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노신사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내게 물었다. 끼긱되는 포크레인 소리, 그리고 인부들의 고함 속에서도 그 나즈막한 소리는 절망에 담겨서일까, 뚜렷이 나에게 들렸다. 하지만 어쩔쏘냐, 방금 막 공사 안내문을 본 나도 화들짝 놀라서 굳어버린 채 그 말을 흘려 버렸다.

“왜 놀이터를 갈아엎냐는 말이오?”

“...아무래도 놀이터가 있던 자리에 주차장을 만드나 봅니다, 선생님.”

“아!”

노인은 비명과 함께 쥐고 있던 지팡이에 기댄 채 쓰러지고 말았다.

맙소사. 내 안에서도 비명이 튀어나왔다만 입이 굳어 나오지 못하고선 그저 머릿속에 빙빙 맴돌기만 했다. 놀이터는 내가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터줏대감이다. 어릴 적 핸드폰도 없던 시절에는, 특별한 약속 없이도 그곳에 가면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우리들의 약속의 장소였다.

그런 놀이터가 공사로 엎어지는 건, 우리 집 거실 창문으로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은 건 저 놀이터가 이곳에 터줏대감으로 이 도시가 그녀를 내쫓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앞에는 어린이집이 한 채 있어서 그곳 아가들이 수업시간에 종종 선생님 따라 놀이터에 와서 노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할배들도 정좌에 모여서는 정좌 천장 밑에 넣어둔 장기판과 바둑판을 꺼내어 두고 할매들은 돗자리 깔고 앉아 얘기를 나누곤 했다. 소년 소녀들은 없어졌지만, 그 존재 가치는 충분했다. 물론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제 놀이터는 없고 그곳 상권을 위한 냉혈동물로 가득한 동물원이 있겠지. 하지만 그 동물원에는 어린이들이 하나 없겠지. 정말 삭막하겠지…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됐을 줄이야.”

혀를 끌끌 차며 노신사는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영 불편해 보여, 내 어깨를 빌려주니 손으로 짚고 겨우 일어나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 듯 멍하니 흙만 남고 인부들만 남고 공사 기계만 남은 놀이터, 아니 그저 텅 빈 ‘터’를 바라만 보았다.

“잠깐 병원에 있던 사이에…. 그 양반들하고 어떻게 만날지…”

노신사의 찡그린 얼굴에 주름은 깊어지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니 그 주름 사이로 눈물이 지나가는 것이 상상이 되니, 그 모습이 영 보고 싶지않아 나는 말을 걸게 됐다.

“여기서 친구들을 만났었는데…”

“나라고 다르겠어요? 여기서 많이도 만났지.박 영감,김 영감, 영석이 자식…. 모이면 바둑이나 두고 화투나 치면서 놀았는데…”

노신사는 회상에 잠겨있다가 굳은 내 표정을 보았는지, 농 비슷하게 말을 던졌다.

“그러다 어느 날은 박 영감, 화투로 돈을 왕창 따더니 이 양반이 밤에 모이자는 거요. 밤에 나가보니 막걸리 몇 병 꼬나 들고서는 우리 입에 한 입씩 물려주는 거 아니오? 젊은 양반은 모르겠지만, 우린 다 좁은 집에서 사니 집에서 마시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어디 식당가서 먹기는 지갑이 얇다오. 그래서 하는 수 없다 치고 불법이지만 이곳 놀이터에서 그렇게 술을 마셔댔다오. 그 뒤로 우리끼리 돈 좀 모아서 술을 사다 마셔댔지!”

그러고는 씩 웃으며 털털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사건은 한 달쯤 되었나? 그 날도 막걸리를 마시는데 지나가던 젊은 순경이 우릴 보고는 엄청 혼냈지. 아주 혼이 쏙 들어갔다오. 근데 그 친구, 마음은 또 약한지 차마 딱지는 못 끊고 그냥 갔다오.”

그러고서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좀 전에 그 눈물과는 달랐으리라.

“문제는, 이 박 영감 무식한 작자가 계속 술을 가져오는 거요. 나랑 김 영감은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하는데 영식이 이놈은 말리긴커녕 박 형, 박 형, 하면서 박 영감 말을 따르는 거 아니오? 게다가 이미 사온 술이니 돈 안 내기도 그렇지, 내고 안 마시기도 그렇지, 그렇게 계속 마셨지. 이 와중에도 그 젊은 순경, 이 순경이랬나? 그 친구한테 걸려서 도망도 가고 혼도 나고 그랬다오. 근데 진짜 사건은 이거야!”

노신사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씰룩거리다가 땠다.

“그 날은 박 영감이 순경을 어떻게 골려줄지 얘기를 하고 있었어. 막걸리 병에다가 물을 채워보자, 냅다 사방으로 도망가자, 별별 얘기가 다 나오는데 이 순경이 도대체가 안 오고 다른 경찰이 오는데, 와서는 이 순경이 말 안 하더냐, 왜 여기서 술을 마시느냐, 이번에 CCTV가 설치돼서 다 걸렸다, 이러는 거 아니오? 순간 아뿔싸 싶었지. 근데 이 양반이 우리 앞에서 이 순경 욕을 하는 거 아니오? 젊은 놈이 물러터졌다, 일처리 하나 못 한다…그랬더니 박 영감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더니만 당장 그 말 취소하라면서 순경한테 뛰어가서는 멱살을 잡으라길래 겨우 막았다오. 이 순경에게 정든 거겠지. 누가 우리 걱정을 해주나?”

노신사는 한숨을 푹, 쉬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씩 웃었다. 내 표정이 한결 나아진 건가?

“아무튼, 다음에 우리 넷이서 파출소로 가서 사과하고 나왔지. 이 순경은 우릴 보고 씩 웃더라고. 그 뒤로는 술도 안 마셨지.”

노신사는 그러고선 한참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땠다.

“박 영감이 뒤지지 말고 오라 했는데…. 만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전화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나 말고는 없다오. 영석이는 쓸 줄도 몰라. 초등학교도 못 나왔거든.”

그러고서 노인은 나를 바라보았다.나도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은 눈동자와 그 바깥이 섞여 영롱치만 내 얼굴이, 내 눈이 또렷이 보였다. 내 눈과 노인의 눈은 다를 바가 없었다.나도 그도, 놀이터가 없어짐에 친구와의 약속의 장소가 없어진 것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 것은 세대를 초월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텅 비어버렸던 놀이터·이제 더 이상 약속의 장소가 아니었다. 하지만 노인에게는 달랐다. 놀이터는 아직도 노인들에게 약속의 장소였다. 때문에 우린 서로 눈빛을 보고 닮았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들하고는 연락이 되니깐. 물어물어 건너가다 보면 전화번호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신사를보니, 갑자기 녀석들 생각에 빠졌다. 잘 지내나? 대학은 갔나? 군대는 갔나?

그리고 노인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다. 공원은 근방에 하나 더 있다. 아니 하나뿐이랴. 하나 하나 둘러보다 보면 반드시 친구를 찾으리라.

“영감님, 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이근수. 자네는?”

놀랍지만 놀랍지 않았다.

“이경찬입니다.”

“놀랍지 않군. 왜인지 그럴 것 같았어.”

“주변에 공터가 더 있잖습니까? 한 번 가봅시다.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한 잔 사죠.”

“놀이터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니깐.”

“요구르트 말 한 겁니다.”

“하하. 센스있구만.”

노신사는 씩 웃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밤에 전화를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