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난 현재 우리 사회의 대세 주택인 아파트의 장점을 부정하지도 않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불가피한 선택임을 알기에 비판할 생각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머지 글을 쓰겠음. 아파트는 가성비가 좋고 한국인들에게 현대적인 주거와 자기 집을 제공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주거 양식이었음. 난 건폐율이 엄청나게 높은 낡은 주택가에서 살아봤고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데 낡은 주택가보다 아파트가 더 살기 좋은 건 사실임. 


그러나 과연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의문임. 그래서 우리가 농업을 포기하면 미국식에 가까운 주거지에 살 수 있다는 글도 썼고. 진지한 주장은 아니었지만 고려는 해 볼만하다고 지금도 생각함. 


아파트는 그 자체로서 본질적인 한계가 두 가지 있음. 

첫째, 건폐율을 낮추고 용적율을 높여서 여유 공간을 넓히더라도 사람의 시야를 가로막는다는 경관 상의 한계. 한국인들이 시야를 막는 산에 익숙하긴 해도 산이 시야를 가로막는 것과 고층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는 건 전혀 다른 경험임. 후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꼭 싫어하지 않더라도 어딜 가나 고층 건물들이 시야를 가로 막는 데에 대부분의 삶을 보내는 건 그리 쾌적하지 못한 환경이라고 생각함. 휴일에 자연을 즐기러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음. 좀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경관에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둘째, 자기만의 건물 외부 공간이 없다는 생활 상의 한계.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함. 물론 관리는 힘들겠지만 돈이나 시간 둘 다 또는 하나라도 충분하면 그런 공간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 심리라고 생각함. 아주 넓지 않더라도 날씨 좋은 날 자기 마당에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뭔가를 가꾸거나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애완동물이라도 키우면 더 말할 게 없고. 건물 안만 넓게 만들어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


더 중요한 얘기를 하자면, 그런 주거 양식이 한국에서 정말 최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여야 할까? 한국에 땅이 그렇게 모자라다고? 수도권 면적은 전 국토의 11%쯤 되는데 그나마 개발된 땅은 훨씬 더 좁음. 그런데 한국인들의 반이 여기 모여 산다. 아파트 덕분에 가능해진 일인데 그게 정말 불가피한 일일까? 한국의 농지는 대지(여기서 대지는 지적도의 모든 대지를 다 포함함. 고밀도 개발 지역만 가리키지는 않음)보다 여섯배 이상 더 넓음. 임야는 한국 국토 면적의 3분의 2임. 여기서 농지가 효율적으로 쓰여서 우리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땅일까? 우리 농업은 세계적으로 대단히 비생산적이어서 우리는 같은 농산물을 몇배는 더 비싼 가격에 사 먹고 있음. 좁은 땅에 낑겨 살면서 훨씬 더 비싼 농산물을 사 먹는 게 정말 모두를 위해 행복한 일인가? 난 이걸 좀 의문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수도권에 이미 깔린 인프라? 그냥 쓰면 됨. 그러나 현재도 계속되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계속 수도권에 세계적으로 집중된 인프라를 더 집중하는 게 한국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맞나? 전기차와 자율주행의 개발로 개인 교통수단의 혁명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한국식, 일본식 대중교통만 자꾸 확충하는 게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거야? 지금은 지하철이 혼잡하더라도 편리하지만 차라리 좀 사람들이 넓게 퍼져 살면서 개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함. 초소형 자율주행차를 타고 자기가 원하는 목적지에 정확히 가는 편이 훨씬 더 편하잖아. 물론 당장은 안되겠지. 그런데 그런 날이 우리 살아 있을 때에 오는 건 확실함.


마지막으로 강조하자면 이건 지금 당장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자는 주장이 아님. 이제까지 온 방향 그대로 가속도를 붙여서 앞으로 더 나아가고 다른 방향을 볼 필요는 전혀 없다는 믿음이 맹목적인 미신일 수도 있다는 거지. 


덧글 : 아파트의 가성비를 인정하면서 성냥갑 아파트를 바꿔서 경관을 바꾸자는 제안은 모순되었음. 성냥갑 아파트는 가성비가 제일 좋으니까 일반화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