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지도자는 아공간에서 기계장치를 꺼냈다.

“루안. 이건 탐지기야. 지도자가 위치한 곳을 알려줘.”

“탐지기…? 근데 왜 사용하지 않았지?”

“이걸 작동시킨 순간부터, 텔레포트를 사용하거나 빠르게 이동해선 안 돼. 작동하면 취약해지거든. 좌표가 빠르게 변하면 오류가 나.”

“…내구성이 안좋은가보네.”

“아니, 단단하기는 한데 좌표가 빠르게 변하면 오류가 날 뿐이야. 급하게 만들어서 문제가 많아. 그리고 오류나면 한달 정도는 기다려야돼. 물론 그 중간에 빠르게 이동해도 다시 오류나고.”

“그렇구나…”

“일단, 탐지기가 북서쪽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갈거야.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이동해야 하는거지.”

“어렵네.”

“원래 그런거야 루안~ 쉽게 생각해~”

시민지도자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안정된다. 마음이 안정돼…

나는 시민지도자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행정지도자의 뜻대로.”

그러자 시민지도자가 호응한다.

“모든 것은 행정지도자의 뜻대로!”


시민지도자와 나는 북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시민지도자가 말했다.

“루안. 이곳에서… 시민지도자 라는 이름은 좀 안 어울리지?”

“그런 감이 없잖아 있긴 해. 그건 왜?”

“이름 하나 새로 만드려고. 좋은이름 생각나는거 없어?”

“으음… 세미아 어때?”

“좋아! 그걸로 낙찰!”

시민지도자는 내 이름이 마음에 드는 듯 방방 뛰었다. 그리고 말했다.

“루안! 이름 지어줘서 고마워~!”

시민지도자가 나에게 안겨들었다. 시민지도자…

왜이러는거지?


북서쪽으로 가는 길은 사실 길이라 하기 어려웠다. 시민지도자는 정확히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직선으로 걸어가고 있었기에 길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길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괴수를 조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에 있는 언덕에서 오크무리가 우리들을 발견하고 달려오고 있었다. 들고있는 몽둥이로 우리를 패죽이려고 하는 것 같다.

이곳의 사람들은 던전 밖으로 나온 마물이나 ‘마나,기,영’이 3가지 이능 중 하나 이상을 다루는 흉포한 동물을 괴수라 불렀다. 오크는 기와 마나를 이용해서 신체를 강화하므로 괴수라 불리기 충분했다.

시민지도자는 삽을 들고 달려들려다가 멈칫했다.

“루안… 뛰면 탐지기가 망가질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기분탓이 아니다 시민지도자. 뛰지 마라.”

“윽…”

시민지도자는 오크를 빠르게 해치울 수 없으면 차라리 무시하겠다는 심정으로 평소와 같이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당연하게도 오크들은 시민지도자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금방 나와 시민지도자에게 도달하여 몽둥이를 휘둘렀다.

나는 나에게 휘둘러지는 몽둥이를 피하고는 주먹으로 그 오크의 얼굴을 쳐부쉈다. 이어서 다른 오크에게 발차기를 해서 내장을 파열시켰다.

내가 이런 맨손격투를 하는 동안 시민지도자는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크의 머리를 삽으로 후려쳤다. 시민지도자의 공이 백이면 백 머리를 향하는 이유는 시민지도자가 머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후려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일단 시민지도자는 머리를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시민지도자는 버섯 다음으로 머리를 좋아한다.

시민지도자가 삽을 위에서 아래로 후려치는 동작을 연이어 하자, 오크들은 패턴을 깨달았는지 머리를 옆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미처 피하지 못한 어깨가 삽에 맞고 함몰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나와 시민지도자 둘이서 오크를 9마리 정도 죽이자, 나머지 4마리 쯤 되는 오크들은 다시 언덕 너머로 도망을 갔다.

시민지도자는 그것을 보며 말했다.

“루안. 오크 시체에 뭐 건질만한 거 있어?”

나는 오크 시체에 가서 잠깐 뒤적거려봤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없었다.

“오크는 마석이 없는 거 같은데? 나머지 부위도 근육이나 힘줄 밖에는….”

