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념사에서 뭐라고 했는지 먼저 봅시다.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합니다.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합니다. 어떤 분야는 안정을 선택하고, 어떤 분야는 변화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습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김원봉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라는 논리가 나올 수가 있나요? 이념을 넘어서 모두가 모인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한 거지 김원봉이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독해를 하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 문장에서 "김원봉이 국군 창설의 뿌리"라는 결론을 내려면 "한국 육군은 일본제국군에서 비롯되었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과 같죠. 한국 육군 초기 멤버 중에 일본제국군 장교들도 있었으니까요. 동시에 한국 육군은 광복군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고 한국 육군은 서북청년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요. 


뚝뚝 잘라먹고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독해하고 그걸 언론이 퍼트리고 갈등을 재생산하는 걸 보니 답답하네요. 물론 저 원고를 쓴 연설비서관은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논쟁이 형성되는 원리를 알면 굳이 김원봉을 안 넣었겠죠.(대통령이 추가한 거면 대통령의 정무적 감각이 떨어지는 거고요.)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사실 더 대한민국의 이념과 안 맞는 집단이지만 아무도 신경도 안 쓰잖아요. 잘 모르니까. 남의사 출신도 꽤 되었지만 그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죠. 잘 모르니까.




참고로 화북으로 향하지 않은 조선의용대가 합류하기 전의 광복군은 장교급 30여명만 있는 가상의 군대에 가까웠습니다. 전투 역량이 없었죠. 김원봉을 비롯한 조선의용대의 합류가 중요하다는 건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