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아, 나 이겼으니 너도 이겨야한다?"

"당연하지. 네가 이겼는데 내가 못 이기겠냐?"

어제 정선에서 황영조를 꺾고 온 태오의 질문에 강찬이 긴장되지만 자신있는 어조로 말했다. 태오가 참여한 경기는 제6경기로, 제9경기인 강찬의 경기는 그 다음날이었다.

강찬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고속도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남원에서 제부도로 가는 도로가 마치 황야한 세상 속의 고독한 길처럼 느껴졌다. 시련의 고속도로 곁으로 검은 새들이 날아갔다.

 

강찬이 제부도에 도착하고 보니 내부 인테리어는 대전의 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한쪽에 있는 대기실과 대회가 이루어질 곳으로 연결된 복도, 그리고 자판기 정도로 예전과 거의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강찬이 유일한 소통의 대상인 연재와 전화를 걸었다. 통화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마음의 위안은 어느 정도 되었다.

 

"제9경기 추강찬 선수와 홍시양 선수 입장해주세요."

사회자가 경기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경기장 또한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대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테이블과 요리도구와 식재료들, 그리고 시간을 잴 타이머 등이 있었다. 사회자가 인터넷을 생중계될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제2회 전국학생제육력대회 102강전 제9경기의 주제는 파워입니다. 이번 경기는 다른 102강전 대결들처럼 제육볶음 기본재료들로만 요리하셔야 합니다. 그럼 경기를 시작합니다!"

 

대회가 시작되었다. 제육볶음 기본재료들로만 조리하는 것은 어찌보면 각종 식재료들을 주고 고르라고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해 보일 수 있다. 표고버섯과 목이버섯의 구분처럼 각종 식재료들의 성질을 알아야해서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한된 식재료로 승부해야한다는 것은 기본 6재료(돼지고기, 대파, 양파, 간장, 마늘, 고춧가루)와 필수양념(고춧가루, 다진마늘, 간장, 설탕), 즉 7가지 재료들로만 싸워야 한다는 소리이므로 기본기를 최대로 발휘해야 하는 대회 방식이다.

 

바로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집어 먹기 좋게 썰었고 설탕을 살짝 뿌려주었다. 맛술, 생강가루, 후추 등을 쓰지 못하는 대신 다른 재료로 밑간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법을 걸어주었다. 설탕의 기본 원리는 먹는 즉시 장의 상부에서 소화효소 인벨타제의 작용으로 단기간에 흡수되어 핏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연소되어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될 때 에너지가 발생하는 것이다.

"케르도 아치브 시우가로 베이스 스토로(설탕의 기본성분을 강하게 활성화)"

그 다음으로 고춧가루, 간장, 설탕, 다진마늘을 적절히 섞어주었다. 고추는 비타민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좋으며, 마늘은 알리신이 비타민 B1과 결합해 알리티아민이라는 성분으로 바뀌면서 비타민 B1의 흡수를 돕고 이용률도 높여 도움을 준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케르도 아치브 수안 알리신 체이비타민이(마늘의 알리신의 비타민 B1과 결합하는 성분 활성화)"

"케르도 아치브 페파 비타민(고추의 비타민 활성화)"

"케르도 아치브 시우라로 베이스 스토로"

이제 채소를 썬다. 양파는 최대한 얇게, 대파는 적절히 잘라서 길게 이등분한다. 여기에 위와 같은 이유로 고추도 넣어주었다. 양파는 황화아릴 성분이 체내에 들어가 알리신으로 변해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대파는 알리신과 비타민 C 등이 피로회복을 돕는다.

"케르도 아치브 다이파 알리신 하그 비타민씨"

"케르도 아치브 위르벨 아릴설피드"

 

그러나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줄만 알았던 그 때, 일은 일어났다. 추강찬의 주요 약점 중 하나인 제삼력이 하필이면 그 순간에 컨트롤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새어나온 마법은 기존의 마법과 함께 양파로 흘러들어가 스며들어버렸다. 강찬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계속 제삼력 트레이닝을 했는데도 이상한 마법이 나간 것이다. 그것도 심지어 혈압 감소. 알리신은 일산화탄소를 배출해 혈관의 강직성을 떨어뜨려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데, 뇌졸중 치료제라면 또 모를까 파워 포션에는 전혀 관계 없는 마법이었다. 오히려 파워를 더 떨어뜨릴 녀석이었다.

강찬은 바로 요리를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대파를 잘라 무효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타이머의 남은 시간을 보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찬은 할 수 없이 그 뒤의 솜씨를 최대로 발휘해서 무마를 시도했다. 파워를 강조하기 위해 설탕도 뿌려주고 육즙을 가두기 위해 불을 최대로 맞추었다. 그러나 잘못된 마법에 걸린 양파는 강찬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강찬이 만족스럽지 못한 혼란스러움 사이에서 불을 끄고 플레이팅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자리를 정돈했다. 요리가 끝나자 남은 시간은 57초. 시간이 넉넉했으면 또 모르겠지만 이번 경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종은 울려퍼졌다.

 

심사위원들이 두 참가자들의 제육볶음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강찬이 몹시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가 잘 나오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이 대회에서 지면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 내가 우승을 해야 세계를 구해낼 수 있다.'라고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심사위원들이 쓸데없이 혈압감소가 들어간 강찬의 제육볶음을 보고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게다가 그걸 무마하겠답시고 설탕을 조금 더 많이 넣어버려 심사위원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번 대결은 홍시양 선수의 승리입니다!"

카메라는 강찬의 상대편 선수를 비추었다. 홍시양은 화면 안에서 순수하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세계에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기면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른 채.

강찬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고 떨렸다. 그 여학생들의 수작이 아닌, 자기 자신의 실수로 인해 자멸했다는 좌절감과 세계가 망할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죄책감이 그를 감쌌다. 자신의 잘못을 그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비통했다. 이제 더욱더 그녀들을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빛은 그렇게 훨씬 약해지고 멀어져갔다.

 

강찬은 그대로 퀭하게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머리속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에도 그는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