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선생님이 종례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가방을 챙겨놓았다.

 

학기 초엔 선생님은 그런 철수를 고깝게 보았지만, 몇 주후 철수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철수의 상태를 알고는, 이내 다른 학생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주의를 주었다.

 

벌써부터 하교할 생각인지, 아니면 기분이 좋은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실실 웃는 여느 때와 다르게 헤헤 거리며 침까지 흘려댔다.

 

반장인 영희는 깔끔한 것을 좋아했지만,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착실한 아이였기에 영희는 다른 클래스메이트들과는 다르게 철수에게도 웃으며 말을 거는 유일한 아이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웅성웅성-

 

"철수야!"

 

모두가 너도나도 교문을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일 때, 종례가 끝난 후 영희는 철수를 불렀다.

 

"헤-?"
 

"오늘 무슨 일 있어? 기분 좋아 보인다."

 

"헤헤...."

 

철수는 대답대신 웃으며 고개를 크게 흔들어댔다.

 

"그래? 무슨 일 인데?"

 

"헤...."

 

대답하기가 곤란한거지,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인지, 철수는 손가락을 턱에 갖다대며 멍하니 영희만 쳐다보았다.

 

"앗, 나 학원가야겠다. 그럼 다음에 꼭 알려주기다?"

 

"헤헤!"

 

철수는 흐르는 침을 닦고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싱글벙글 웃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는 철수를 보며, 영희는 오늘도 보람찬 학교생활을 했다, 고 하며 고개를 돌려 학원으로 향했다.

 

/다음 날.

 

"반장, 출석부는?"

 

조례 시간이 되자 담임 선생님은 앞문으로 들어오며 영희를 불렀다.

 

"그게....선생님, 갑이가 안 나왔어요.."

 

아직은 초등학생이라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고, 영희도 그 중 하나였기에 결석한 갑이의 소식을 몰라 영희는 책임감을 느껴서 인지 기어가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러니? 따로 연락도 없었는데. 선생님은 갑이 어머니에게 연락해드릴테니, 일단 영희가 반 아이들 좀 조용히 시켜주렴."

 

"네."

 

"모두, 조금만 조용히 해줘."

 

웅성웅성-

 

쩝쩝...

 

시끄러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영희는 교탁에 서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먹고 있는 철수가 보였다.

 

"엇 철수야. 교실에서는 먹을 것을 들고 오면 안 돼."

 

"헤헤...아..침......"

 

"아침? 아, 햄버거구나."

 

끄덕끄덕. 

 

"그럼 선생님 오시기 전에 빨리 먹고 정리해."

 

끄덕끄덕. 

 

철수는 더욱 더 크게 쩝쩝 소리를 내며 삼키고는, 케첩이 덕지덕지 묻은 햄버거 봉지를 쓰레기통에 구겨넣었다.

 

드륵-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영희야, 자리에 앉아주렴. 자, 조용. 여러분들의 친구 갑이가 어제 하교 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데 혹시 갑이의 소식을 아는 친구가 있나요?"

 

"갑이는 을이랑 제일 친해요!!"

 

갑이의 소식을 모르는 아이가 을과의 관계를 선생님께 알렸다.

 

"하지만 저는 어제 갑이랑 놀지 않았어요."

 

"흠...그러니...알았다. 자 수업을 시작하죠."

 

/

 

철수는 다시 가방을 둘러멨다. 어제와 같이 헤헤 웃으며.

 

"철수야, 오늘도 좋은 일있니?"

 

영희는 갑이가 사라져 슬픔에 잠기던 중, 혼자서만 웃는 철수가 야속해보였다.

 

"헤헤헤!"

 

철수는 손짓을 해댔다. 오늘은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영희는 갑이가 사라진 슬픔보다 재미가 없으면 화를 내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철수를 따라갔다.

 

"흥, 앞장 서."

 

"헤헤..."

 

철수는 영희를 데리고 학교를 돌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영희는 처음 보는 곳이라 당황했지만, 이내 철수의 집이겠지 하고는 철수만 따라갔다.

 

철수는 주머니에서 소세지를 꺼내며 쩝쩝거리며 더욱 더 외진 곳으로 안내했다.

 

"헤!"

 

막다른 골목. 보이는 것은 커다란 분홍색 젤리가 놓여진 나무상자 뿐이었다.

 

"철수, 너..!"

 

화가 난 영희는 철수에게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뒤에서 영희의 입을 막은 또래의 남자애에 의해 저지당했다.

 

영희는 놀라 동그란 눈을 옆으로 돌리며 자신을 막은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갑이었다.

 

영희는 말문을 잃었다. 철수는 분홍색 젤리를 한 입 물고는, 꿀꺽 삼켰다.

 

그리곤 침을 닦고 나무상자를 열었다.

 

영희는 나무상자 안에 있는 것에 의해 또 다시 말문을 잃었다.

 

그것은 영희였다.

 

분명 영희다. 어제 학원 선생님에게 칭찬 받으며 같이 받은 딸기 머리핀을 착용한, 오늘의 영희였다.

 

철수는 그런 영희를 들어올리고는, 똑바로 세워 갑이에게 붙잡힌 영희를 쳐다보고, 자신이 세운 영희의 눈을 띄워주며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영희야. 무슨 일 있어?"

 

영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자신을 잡고 있는 갑이보다도, 자신과 똑닮은 가짜 영희보다도, 지금 전기톱을 애애앵거리며 다가오는 철수의 눈이, 너무나도 진심으로 가득 찬 눈빛이기 때문이다.

 

철수가 전기톱을 내리치려하자, 영희는 마지막 힘으로 허리를 돌려 자신을 잡고 있는 갑이를 전기톱에 갖다 대었다.

 

케첩같은 피가 사방에 튀기며 자신을 구속하는 힘이 약해지자, 영희는 냅다 달렸다.

 

뒤도 안 보고 달렸다. 애앵 거리는 소리도, 쫓아오는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달렸다.

 

외진 곳을 벗어나 신호등이 보이는 곳으로 달리자, 영희 아빠 차가 보였다.

 

'맞아, 오늘 일찍 오신댔어.'

 

영희는 오늘 일찍 온다는 아침에 했던 아빠의 선언이 생각나, 아빠의 차에 다다르자 미친듯이 문을 두들겼다.

 

문이 열리자, 영희는 급하게 타고 출발, 출발만 외쳐댔다.

 

"왜,,왜그래 영희야 무슨 일있어?"

 

당황스러운 아빠.

 

영희는 흐어엉-하고 울며 아빠에게 모든 일을 말하려 했다.

 

옆자리에서 영희를 달래주며, 티슈를 건네자 영희는 고맙게 받으며 진정 후 말을 하려 했다.

 

"흑...흑...고마워."

 

"왜 울고 그래, 영희야. 무슨 일 있어?"

 

철수가 헤헤 웃으며 영희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