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 어딥니까?"

 

 코 앞에 있는 사람을 두고 어딥니까 라고 물으면 여기다 라고 대답해야 되나? 아무래도 내 이마를 짚으면서 물어보는 걸 보니 어디가 아픕니까 라고 물어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단어 하나만 없어져도 뜻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역시나, 모텔 위를 계속 날아다니던 미확인 비행물체는 리돌이었다. 리돌은 벌써 옥상 위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옥상에서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듯, 내가 사샤를 통로로 밀어 넣자마자 바로 내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서는 마치 장님 코끼리 짚듯이 내 이마를 계속해서 더듬고 있다. 아무래도 내 표정이 안 좋아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내 표정이 안 좋은 이유는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너 때문이란다.

 

 "리돌."

 

 "네, 민재."

 

 "내가 전에 평상시에는 밖에서 날아다니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리돌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대략 20초쯤 뒤에 '아'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장난치냐?! 

 

 "그러나 하늘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비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무슨 창의적인 발상인가. 하늘에 나는 사람이 없으니 날아 다녀도 괜찮다고? 이것은 마치 길에 아무도 없으니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괜찮다는 말로 들리는데? 인도에 보행자가 없으니 오토바이가 다녀도 된다는 말인가? 역시 달나라 아가씨는 생각하는 것도 다른 건가? 

 머릿속에는 리돌에게 던질 질문만이 계속해서 이 녀석마냥 떠다닌다. 뭘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기에, 입술은 무엇인가 나올 것 같은데 안 나오는 그런 안타까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고,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다. 그런 내 표정을 보던 리돌은, 다시 한 번 '아' 하는 표정을 짓고서는 내 차례를 건너 뛰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민재, 이것은 성희가 선택한 옷입니다. 잘 지냈습니까?"

 

 잘. 지냈다. 이것아. 문맥의 흐름에서 저 말도 안 되는 인사를 대체할 단어는 어떻습니까 정도일 듯 하다. 리돌은 나를 보면서 살짝 치마를 들어 올리며 다시 한 번 얼굴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표정은 이 녀석의 말보다 훨씬 더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고 있었다. 어때 보이냐고.
 그 말을 듣고서야 어이없음으로 가득 차 있던 내 시야에 리돌의 옷매무새가 들이 찼다. 일단 가장 눈에 확 띄는 것은 하반신을 덮고 있는 빨간색 롱스커트였다. 허리 부분에 주름이 큼직큼직하게 잡혀 있고, 무릎 아래까지 덮어 주어, 리돌이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아담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상의에는 배 부분이 살짝 보이는, 짧은 흑백 가로 스트라이프 반팔을 입혀서, 리돌의 하얀 머리와 빨간 눈, 그리고 방금 이야기한 빨간 치마까지 완벽하게 매칭을 시키고 있었다. 

 뭐랄까... 깔맞춤을 하니까 귀여워 보이는 느낌?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리돌의 옷매무새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어디서 배웠는지, 계속해서 팔을 앞뒤로 흔들며 옥상을 느린 걸음으로 돌고 있었다. 모델 워킹을 따라하는 건가? 아무래도 성희 씨가 알려준 듯 하다. 리돌은 옥상 끝자락까지 가더니, 나를 보며 한 바퀴 돌며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잘 지냈습니까?"

 

 "그래, 잘 어울리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리돌에게 대답해 주었다. 역시 옷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이 가야 되는 건가?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달라 보일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입고 있었던 회색 원피스를 볼 때면, 마치 로스웰에서 실험체로 있는 외계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냥 홍대나 강남 패션피플들을 보는 것 같다. 얼굴 예쁜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얼굴값을 하는구만.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자, 리돌은 좋은 듯이 팔짝팔짝 뛰면서 옥상 위를 돌아다녔다. 허, 그렇게도 좋을까. 끝에서 나한테 한달음에 달려온 리돌은, 아까 착지할 때 구석에 두었던 쇼핑백에서 다른 옷가지들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나는 많은 종류의 옷이 바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계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성희 씨는 가을에 입을 옷으로 이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말하며 열어 본 쇼핑백에는, 가을에 입을 약간 두꺼운 재질의 옷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런데, 쇼핑백이 높이는 거의 무릎을 넘어섰고 두께도 좀 많이 되어 보인다. 야, 이거 꽤나 무거워 보이는데. 어떻게 이걸 다 들고 왔대? 아, 이 녀석 날아다닐 때는 무거운 걸 모르지? 저번에 나도 들고 날아다닌 걸 보면. 그래서 이렇게 잘 들고 온건가?
 리돌은 한 번 말문이 터지자 신이 난 듯 옷을 살펴보는 날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성희 씨는 저에게 맛있는 요리를 사 주었습니다. 국물에 수프의 긴 얇은 조각, 단단한 껍질에 부드러운 고기로 끓였습니다. 성희 씨는 이 맛이 한국말로 시원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시원한, 국물, 단단한... 뭐?"

 

 자라탕을 사줬나?


