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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긴 에스컬레이터가 벽마냥 앞에 우뚝 섰지만 난 바로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동라면, 용우동…… 1층에 이렇게 국수 집이 많은 건 뒤편에 있는 집 때문일 거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뒤쪽을 돌아서자 보이는 간판은 ‘정거장 가락국수.’ 유리문에 붙어 있는 버튼을 누르자 문이 슥 하고 옆으로 밀려난다.

 “안녕하세요.”

왠지 모르게 항상 이 말부터 나온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가락국수’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A세트’, ‘B세트’를 붙일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락국수 A세트 주세요.”

하고 만다. 이 집은 세트를 시키면 통영 충무김밥보다 살짝 크고 내용물도 나름 알찬, 그래도 조그마한 김밥이 딸려 나오는데, A세트는 두 줄, B세트는 네 줄 나온다. 뭔가 고체로 된 걸 곁들이고 싶었는데 네 줄은 많을 것 같아 두 줄로 시킨 것이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잠깐 걸어간다. 식당 내부는 전체적으로 나무로 마감되어 있다. 통로 쪽은 유리로 된 벽이 서 있고, 반대편엔 ‘정거장’이라는 이름에 맞게 기차 사진, 기차를 타는 사람 사진, 기차 선로 개통식 사진 등등이 이리저리 배열되어 있었다. 그 벽에 붙어 있는 의자에 메고 있던 회색 책가방을 내려놓고, 나도 앉은 다음, 잠깐의 휴식을 취하려던 순간

 “가락국수 나왔습니다~.”

몸을 제대로 못 누인 게 안타깝긴 하지만 식사가 나왔다는데 안 갈 수가 있나. 다시 일어서서 국수를 받으러 간다.

 가락국수의 매력 중 하나는 빨리 나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패스트 푸드’라 불리는 롯데리아 같은 데보다도 훨씬 빨리 나온다. 문득 유튜브에서 본 ‘1박 2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즉 본방이 아니라 나중에 편집된 걸 봤다.) 출연자들이 (아마도 청량리에서) 정선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갔는데, 김종민만 서 있는 상태였다. 제작진이 미션을 제안한다. 기차가 제천역에 멈춰 서 있는 2분 동안 가락국수를 먹고 오면 자리에 앉혀주겠다는 것. 이걸 받아들인 김종민은 기차가 제천역에 멈춰서자 곧바로 뛰쳐나가 가락국수를 시켰다. 가락국수는 금방 나왔지만, 국수가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마셔준다 해 놓고 안 마셔서, 물을 타는 바람에…… 아니 애초에 국수 한 그릇을 2분 만에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김종민은 기차에 타지 못했고, 이것은 1박 2일 역사상 첫 낙오로 기록되었다. 나중에 어찌어찌 택시를 잡아 정선까지 갔고 택시비는 전직 천하장사가…… 음. 사족이 너무 길어졌다.

 여하튼, 기차가 느릿느릿하게 달리던 옛 시절, 가락국수는 기차에서 잠깐 내려 먹는 음식으로 유명했고, 그 때의 흔적이 남아서인지, 가락국수를 승강장에서 파는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났지만, 가락국수는 여전히 빨리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곳이 바로 여기, 대전역이다.

 작은 그릇에 담긴 단무지, 그 옆에 좀 더 큰 그릇에 담긴 꼬마김밥, 게살이 올라가고 김가루가 떠 다니며 흰 면발이 보이는 국수, 그리고 그 모두를 받치는 까맣고 네모난 플라스틱 쟁반. 옆에 있는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보일 법하게 생긴) 숟가락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 쟁반을 통째로 들고 원래 앉았던 자리로 가 쟁반을 내려놓은 뒤 가방 옆에 다시 앉았다.

 젓가락을 들었다. 먼저 흰붉은 게살부터…… 내가 혀가 둔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평범한 게살 맛이다. 애초에 가락국수가 맛보다는 역사적 배경으로 유명해진 걸 생각하면 딱히  이상하진 않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가락국수가 맛없다고 오해할 사람이 생길까봐 덧붙이자면, 맛있다. 애초에 맛이 없으면 몇십 년 장사를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특출나진 않지만 적당히 맛있다.) 다음으로 면발을 집어든다. 희고 탱탱한… 그러니까 우동 면발이다. 면발 한 쪽을 입에 넣고, 젓가락으로 잡아당기며 빨아들인다. 볼이 약간 홀쭉해지며,

 후루룩.

 나는 원래 맛을 잘 못 표현한다. 아니, 그 전에 혀가 둔감한 건지 웬만한 맛집을 가도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국수의 맛을 굳이 표현하자면, 모범적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나로서 싫어할 이유가 없다.

 후루룩.

 그 뒤로는 국수에 올려져 있던 김가루와, 초록색 나물과…… 여하튼 이 집은 언제 오든 항상 그 맛이 그 맛이다. (언제나 맛있다는 뜻이다.) 건더기를 얼추 먹고 나니 국물이 마시고 싶다. 먼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본다. 대부분은 숟가락 밖으로 잠시 폭포를 이루며 빠져나가지만 (숟가락의 존재 의의에 맞게) 움푹 패인 구석엔 국물이 남아 있다.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 

 후루룩.

 ‘가락국수’와 ‘우동’을 구별하는 건 국물의 재료라 했다. 그래서인지 우동과는 국물 맛이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이려나. 아참, 김밥. 한 줄 집어서 먹어 본다. 흔히 생각하는 큰 김밥처럼 푸짐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먹어줄 만 하다.

 김밥도 단무지도 다 떨어지고 이제 국물만 남았다. 그릇을 조용히 들고, 한 켠에 입을 댄 뒤, 그릇을 기울여 남은 국물을 넘긴다.

 얼큰하다. 분명히 차가운 것과는 거리가 먼 국물이건만 ‘시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자외선 살균기에서 쇠컵을 꺼내 물을 따르고, 자리에 돌아와 앉아, 물을 들이킨 뒤 쟁반에 내려놓고, 쟁반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갖다놓는데로 갔다.

 “잘 먹었습니다.”

 사실 대전역에 올 때마다 오늘은 뭐 다른 거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하게 되지만, 결론은 역시 가락국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홀리듯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스위치를 누르자 유리문이 옆으로 열리고, 그 상태로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까 들어왔던 길을 거꾸로 따라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 위에는 평소 그랬던 것처럼 빵집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