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3일 강릉의 한 부대.

 

짙은 바다 안개가 낀 해변에 위치한 x-xx초소에서

오전 11시 40분경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조금 뒤 다시 한 발의 총성이 또 났다.

 

약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난 13시 05분경,

 

근무교대를 위해 투입된 후번 근무자 2명이

초소에 다가서서 문을 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초소 앞 경계창을 향해 다가갔는데

경계창을 들여다 보니

 

 

 

피 비린내가 가득한 좁은 초소 안에

두 병사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소 한가운데에서

 

목이 심하게 옆으로 꺾인 상태로

누워있는 병사는 故최00 상병. 

 

故최00상병 곁에서

머리가 날아간 채 의자에 머리를 대고 쓰러져 있는 병사는 故박성식 일병.

 

 

 

오전 11:00 - 오후 13:00까지의 초소 근무를 위해 투입된

최00 상병과 박성식 일병이 오전 11시 13분에

상황보고를 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박일병의 어머니는

 

아들을 국군 병원 냉동고에 남겨둔 채

 

아들이 죽은 원인을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17년간 군과 싸워왔다.

 

그녀는 군의 조사 결과가 이상했다고 한다.

 

 


먼저 현장에서 검출된 피는 모두 박일병의 것이고.

최상병의 피는 모두 나오지 않았다는 것.

 

더 이상한 것은 최상병의 피는

부패가 되어서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날과 혈흔을 분석한 날이

무려 3개월 이상 차이가 났다. 어떻게 가능할까?

 

 


당시 故최00상병 부검의 : 

그러니까 (군)수사기관에서 증거물을 수집했고요

왠지는 모르지만, 이 증거물은 석 달 이상을 묵힌 거예요

 

 

 

당시 군 헌병대 수사관을 만나보았다.

 

 

 

제작진 : 

샘플을 검증해야 되잖아요? 맞는지 아닌지?

혈액을 채취해서 바로 보낼텐데요..?

 

당시 헌병대 수사관 :

그런데 이게 운반 과정에서 부패 될 수도 있는 거고요

 

 

 

당시 헌병대 수사관 :

봉인을 잘못하면 부패 될 수도 있잖아요

 

 

 

이상한 사실은 또 있다.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최상병의 k2소총이

그의 총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거운 자신의 총을 놔두고 다른 병사의 총을 들고 근무를 나갔다는 것

(최상병이대신 들고 나갔던 총은 후번 근무자 일병의 것이라고 함)

 

당시 부대를 관리했던 중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당시 부대 중대장 : 

왜 자기들 총기를 안 갖고 갔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거는 그 때 상황병만이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제작진 :

보통 다른 사람의 총을 갖고 나가기도 하나요?

 

당시 상황병 :

그렇진 않죠 자기 총 갖고 나가겠죠

 

 


제작진 :

확인하지는 않으셨네요?

 

당시 상황병 :

그렇죠, 그것 때문에 저도 영창 갔다 왔을 거예요

제가 책임진 거나 마찬가지죠

 

 

그 부대에서 다른 사람의 총을 갖고 근무를 나간 것은

최상병의 사례가 처음이라고 한다.

 

 

 

 

또한 두 병사의 총에서는

누구의 지문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2~3발 총성이 울렸다는 주민의 증언과는 달리

군이 발견했다고 밝힌 탄피는 모두 7발.

 

 

 

 

그날 박일병이 갖고나온 총알 15발 중

나머지 5발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다음 날 군은 초소 밖에서 4발의 탄피와 실탄 1발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후 군은 모든 총격이 초소 내부에서 벌어졌다며

사건을 결론내린다.

 

 

 

하지만 박일병의 유가족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2년후 재조사에서는

 

초소밖에서 발견된 총알과 탄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당시 국과수 감식관 :

나머지 탄피가 밖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서

유족들이 많이 의문을 갖는다고 그러셨는데요

 

 

 

당시 국과수 감식관 : 

아마도 밖에서 사격이 있지 않았나?

