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가상국가채널의 대한-인도연방에 기반을 둡니다. 실제 인물과는 연관이 없음을 유의하세요. )

"잘 해내겠습니다." 박 소장은 그렇게 부통령 관저를 울며 빠져나갔다. 부통령 겸 총리인 장 선생은 조용히 나를 나가있게 하셨다. 유리질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은 고요해졌다. 심상찮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뒷날을 준비했다.

 

 "호외요! 장 선생이 서거하셨소!" 길바닥에 나앉은 촌사람들도 알게 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2월의 추운 날에 선생님은 그렇게 명을 달리하셨던 것이다. 나는 곧 진행될 대한 정계의 난국에 대해 매우 염려스러웠다.

 

 장 선생은 청산가리를 스스로 마시고 돌아가셨던 것은 사실이나, 그 내막은 따로 있었다. S국의 대사가 선물한 차를 마시고 쓰러지셨다느니, 죽지 않았다느니 하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유당 사람들은 친서방적인 이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선생님의 목숨을 이용하였다.

 

 안 장관은 어제 거북나라의 의학 수사관이 도착하기 전, 관저에 방문해 현장을 만들어놓았다. 증권가 정보지에는 이 대통령과 평화당이 장 부통령을 압박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 실렸으며, 평화당은 즉시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해외 순방중이던 이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국민들의 의구심은 날이 갈 수록 깊어갔다.

 

 결국 이 대통령은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그와 장 선생을 조롱하는 모욕적인 내용이 판을 쳤다. 67년 총선에서 평화당은 완벽히 패배하였다.

 

 물증이 없으니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를 평화당의 외압이라며 자유당은 공세를 가했고, 결국 이 대통령은 사임하였다.

 

 69년 대선에서 안 장관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자유당의 새 정책인 "자주 개혁"은 관용구로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던 와중, 3년간 때를 관망하던 박 소장은 관저를 호위하던 시절 받은 서류들을 풀기 시작하였다. 조용히 평화당 인물들을 접견한 나와 박 소장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계획을 실시하였다.

 

 

 "자유당은 물러가라! 장 부통령 살려내라!" 평화당은 드디어 누명을 벗을 기회를 얻어 좋아하였으나, 우리의 목적은 평화당의 복권이 아니었다. 안 장관의 탄핵 이후 평화당 정국에서 우리는 군을 모아 결국 종착역에 다다른다.

 격변하는 정계에서 나는 아주 좋은 위치에 서게 되었고, 자서전이며 무엇이며 내게 되었다. 언론은 나를 띄웠고, 나는 이제 "적통"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1월 21일, 대한은 뒤집혀졌고, 나는 이틀 뒤 가득 찬 유리병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