“윽… 아쉽네… 그래. 버리고 가자.”

탐지기가 가리킨 방향은 산이었다. 시민지도자는 길도 나지 않은 산을 타고 올라갔다. 그야말로 탐지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다 시민지도자가 멈춰섰다.

“왜그러지 시민지도자?”

“버섯… 버섯을 발견했어!”

시민지도자는 곧장 굵게 자란 나무에 가서 버섯을 땄다. 큼지막한 버섯이었다. 아마도 100그램은 될 것 같다.

“축하한다 시민지도자.”

“응! 나는 버섯이 좋아!”

시민지도자는 버섯을 입에 넣고 행복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으응~ 버섯의 향이 입안 가득! 버섯이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워!”

“…그래 많이 먹어라.”

시민지도자는 얼마 안가서 버섯을 하나 더 딸 수 있었다. 독버섯이었다. 저걸 먹으면 내장이 썩어들어가서 피를 토하다가 죽게된다고 한다.

“맛있게 먹어라 시민지도자.”

“응! 버섯을 찾아서 정말 기뻐!”

시민지도자는 버섯을 입에 넣고 말했다.

“이것도 맛있어! 담백하고 고소한 맛! 우와아!”

그러나 시민지도자는 해당사항 없다. 피해면역의 권능이 있어서 괜찮다.

시민지도자의 눈이 반짝였다. 맛있나보다.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는동안 시민지도자는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을 수 있었다. 바구니는 아공간에서 꺼낸것인데, 버섯을 아공간에 넣지 않고 바구니에 담은 이유는 심심할 때 꺼내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구니에 있는 버섯 중에 6할은 독버섯이었다. 그중에는 닿기만 해도 독이 오르는 버섯이 여럿 있었다. 전문가가 본다면 이 버섯을 모두 버리라고 할 것이다. 식용 버섯조차 그 버섯에 닿았을지 모르니까…

시민지도자는 가끔씩 버섯을 입안에 넣음으로써, 즐겁게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시민지도자와 키스하면 죽는다. 독때매… 그런데 시민지도자와 키스하는 사람은 소아성애자니까 죽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민지도자가 키스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시민지도자와 키스… 우욱. 끔찍하다. 누가 저 정신나간 버섯성애자랑 키스를 하겠는가.

예전에 언론지도자가 소아성애자의 인권을 주장한 적이 있긴 한데 딱히 수긍을 못하겠다.

시민지도자는 평소처럼 길을 걷고 있다.

“시민지도자. 버섯 맛이 어때?”

“응? 당연히 맛있지…? 왜? 너도 먹을래?”

“하나만 줘봐.”

시민지도자가 바구니에서 버섯을 집은 그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다! 팔면 돈이 될거야!”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자!”

“우와아아아아아!”

산적들이었다. 그들은 끌고 있던 마차를 내려놓고 칼을 든 채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민지도자는 탐지기에 영향이 가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산적들은 그런 시민지도자가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한 듯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나는 내 옆의 시민지도자에게 달려드는 놈의 목을 쳐서 기절시켰다. 다른 녀석이 나에게 칼을 휘둘렀으나, 나는 옆으로 이동해서 피하고는 빠르게 다가가서 놈의 복부에 주먹을 내질렀다.

“커헉!”

놈은 복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다른 놈이 달려들어서 나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산적이라 그런지 무기가 죄다 제각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서 철퇴를 피했다. 그리고 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저 놈이 바닥을 구른다.

그 광경을 본 놈들이 주춤거렸다. 그런데 시민지도자의 뒤로 점근한 놈이 하나 있었나보다. 놈은 시민지도자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말했다.

“꼼짝마! 움직이면 이 아이는 죽는다!”

우위를 점한 듯 하자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던 산적들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칼 버리고 무릎 꿇어! 이 아이는 우리가 키우겠다!”

“크헤헤헤헤헤헤!”


놈들의 도발을 보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저 아이는 시민지도교 사제다. 칼날은 목에 박히지도 않을 것이다.”

