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공원 근처, 예전에 제가 잠시 살았던 곳입니다. 장대공원 앞에서 놀다보면 순천 최고 빗자루 노선, 77번이 이곳 근처에서 광양 방면으로 들어갑니다. 이렇듯 순천 장대공원 근처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에도 그렇고 예전 순천읍내에서 순천역/광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자(지금도 순천에서 아랫장/터미널 앞 혼잡구간을 피하려면 터미널 뒷길로 우회해서 순천교를 타고 장대공원 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순천역 앞으로 들어가는 게 빠릅니다) 반대로 동천 동부 지역에서 순천읍내와 낙안/벌교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순광로/백강로 못지 않게 이곳도 많이 막히는 구간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그랬는데 1948년 당시에도 이곳은 순천읍내에서 역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나 봅니다.(지금은 팔마대교 등 동천에 다리가 많긴 하지만요) , 이곳은 사진의 설명판처럼 경전선과 전라선이 만나는 중요 역이었던 순천역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14연대 군인들과 경찰 간의 총격전이 최초로 벌어진 곳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뛰어놀았었던 것 같은데, 올해 이 비석이 생기고 나서 보니까 이곳이 다시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만 아픈 역사가 있는 것은 아닌데요, 바로 옆 조곡동의 조용한 마을, 동천 제방(둑) 근처라고 둑실이라고 이름붙여진 마을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입니다. 둑실은 현재 순천 시내버스 59번이 정차하는 마을입니다. 이곳에서는 사건 당시 매곡동 학살 사건과 거의 비슷한 급으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조용해 보이는 이 마을도, 여순 사건 당시 아픈 역사로 얼룩져 있습니다. 당시 둑실-장대공원-순천역 라인에서 주요 거점인 순천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싸우다 보니까 중간에 있었던 이 마을들이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픔의 현장은 또 있습니다.



남간에도 순천북초교에서 사람들을 갈라놓고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사실입니다. 순천북초등학교는 지금도 매곡동에 남아 있는 학교입니다. 당시 증언에 의하면 갑작스런 군인의 출현에 주민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고 두려운 생각에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군인들은 주민들을 모두 나오게 했고 군인들은 당산나무밑 공터에 이들을 모이게 하였다가 성서신학원(현재 매산여자고등학교 인근)입구 아래 20미터 지점에서 매산중 방향으로 20미터 아래 지점의 담벽에 세우고서는 그대로 총을 난사하고 가버렸다.”는 증언이 있었는데요, 이 대규모 학살지는 지금 주택과 밭으로 덮인 구역도 많아서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다만 시신을 버릴 때 페니실린 통에 희생자의 이름을 담아서 매장했기 때문에 지금도 신원을 파악하려면 파악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정말 우연히 본 기사에서 여순 사건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서 한 번 보았더니, 제가 마을 분들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그 피해범위가 광범위하다는 걸 알았던 거 같습니다. 마침 4일 전이 여순 사건이 터진 날이라서 더 감명 깊게 읽었던 거 같습니다. 이상, 제 글을 읽어 주신 돚챈러 여러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