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Knechtschaft dauert nur mehr kurze Zeit

예속은 오래 못간다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하일 히틀러! 오늘은 1962년 1월 1일, 현재 시각은 06시 00분입니다. 오늘부터 새해, 1962년이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는 총통 각하의 궁극적인 목표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와 질서를 보장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계속 올바르게 처신해서 이러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해주시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이어서 총통 각하의 신년 축사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료샤가 다음 장을 읽어 내려갔다.


"체자리는 자기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슈호프가 들어온지도 모르고 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하-123번 죄수이다. 전쟁 중에 끌려간 굴라그에서부터 세상이 뒤집어진 뒤에도 수용소 생활을 이십 일 년째 하고 있는, 근육이 굵은 사람이다. 지금 그는 죽을 먹고 앉아있다..."


"바체카! 그렇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안드레이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다.


안드레이는 전쟁 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선동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지금은 겁많은 노인네일 뿐이다. 그래도 이곳에 몇 안되는 교양 있는 사람들-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중의 하나라, 앞으로 빵 배급계 부원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체카는 붉은 군대 해군의 함장이었다. 그는 해군을 끝장내버린 무르만스크 공습을 기억한다. 독일군의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폭탄을 비처럼 퍼부었고, 항구는 지옥이 되었다. 그도 한때 부하들에게 실컷 매질을 해줬겠지만, 소련이 패망한 이제는 전투 지역에서 영원히 쫓겨나 매질을 당하고 있다.


"객관적인 측면에서는 솔제니친은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와서 보라'만 보더라도 말입니다, 천재적이지 않습니까? 학살당해 파묻혀진 마을 사람들의 몽타주라든가 '그 자'의 얼굴에 총질하는 장면을 보면 그렇다고 할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숟가락을 입에 가져가다 말고, 바체카가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 


"너무...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아니에요! 빵 대신 포크나 칼을 먹으라는 거나 매한가지예요! 게다가 혐오스러운 그 반전 이념이라는 것은 말이요, 파시스트 전제정치에 대한 변호로 일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붉은 군대'의 반인륜적 학살이요? 강간, 약탈, 방화요? 나치 놈들의 범죄는 어쩌고?"


예술가가 선동 작품을 찬양하고 정치장교가 정치적인 작품을 배척하는 꼴이라니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콧수염 새끼에 대해 무슨 다른 해석이 가능합니까..." 


스탈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러시아를 말아먹은 자들은 개처럼 죽었다고 한다. 영웅적으로 전사했다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선전부 요원의 표현으로는 그랬다. 


"오호라, 무슨 해석이 가능하냐구?! 그럼 '다른 콧수염 새끼'에 대해서는? 타 민족에 대한 차별과 지배, 착취를 너무나 당연시한 사상 최악의 인간이자 특정 민족 전체를 절멸시키겠다는 끔찍한 망상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러시아 문학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냔 말이오!" 


어어! 대화가 너무 위험해지는것 아닌가? 알료샤는 생각했다. 안드레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서 입을 꾹 다물고 그냥 떨고만 있었다.


"음, 음!" 함장의 말을 중단시키는 송구스러운 일이기는 했지만 알료샤는 어쩔수 없이 헛기침을 했다. 카포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 줄 알고 마냥 서 있을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바체카는,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천재라고 하는 말은 빼야지요! 보나마나 상전이 시킨 일을 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어요." 라고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 그러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솔제니친은 단순히 선동적인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말을 아끼고 삼가는 수사법을 써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한 것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천만의 말씀이오. 그 '어떻게'라는 것이 선한 것이오, 악한 것이오? 이 빌어먹을 수용소라는 곳이 저 과장된 수사만큼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약자 러시아 민중을 대변하는 도덕과 정의? 곧 절멸당할 슬라브 민족에게, 도덕과 정의요?" 바체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책상을 탁탁 쳤다. 


방 안에서 누군가 고함을 친다.


"콧수염 영감이 그래,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불쌍하게 생각해 줄 것 같아? 그놈은 충성심 말고는 아무것도 못믿는 놈이야! 그런데, 너 같은 놈한테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으냐구?"


반원들이 잠잠해졌다. 알료샤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여기서 굶어 죽을 것이다. 식량 배급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들리기에는 수용소가 곧 폐쇄된다고들 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는 한명도 없고 통나무들만 있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고? 


여기 들어오기 전 어느 수용소에서는 사람을 독가스에 질식시켜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팔 할은 옛 볼셰비키들의 선전이겠지만 독가스에 질식해 죽으면 그래도 다행이지, '더럽고 냄새나는 슬라브 족'은 무덤에 걸어 들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영하 삼십 도도 넘는 날씨에 굶어서 쓰러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알료샤는 전쟁 포로였다. 1944년 12월, 그가 속해 있던 포병 중대가 북서부 전선에서 완전히 포위되었다. 통신이 끊겼고 비행기의 식량 보급도 중단됐다. 간간이 루프트바페 항공기가 보이기는 했지만 떨어지는 건 식량이 아니라 폭탄이었다. 


부대의 병사들은 넓고 넓은 숲과 늪을 헤매다가 꽁꽁 얼어 죽은 말 시체를 녹여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탄약도 물론 한 발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몇명씩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다.


독일군은 알료샤를 소련군 포로 수용소로 보냈다. 전쟁 끝자락의 포로 수용소에는 식량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뒤에 굶어 죽는 처형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알료샤는 8일 동안이나 그곳에 갇혀있으며 영양실조로 이가 다 빠지고 굶주려 죽을뻔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전쟁이 끝났다. 스탈린이 처형된 것이었다. 이후 여러 수용소를 옮겨 다니다 이곳으로 보내졌다.


"내가 돌아오면 아내가 나를 염색가로 만든댔어. 그게 아내의 소망이라고 했어. 그렇게 되면, 아내 혼자 힘으로 꾸려온 궁색한 생활도 면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도 게토의 실업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고, 금세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두막도 헐어버리고 새 집을 지을수 있겠지."


그러나 알렉세이 프로코피예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알료샤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얼마나 되어야 포로들이 풀려나게 될까 생각해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젠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 다음에는 여기서 풀려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된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쟁은 끝났고, 평화와 질서가 찾아왔다. 하지만 수용소에는 죄수들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독일군부터 지배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며 자신과 같은 죄수들을 괴롭히는 카포들... 온갖 인간 종류들이 비참하고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알료샤는 성에가 낀 방에서, 때묻은 얇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서 생각한다.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중노동과 굶주림, 추위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 바깥에서의 삶이 과연,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나는 잘 모르는 일이야. 내가 자유를 그리워한것은 오직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희망에서였는데, 집에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는 것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