 이제는 리돌도 익숙해 진듯, 손짓발짓으로 자신이 먹은 음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손바닥을 둥글게 안으로 모으는 동작으로 접시를 표현하더니, 무언가를 그 안에서 뜨는 시늉을 하고서는 죽죽 그 끝부분에서 길게 매달려 있는 듯이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동작을 하였다. 국수... 같은건가? 그리고서는 그 안에 무언가 둥근 게 있다는 듯 OK 사인을 마구 남발하더니,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여는 동작을 반복해 보였다. 조개... 인가? 조개하고 면발? 아!

 

 "칼국수!"

 

 나는 마치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정답을 외치듯이 리돌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대답하였다. 리돌은 조금 뜨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오답 판정을 내렸다.

 

 "그런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아니라고? 맞는 것 같은데. 음. 뭐, 하여튼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일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도 한참 남았고, 이 녀석을 어떻게든 빨리 돌려 보내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이야 일이 바쁘고 식사가 끝난 시간이라 옥상에 아무도 없긴 하지만, 다른 모텔 직원들이 생활공간이 이쪽이라 언제 올라올 지 모른다. 일단 빨리 흔적을 지우는 것이 급선무다.

 

 "리돌, 자, 그럼 이제 옷도 다 샀고, 나머지 옷들은 집에 가서 같이 구경하면 되니까, 집에 먼저 들어가 있어. 나는 일 끝나야 갈 수 있으니까."

 

 갸웃 하는 리돌의 머리. 지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여?

 

 "함께 있는 게 아닙니까?"

 

 "뭐, 너랑 나랑 지금 함께 있는 게 맞긴 한데, 지금 같이 있는 건 조금 곤란하지. 나도 일 해야 되는데. 일단 돌아가 있어."

 

 "너는 일을 보지 못하니?"

 

 "뭐?"

 

 갑자기 나를 갈구기 시작한다. 또 번역기가 튄 건가? 리돌은 되묻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번역기를 조정하지는 않은 채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고서는 다시 말을 꺼냈다.

 

 "나는 민재의 일을 보고 싶습니다."

 

 "안돼."

 

 단칼에 거절. 

 뭐, 견학, 달나라 아가씨는 지구인의 사회생활상을 공부합니다.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지구라는 곳에 처음 온 아이가, 좋게 말해서 백지같은 이 녀석이 시작부터 이런 하드코어한 일을 구경하는 것은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은 모텔이다. 돌아다니는 동안 한 층에 적어도 한 번은 신음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인데, 그런 곳에 같이 돌아다니면, 민망하지, 아무래도. 지금 표현을 좀 많이 순화해서 쓰긴 했는데, 어쨌든 나 일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그렇고,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견학은 불가능이오.
 리돌은 너무나도 빠른 거절의 표시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 뚱한 표정으로 다시 나에게 반문하였다.

 

 "정말 불가능합니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사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까 사샤를 부랴부랴 내쫓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시간의 압박에 쫓기고 있는 것은 이 모텔 직원 전부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이미 청소는 시작했을 것이고 형우는 이빨을 갈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이것 봐봐. 지금 이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마구마구 울려대고 있잖아. 보나마나 형우가 밑층에서 나를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다시 리돌을 집으로 돌려 보내기 위해서 간곡한 어조로 귀가를 요청하였다.

 

 "하여튼 리돌, 일단 일 구경하는 건 안되니까,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알았지? 옷 들고 가려면 무거우니까, 오늘은 날아서 가도 뭐라고 안 할게. 빨리 돌아가서 집에서 기다리면, 맛있는 거 해 줄 테니까. 응? 나 일 해야 되니까, 내려간다. 빨리 돌아가."

 

 지금 이 녀석에 더 할애할 시간은 없다. 이미 늦었다. 빨리 내려가서 일을 도와야 된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다. 궁금증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리돌을 뒤로 하고서는, 나는 부랴부랴 계단으로 향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어디냐?'

 

 "아아, 미안 미안. 지금 옥상에서 잠깐 사샤 형하고 이야기좀 하느라... 지배인님?"

 

 마음이 급해서 목소리가 형우 것이 아닌 것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다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 보니, '지배인' 이라는 세 글자가 화면에 떡하니 써져 있었다.

 

 '그래 임마. 형우가 너 따로 있다고 그래서 전화했다. 어디냐 너?'

 

 "아직 옥상인데요."

 

 '그럼 잠깐 프론트 들렀다 올라가. 지금 손님 몰릴 시간이라 재혁이하고 나하고 올라가지는 못할 것 같고, 지금 밥 대신에 피자 시켜먹고 있는데, 한조각 먹고 가라.'

 

 "괜찮습니다. 방금 밥 먹었는데요, 뭐. 재혁이나 많이 먹으라고 하세요. 바로 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나는 옥상에서 내려가는 계단 문에서 전화를 끊고, 다시 리돌에게 빨리 돌아가란 말을 전하기 위해서 뒤를 돌아 보았다. 하지만 옥상 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신기하네. 한 번에 말을 알아들은 건가? 여하튼 일단 빨리 내려가야 한다. 지금 지배인은 손님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방 청소할 것은 가장 많이 나올 시간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어서 내려가지 않으면, 형우가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