라는 게 저의 추정입니다.

 

 


박성식 일병 측 유가족 :

초소 밖으로 나온 박일병이 초소 안의 선임병을 향해

4발의 위협 사격을 한 다음에

 

다시 초소에(총기 거치대 있는 경계창을 통해) 기어들어 가서

쐈다는 겁니까? 선임병을요?

 

 


당시 국과수 감식관 :

두 사람이 있는데 선임병이 있는 상황에서

하급병이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여기서 장전을 할 수가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 날 탄피 수색에 참여한 병사의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제작진 :

7월 3일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당시 탄피 수색에 참여한 병사 :

다음 날(군이 탄피를 찾았다고 발표한 날) 안나갔죠

 

못나가죠. 내무 생활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틀인가 사흘뒤? 결국 수거를 못했죠

 

 

 

제작진은 3천여장이 넘는 기록에서 매우 수상한 부분을 발견한다.

 

 

 

사건 당일밤인 2002년 7월 3일에 작성한 헌병대 조서에서

이미 총알 숫자가 다 맞추어져 있었던 것.

 

 

 

조서 작성 다음날인 7월 4일에

초소 밖에서 찾았다고 밝혔던 실탄 1발과 탄피 4발 기록이

7월 3일 조서에 적혀있었다. 

 


이정도면 당시 군 조사 결과의 신뢰가 통째로 흔들린다.

제작인은 수사에 참여한 또 다른 군 관계자를 만났다.

 

 


당시 헌병대 수사관 :

제가 볼 때 이 검증 조서는 실제로 작성 일자가 그 이후인 것을
아마 2002년 7월 3일자 사건 발생일 조서에 포함 시킨 것으로 추정이 되네요

 



제작진 :

이 당시에 탄피를 추가로 수거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진이나 기록을 남기셨어요?

 

 

당시 헌병대 수사관 :
항상 회수하기 전 수거하기 전에 먼저 사진을 촬영합니다.

그 당시 사건 기록 목록에 보면 있을 것으로 예측이 됩니다.

 

 


제작진 :

그런데 사진 기록을 저희가 찾을 수는 없었는데요

 

당시 헌병대 수사관 :

아 사진이? 사진이 없던가요?

 

제작진 :

 

 

 

제작진은 영상 분석 전문가에게

사건 당시 어떻게 총격이 이루어졌을지 분석을 의뢰했다.

 



(국과수 현장 검증 영상)

 

법영상분석연구소장 :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법영상분석연구소장 :

초소 중앙 부분에 있을 때가 뇌수 부분이 발견 될 위치라고 한다면

지금 옆에 한 40~50cm 떨어진 위치에 뇌수가 발견되어야 해요

 

이 위치에서 격발하게 되면요.

 

 

초소 중앙에 뇌수가 있으려면 박일병은 어떤 자세여야 할까?

 

결과는 놀라웠다.

 

 


박일병이 최상병의 배 위에 쪼그려 앉거나

최상병의 배 위에 올라섰을 때만 뇌수가 중앙으로 올 수 있다고 한다.

 

 


제작진 :
저희가 초소 크기랑 같은 크기로 시뮬레이션을 해 봤더니


최상병이 먼저 쓰러져 있다면

그 시체 위에서 쏘아야만 중앙으로 뇌수가 튀는데,

그걸 과연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시 국과수 감식관 :
글쎄요.. 그건..

 



제작진 :

최 상병이 그때 그 자리에 안 놓아져 있을 가능성도 있는 건지요?

 

당시 국과수 감식관 :

아니라고 봐야죠. 이게 정말 어떤(그렇게 보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만.