시민지도교 사제의 권능인 피해면역을 두고 한 말이었다. 레벨이 낮으면 피해가 줄어드는 정도가 적지만, 그래도 큰 휘두름 없이 갖다 대고 누르는 단검의 피해는 어느 정도 경감시켜줄 것이다. 저들은 그걸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시민지도자는 모든 피해 면역에다가 이런 놈들 따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자비를 준 것이다. 시민지도자는 지성체가 죽는 것을 싫어한다.

“뭐…뭣?! 시민지도교 사제? 젠장! 사이비들이었잖아? 튀어!”

“젠장! 미친여자 따위 팔리지도 않는데!”

…사이비? 시민지도교의 악평을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시민지도자의 목에 칼을 대던 놈도 기겁하며 도망을 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시민지도자가 부들거렸다.

“뭐… 뭐라고? 사이비? 미친여자? 너네 다 죽었어!”

시민지도자는 추적회로가 걸린 전기마법 여러개를 놈들에게 날렸다. 전기마법은 놈들을 추적해서 폭발했고 놈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크아아악!”

“살려줘!! 으아아아아!”

“뜨거워!!”

산적들은 모두 고통에 겨워 바닥을 굴렀다. 몇 시간은 지나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시민지도자가 화났을 때 얼마나 폭력적이게 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시민지도자는 땅을 구르고 있는 놈들 사이를 걸어서 놈들이 끌고 왔던 마차에 도달했다. 그리고 마차의 벽면을 손으로 뜯어내었다. 거기에는 어린 암컷 수인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에 구속구가 채워진 채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시민지도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수인은 죽어야 한다. 수인은 인류의 찬란한 문명을 파멸로 이끌었다. 2만4000년 전의 수인들이 발톱으로 전차의 장갑을 찢어버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시민지도자는 수인을 죽이지 않았다.

시민지도자는 수인의 손발에 채워져 있는 구속구들을 손힘으로 깨뜨려버렸다.

수인이 의아하다는 눈으로 시민지도자를 바라본다.

그런 수인에게 시민지도자가 말한다.

“너는 이제 자유야! 원하는 곳으로 가! 갈곳이 없으면 우리를 따라와도 좋아!”

그러자 수인이 가증스러운 입으로 말한다.

“저를… 왜 구해주신거죠?”

그러자 시민지도자가 말한다.

“나는 자유를 전파하는 아나키스트니까!”

아나키스트. 다른 말로 무정부주의자. 시민지도자는 그런 존재이다. 모든 지성체를 평등하게 바라보고 해방시키는. 다만, 특이하게도 시민지도자는 그중 지성체에게 호의적이다. 대상의 지능이 낮다면 생물로 간주하지 않는다. 더 깊게 따지자면 비조직적 아나키스트에 속하는데, 그건 일단 생략.

수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말했다.

“저는… 고향이 있어요. 저기로 쭉 가면 나와요… 근데 저 혼자는… 갈 수 없어요. 너무 멀어요…”

수인이 가리킨 방향은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과 수직이 되는 방향이다. 당연히 궤도를 많이 이탈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시민지도자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래. 데려가줄게!”

시민지도자의 단호한 결정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그저 하나의 피조물일 뿐.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시민지도자와 같이 수인에게 호의적인 존재가 되기로 했다.

“동참하겠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수인 소녀 한명에게 도움을 줄 시간에 다른 지도자를 깨우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수천명의 생명을 더 살릴 수 있지 않아?”

“맞아! 그건 틀림없는 사실일거야.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아!”

그래. 시민지도자는 아나키스트니까.

그녀의 이상에 동참하기로 했다.


시민지도자는 버섯을 집어먹으며 수인 소녀에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야?”

“레티에요.”

“우와 레티! 멋져!”

뭐가 멋진건지는 모르겠다. 시민지도자는 버섯을 집어먹으며 길을 걸었다.

그런데 레티가 말했다.

“배고파요…”

시민지도자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팠나 보다.

시민지도자는 금방 아공간에서 빵을 꺼내서 레티에게 주었다.

레티는 빵을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레티의 강아지 귀가 쫑긋 서는게 귀엽다.

