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챈철학연구

순애에 대한 학설은 참으로 다양하나, 우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2226794를 확실하고 자명한, 모두에게 성장적인 부분에서 이를 정통 순애로 채택해 이를 토대로 순애를 검증하는 "정통의무론적 순애론"을 채용한다. 하지만 모든 망가가 이와 같은 학설을 따라가는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망가, 특히 스스로 순애라고 주장되며 또한 평가되는 다수의 망가들은 검증된 확실한 순애로써의 인정능력이 결여되거나, 주류 학설에서 배제되는 모습을 보인다.


1288341과 같은 경우에는 남여 1:1의 근본법칙을 어긴, 레즈보빔망가이기에 주요한 순애론에서 배제되었다. 다만 그 이익당사자를 제외한다면 명백한 순애이기에, 일부 보빔 세력에선 이를 정경으로 인정한다. 다만 이는 순애의 방식이 아닌 구성원의 논의로, 보다 자세연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840654에 대해서는, 근친 소재의 사용과, 하렘의 요소로 인해 순애의 정통성을 위협받아, 정통 순애학파에선 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하렘의 명맥한 적대시가 점차 허물어지는 현 시대의 조류에서, 760596과 같은 급진적 하렘이 아닌, 이러한 온건적 하렘과 약간의 근친 요소에 대해서 일반 이용자들은 보편적 순애로 받아들이는 추세라고 혹자는 평가한다.

1585356의 경우에는 상당히 난해하다. 페티쉬와 원나잇의 요소는 순애로써 인정받는것이 가능한가? 1008791에 대하여는, '사람이 아닌 존재'와의 쓰리썸은 인간성의 영역인 순애에서 이해가 가능한가? 1435757에 대하여, 극단적 예시의 오네쇼타 조합과 수유대딸 페티쉬는 근원적으로 순애로 정의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는 순애에 대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이 표준적인 방법론으로 여겨진다. 절대주의적 순애의 입장은 일반적인 면대면의, 이상성욕적이지 않은 순애의 입장을 취하며 의무론적 성향을 보인다. 상대주의적 순애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규약을 무시하고 순애의 외연을 확장하는 행동을 취한다.


우리에게 있어 순애란 과연 무엇인가? 순애에 대한 다양한 학설에서, 현재까지의 주류학설은 본 연구가 채택한 학설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입지가 강한 학설은 존재한다.

단순한 마약, 피폐, 얀데레, 임신엔딩만의 피상적인 단독적 요소만을 추구하는것에서 벗어나, 보다 난해하며, 또 한 편으로는 혐오스럽고 괴기한 부분까지 순애의 영역으로 인정해야한다는 급진적 학설 역시 발전중이다.


이를테면 보빔, 하렘, 근친의 요소를 폭넓게 포용하는 개혁순애학설, 오직 한쌍의 주인공, 오직 한개의 스토리를 주장하는 일명 스토리아크주의자(이들은 단 하나의 커플만이 한 망가에 등장하는것만을 주장한다. 2283216이 대표적이다.), 강간, 면간등의 행위를 필연적으로 통해 궁극적 사랑으로 결합하는 것을 주장하는—이를테면 1997804와 같은—심리적 이기주의의 순애를 보여주는 자들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오직 쓰리썸만을 주장하거나, 오직 남 1에 여 5명 이상의 하렘을 추구하는 극단적 하렘론, 극단적으로 나아가 여동생과 같은 존재만의 등장을 확언하며 근친을 추구한다거나, 소꿉친구 진화론만을 주장한다거나와 같다.


아직도 순애에 대한 연구는 무궁무진하나, 이에 대한 연구는 막막한 상황이다. 우리는 순애에 대해 탐구하기에 앞서 NTR과 같은 행위로부터 순애를 구분짓는, 형이상학적 분야의 순애철학을 재정의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완벽한 이단이겠지만, "1474587또한 결국엔 임신엔딩이니 순애가 아닌가?", "1136775도 행복하니까 순애이다"라고 주장하는 학설들이 존재하였으나 그에 대한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통해 사라졌다. 과연 이것들은 순애일까? 혹은 순애가 아닐까?


과연 순애와 비-순애를 결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2226794는 순애고 1405070은 순애가 아닌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아직도 순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세계의 한계는 순애의 한계이다. 우리는 순애가 아닌 것에는 침묵해야한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