 

 


당시 국과수 감식관 :
그...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총을 맞은 시신을 옮겼다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또한 취재 과정에서 더욱 안타까웠던 사실은

 

 

 

故 박성식 일병의 동기 :

성식이 얼굴도 많이 부어 있을 때도 있었던 것 같고요
뭐.. 그냥 많이 힘들다.. 엄청 모욕적으로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故 박성식 일병의 동기 :

선임이 폭력을 행사하면 그냥 그러는가보다 구경하고요..

 

제작진 :

그냥 묵인하는 분위기였나요?

 

故 박성식 일병의 동기 :

 

 

 

 

후임병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최상병.


그는 구타 문제로 해당 부대에 전입왔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당시 최상병은 영창에 가야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처리되지 않았다.


 

 

영창 집행만 되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최상병의 영창 집행을 미룬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부대 중대장 :

영창 누구누구 가야 하니깐 빼 이러면
밑에 있는 애들은 난리를 쳐요


휴가도 못가고 비번도 안나오고요

 

병사들 근무 서야 되는데, 보류하고 인원 채워지면

그때 보내도록 이렇게 했던 거죠

 



제작진 :

왜 영창을 안보내셨어요 그때는?

 

 

당시 부대 중대장 :
품 안의 자식이라고 생각을 했죠.

 

 

 

 

최근 군은 박일병의 죽음이

가혹행위에 따른 자살이라며 순직처리했다.

 


박일병의 어머니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사고나기 3∼4일 전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8월 중순에

휴가나간다고 좋아하면서 우표와 전화카드를 보내달라고 했었고,

 

일병 정기휴가 나가면 맛있는거 많이 해달라고 했던 아들.

 

 

 

어린 시절 박성식 일병은 엄마의 자랑이었다.

 

故박성식 일병 어머니 :

전교에서 아이큐가 두번째로 좋다고 저보고 한턱 내라고 해서요


한턱 낸 적도 있어요.

 

 


故박성식 일병 어머니 :

진짜 보고 싶어. 미치겠어

 

 


지난해 2018년 12월 1일 이른 새벽 국군 강릉 병원.


박성식일병의 현충원 안장식이 있는 날이다.
 

 


 

 

 


16년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故박성식 일병

 

 


미라처럼 변해버린 故박성식 일병의 얼굴

 


 

선임병을 죽이고 자살했다는 의혹은 그대로 둔 채

 

 


오직 가혹행위만을 인정한 순직.

 

 


 

 


성식아 좋은 곳으로 가

 

 


 

 


아들을 보내러 가는 길.

 

 

 

 

 

 


성식아 잘 가라
 

 


 

 


 

 


故박성식 일병은 상병 계급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들게 되었다.

 

 


박성식 일병이 마지막 가는 길

엄마는 아들을 위한 마지막 상을 차린다.


 


 

 

 


제작진 :

아드님께서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했나요?

 

故박성식 일병의 어머니 :

이런 부침 종류와 치킨을 좋아했습니다.

 

 


훈련소에 갈 때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아들.

 

 


17년 후 이렇게 작별을 고하게 될 줄은 어머니는 몰랐다.

 

 



 

 


성식아 미안해. 미안해

 

 


 

 


성식아 그동안 고생했다 

너를 너무 오랜 시간 추운 곳에 놔둬서 정말 미안했다.

 

 


박일병의 어머니는 지난 해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 위원회에 조사를 신청했다.


그리고 최근 아주 의미있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총기사고가 제 3자에 의해서 발생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사고 당시 현장의 훼손 가능성 등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군 사망사고 진상 규명 위원회/ 2019년 1월 28일.

 

 

 

사건을 전면 재조사 하겠다는 내용이다.
 

 


박성식일병이 안치되었던 국군 병원 냉동고 안에는

아직도 10년 이상 보관된 시신이 7구가 있다.

 

 


나라를 지키러 군대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청년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한점 의혹 없이 밝히는 것이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요약 :

사건의 규명보다 사건 결론내기에 급급했던 수사가 만들어낸 의혹들.
이러한 의혹들 때문에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