1시간 전만 해도 수인이 증오스러웠지만, 지도자의 의견에 따르고자 사상을 바꾸니 수인의 색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산행은 꽤나 오래 이어졌다. 산을타기 5시간이 지나자 결국 레티는 주저앉았다.

“다리가 아파요…”

그래서 내가 레티를 업게 되었다. 등에 수인이 걸쳐져있다. 기분이 묘하다.

시민지도자는 그런 나에게 말했다.

“루안… 나 심심해….”

시민지도자가 심심한가보다. 시민지도자는 재미를 향한 갈증에 사로잡혀있다. 때문에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없으면 발광한다.

“버섯 먹으면 되잖- 아…”

시민지도자는 이미 버섯을 다 먹은 뒤였다. 시민지도자가 슬픈 표정을 하면서 텅 빈 바구니를 내 쪽으로 해서 보여주자 이해가 갔다.

“루안… 나 심심해!”

지금쯤 레티는 무슨 표정을 하고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시민지도자를 심심하지 않게 해주어야 했다.

“시민지도자. 삽좀 줘봐.”

“응!”

시민지도자는 기대를 많이 한 듯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마냥 나를 보며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시민지도자에게 받은 삽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걸로 시민지도자의 머리를 내려쳤다.

깡!!!-

시민지도자의 머리와 삽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시민지도자는 몇초 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했다.

“으앗!”

시민지도자는 때늦은 반응을 하며 두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루안! 재밌었어!”

시민지도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또 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

시민지도자는 다시 길을 걸었다.

시민지도자는 여전히 심심한 듯 했다.

“루아아아아아안!! 나 심심해!!”

시민지도자가 극도로 심심해한다. 버섯이 없어서 모든 상황이 뒤틀려버렸다.

“아공간에 왜 버섯 안 넣어놨어?”

“버섯… 이렇게 버섯이 없는 순간이 올줄은 몰랐다고!”

조금만 생각을 했어도 버섯이 항상 부족할 거란 건 예측할 수 있었을텐데…

레티는 그새 잠이 들었다. 레티의 조그마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시민지도자가 심심하다며 발광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수인에 대한 호감도가 시민지도자에 대한 호감도보다 높아진 건 기분탓일까?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시민지도자. 그냥 자는거 어때? 자고 일어나면 버섯이 많이 있을거야.”

“정말? 루안 정말이야?”

“어.”

“알았어! 믿을게! 일어났는데 버섯이 없으면… 각오해?”

“날 믿어라.”

시민지도자는 정말로 내 말을 믿은 듯 잠이 들었다. 나는 시민지도자에게 공중부양 부적을 붙였다. 부적은 기력,마력,영력 중에서 영력을 이용해서 만드는 영력이 담긴 종이를 말한다. 공중부양 부적은 대상을 띄우도록 설계한 영력으로 만든 회로가 작동하고 있다.

시민지도자는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시민지도자에게 밧줄을 묶고 내 팔에도 그 밧줄을 묶었다. 시민지도자는 공중에서도 잘만 잤다.

버섯을 어떻게 얻지… 도대체가… 하루 종일 버섯을 모아야 할 수도 있다. 만약 버섯을 충분히 얻지 못한 상태에서 시민지도자를 깨운다면… 처참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한참을 걷자, 레티가 깨어났다.

“저기… 루안이라고 하셨나요?”

“어.”

“루안님…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서 좀 더 가면 제가 살던 마을이 나올 것 같아요…”

“알겠다.”

나는 방향을 왼쪽으로 꺾었다. 그 길로 걸으면서도 레티가 지정해주는 방향에 따라 수시로 방향을 미세하게 바꿨다. 일단 크게 봤을 때는 왼쪽이 맞았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오크 무리가 나타났다. 일전에 봤던 오크들과는 다른 무리였다.

레티가 그들을 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오크에요! 으아아… 우린 다 죽는건가요?”

레티의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오크무리는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내가 쉬운 먹잇감으로 보이나보다.

