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만 발전을 못한 게 아닌데. 조선은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에서 뒤처져 있었음. 냉정하게 보면 조선 초반에도 서양과 비교하면 뒤처져 있었다고 봄. 중일과 비교해도 우물안 개구리였을 걸

유교 사상, 그 중에서도 성리학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더 근원적인 문제는 국민들이 성리학 공부에만 목을 매게 만든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 자체였음. 전근대적 체제가 무르익으면 여유 있는 계층이 모두 관료가 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게 되는데 그런 나라에서는 지식이든 사상이든 발전을 할 수가 없음.

조선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이미 지구반경과 한양의 위도를 계산해서 일식을 예측하고, 기상을 관측해서 농사에 이용하곤 했다. 조선 초충기 지도를 보면 당시 기준으론 매우 목적에 부합하는 것들이었다. 적어도 16세기 전까지 수학, 의료, 무기, 과학 수준은 당대의 유럽보다 앞서면 앞섰지 못하진 않았다. 학계에서 조선을 진단할 때 여러가지 각도로 내재적 원인을 찾고, 외부적 환경변화를 대곤 하는데... 그걸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회가 유지가 될만큼의 건강함은 있었으니 500년이나 버틴 거고, 외부적 충격을 이겨낼만큼 충분히 건강하지 못했으니 결국은 망했다는 거다. 박지원이 지적한 것처럼 장사를 안하니 수레도 안쓰고, 수레를 안쓰니 길도 없고, 조선은 길이 험해서 수레가 다니기 힘들다고 한탄만 했다. 조선 후기의 철물을 보면 고려 때보다 열처리 수준이 훨씬 조악해졌다. 송시열은 주자만 맞고 나머지는 모두 이단으로 규정했는데 정조는 그런 송시열을 송자로 추대했다. 그런 나라가 경신대기근과 흑사병 창궐같은 세계적 재난은 또 적은 피해로 수습하고 넘어갔다. 그게 조선이란 나라다.

꼰대들이 많아서

조선이 지리학을 발전시켜야 할 이유가? 조선이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가 마찬가지인데 이유가 뭘지 생각은 해보고 성리학이니 뭐니 탓하는건가?

조선은 동아시아, 특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중국에도 지리학이 있었음. 바로 풍수지리임.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보면 설명할 수 없는 '기'(최근에는 수분기, 즉 습기의 이동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음)를 기반으로 앉음새와 흥하는 자리 망하는 자리를 설명하기 때문에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의 작동원리(기)를 기반으로 도시나 마을의 발달 조건을 분석하고 어느 지방이 가장 살기 좋은지를 분석하는 학문이었음. 이게 지리학이 아니면 뭐임? 거기다가 풍수지리가 한국으로 넘어와서 한국에 적용되면서 한국에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함.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를 필두로 매 왕조마다 역사서를 편찬할 때에는 지방의 자연물이나 인문 환경 등을 기록한 지리지를 편찬하였음. 당장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종실록지리지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지리지를 발간했고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실학파 학자들의 조선 후기 저술인 택리지, 강역고, 대동여지도랑 한 쌍을 이루는 대동지지 등 다양한 지리학 저술이 있었고 지도로 가면 조선 태종 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시작으로 세조 9년에는 실측에 기반한 동국지도를 편찬했음.

왜 지리학의 발전을 새로운 땅의 '발견'으로만 한정하는지 모르겠음... 우리도 나름의 체계를 갖춘 학문과 기록물이 있는데 그저 서양의 기준으로 비 과학적이다라고만 하면서 무시할 수 있을까? 대동여지도는 고대로 부터 내려오던 지리학의 계보에서 하나의 큰 업적일 뿐이지 그것을 전부라고 치부하면 안될거라고 생각함.

그래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정도는 나와줌

고대 희랍부터 근대 민족국가까지 다 '서구'로 퉁치는데 코딱지만한 조선 혼자 서구를 이기면 그게 더 말이 안되는거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