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챈철학연구

우리는 보편적으로, 최면을 통해 변형된 상태에 대해서는 해당 인간본성의 자유의지가 투철된 주체적인 상태라고 판단하지 아니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그러한 정의는 순애라는 관념에서 역시 정의되는가?


일전에 순애에 관하여 일대일대응으로 양 객체가 각각의 동일한 의지를 통해 합치되어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였다. 이러한 정의에서, 과연 최면상태는 적용되지 아니한단말인가?


최면이란 본질적으로 약화된 심리상태이며, 이는 흔히 "사랑에 빠졌다"라는 상태 역시도 일종의 최면이라고 할 수 있는것이다. 자연적 경향성과 본능의 관점에서, 애당초 사랑이라는 관념은 실재한다 할 수 있는가? 육체적인 사랑의 갈구인 에로스 그 자체는 인간의 이성적 상태를 반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싶다. 그러나 플라토닉한, 그러니 육체적 관계를 배제한 정신적 교감의 사랑만이 이성적인 상태이냐라고 한다면 그 역시 아니다. 사랑은 기계론적 관점에서 변이에 가까운 심리적 편향의 상태로, 그 존재 자체는 특수환경이 주어질때만 발현하는 특수한 현상인것이다. 


이렇듯 최면과 사랑은 그 자체가 크게 다른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랑 자체가 최면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론할 수 있다. "주체적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허용되는가?"라고. 하지만 이미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의지는 사랑의 편향이 작동되는 기점부터 무시된 상태이며, 원만하게 구성되었다는 표준적 순애 모델과 최면순애는 그 개념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덕의 관점에서는 어떠한가? 과연 이것이 타당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옹호하는것은 아니나, 결과론적 관점에서 결국 사랑이 성사되고 관계가 수립되었다면, 또한 그렇게 상대방이 믿고있다면 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의미가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하다.


믿음과 지식의 영역에서 결국 우리는 세계의 정합성과 객체의 편향되어 받아들인다. 최면의 상태든, 내면적 옥시토신의 구성이든 그 스스로가 생물학적으로 관계를 원한다면 이는 곧 의지의 영역이자 정당화된 인식이다.


강간은 순전히 상대방의 의지만으로 구성되나, 최면은 어찌됐든 양 객체가 모두 합치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비난가능성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