그러고보니 상황이 약간 안 좋은 것 같다. 시민지도자는 전투불능 상태고 레티는 전투능력이 없어보인다. 수인들… 2만4000년 전의 그 투지는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시민지도자를 깨운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랬다가는 버섯을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특별한 회로가 새겨진 마석을 꺼냈다. 예전에 공업지도자가 만들어준 마석이다. 미사일에 맞먹는 폭발력을 가졌다고 한다.

오크는 이족보행 동물이고 그렇기에 호랑이만큼 빠르지는 않다. 때문에 아직은 거리가 있었다.

나는 마석을 오크무리의 한 가운데에 힘껏 던졌다. 수백미터를 날아간 마석은 그곳에 있던 오크들중 하나의 머리에 맞자, 커다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파편이 튀지는 않았지만, 후끈한 열기와 바람이 나와 레티를 덮쳤다.

“꺄아아악!!”

폭발로 인한 충격이 가시자, 오크들이 있던 곳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크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해치웠나?”

정말로 해치웠나보다. 묘한 고기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타버린 것 같다.

“레티. 가자.”

“네…넷!”

레티는 여전히 나에게 업혀있었고 시민지도자는 밧줄에 묶인채로 공중에 떠있다. 전이랑 같다.

레티의 지시에 따라 방향을 약간씩 수정하며 걷자, 그에 대한 보답인지 나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나는 침착하게 화살을 피했다.

그러나 보답은 그게 끝이 아니었나보다. 화살이 또 날아왔다. 이번엔 2발이다. 내 머리와 가슴을 노린 정확한 사격.

나는 그냥 맞았다. 이것이 시민지도자를 심심하게 한 것에 대한 속죄라 생각하며.

내 몸은 화살을 튕겨냈다. 그리고 다시금 화살이 날아왔지만, 나에게 맞고 튕겨져 나갔다.

화살을 날린 측도 그 광경을 본 것인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수인 남성이었다. 그는 활을 땅에 내려놓고 칼을 빼들었다. 그런 수인이 그 외에도 2명 더 있었다.

“젠장! 화살을 튕겨내는 인간이라니! 얼마나 큰 피해가 있어야 잡을 수 있는거냐!”

“큭… 약한소리 하지 마!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을을 수호한다!”

“등에 누가 업혀있는데?”

화살을 튕겨내는 인간? 여기 인간이 어디있지? 시민지도자는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존재인가?

여기에 대해 생각을 하자면, 지도자들은 인간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유전자가 약간 다르다. 불필요한 유전정보가 없고 열성형질과 우성형질의 대립 이런 것도 없이 동일한 형질이 대립해있다. 그리고 신체능력이 우수하며 진화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인간의 형상의 유지하되 최선의 형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신수’라는 물질이 두뇌에 결합되어 각자 놀라운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생각이 옆길로 샜다.

나는 그 수인 전사들과 싸울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레티가 말했다.

“삼촌!”

그러자 그 수인들 중 하나가 반응한다.

“레티? 제길! 레티를 인질로 잡다니 이 잔악무도한 자식!”

“크윽! 역시 인간들은!”

레티가 이어서 말했다.

“아니에요! 이분이 절 구해줬어요!”

“뭐?”

레티는 내 등에서 뛰어내려서 그 삼촌이라고 불린 수인에게 달려가 안겼다. 감동적인 재회였다.

레티는 몇분간 그들과 대화를 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자, 삼촌이라 불린 수인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

수인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부답스럽다.

“버섯을 좀 구할 수 있을까요? 독버섯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버섯이면 됩니다.”

“버섯… 우리는 버섯이 주식이 아니라서 몇 없는데… 그런데 버섯은 무슨일로?”

“이 아이가 먹어야 합니다.”

나는 공중에 떠있는 시민지도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민지도자는 여전히 둥실둥실 떠있다.

그런데 어쩐지 그 수인이 경악하며 말했다.

“독버섯이여도 된다면서요. 그게 무슨…”

이런. 일이 꼬였다. 시민지도자는 독버섯 먹어도 되는데 어떡하지?

“이 아이가 사실은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죽기전에 꼭 버섯을 먹고싶다고 합니다.”

“그래도 독버섯이라니… 의도가 의심이 되는군요.”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