3. 일본과 명나라 양국 대신이 각서를 교환한다.
4. 조선 8도 가운데 4도를 일본에 이양한다.
5. 조선의 왕자와 신하를 볼모로 일본에 보낸다.
6. 포로로 잡고 있는 조선의 두 왕자(임해군, 순화군)를 석방한다.
7. 조선의 권신이 일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다.

에라이 그지같은 새끼들아 청나라도 그러진 않았다!


지금 보시는게 일본이 내세운 강화회담 조건입니다. 2번 3번은 그나마 ok할만 한데 1번 4번은... 그렇게 양측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회담은 결렬되었고, 일본은 재침략을 시작합니다(회담 도중 3국을 낚은 희대의 사기극이 있었지만, 고건 내용이 너무 길어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일본군의 목표는 확실했습니다. 조선 4도의 확실한 점령. 그렇게 하기 위해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잔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손대지 않은 곡창지대 전라도 점령을 시작하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좌군이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를 뒷받침하는게 일본 수군이었고요. 그렇다면 남해안을 지켜야할 수군이 어디갔느냐


칠전량에서 모조리 산화합니다. 저게 진짜 말이 안되는 건데 조선군 진격로 보이십니까? 저 거리를 척후같은 사전 확인 없이 쭉쭉 간겁니다. 아 시발 쓰다보니 또 화나네


여튼 그러던 와중에 다시 한 번 일본군의 의지를 꺾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조명 연합군이 다시금 반격을 시작했고,



명량에서의 승리로 제해권을 다시 확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