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블린 고기를 잔뜩 말려서 배낭에 실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숲속으로 들어갈 참이다. 

몬스터가 득시글한다고 전해지는 숲은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마을 주위의 밀밭은 모두 황폐했다. 몬스터는 역시 미개했고 농경이라고 하는 고차원적인 기술을 활용할 능력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숲은 아주 울창했고 햇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에 지리수업 시간에 독일에 있다고 하는 슈바르츠 발트에 관한 정보가 생각이 났다. 나무가 너무 우거졌기 때문에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낮에도 밤처럼 어둡다고 하는 숲! 바로 이곳이야말로 그러한 숲이다. 정적이 지배하는 곳이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몬스터라고 물리는 존재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가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어떤 몬스터가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 능력과 성향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예민한 경계심을 발동하지 않는다면 곧 죽게 될 것이다. 


한참 어두운 숲속에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이상야릇한 냄새가 맡겨졌다. 살금살금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갔다. 내 눈은 동그랗게 변했고, 순간 역겨움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울퉁불퉁한 숲, 아람드리 나무들 밑에는 수 십 구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다. 몬스터를 처치하기 위한 기사와 그를 따르는 수 십 명의 병사가 모두 몬스터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다. 


죽어 있는 몸들은 부패가 시작되었을 것이지만 푹 썩어 있지 않았다. 숲은 울창하여 햇볕이 들지는 않아 마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체의 부패를 가속화할 정도로 따뜻한 편도 아니었다. 숲의 그늘은 완벽했고 가을이 한참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서늘한 편이었다. 


나는 기사가 쓰러진 곳으로 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기사의 멋있는 장검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검보다는 적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쉬웠다. 다른 병사의 검도 모두 눈에 띄지 않았다. 짐작컨대 몬스터는 스스로 병장기를 제작한 능력이 안 되므로 죽은 적군의 노략물을 활용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방패를 비롯한 방어구들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기사의 사슬 갑옷을 벗겨냈다. 코에 가져가 보니 썩어가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병사의 몸을 뒤져서 활과 화살도 확보했다. 기사와 병사를 습격한 몬스터는 다행스럽게도 활을 다룰 줄 모르는 무리임에 틀림 없다. 이것은 다행스럽다. 나는 아직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정도로 민첩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서둘러 숲 안쪽으로 30여 미터쯤 더 걸어간 뒤 이끼로 뒤덮인 땅바닥을 파냈다. 마침 처음 출발했던 마을에서 호미와 같은 연장을 챙켰는데, 흙은 파내는 데는 아주 유용했다. 흙은 대체로 보드러운 편이었다. 흙에서는 향긋한 낙엽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는 흙으로 기사의 사슬 갑옷을 닦아냈다. 팍팍 닦아내니 그런 대로 내 몸에 걸칠 수 있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는 사라졌으며 아울러 약간 끼어있던 녹도 제거되었다. 활과 화살도 역시 흙으로 닦았다. 


10분 정도 숲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에서 크엉크렁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도 당연히 몬스터의 소리이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내 귀가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 다행스럽다. 즉시 나무 뒤에 가서 숨었다. 저 멀리에 인간을 상당히 닮은 2마리의 몬스터가 다가왔다. 초록색 피부에 숲에 사는 짐승의 가죽옷을 입고 있는 종류였다. 대략적으로 보아 인간과 비슷한 몸집에 약간 더 큰 얼굴을 가졌다. 약간 앞으로 돌출된 턱 위로는 큼직막한 입이 있는데, 아랫 입술의 양옆으로는 조그만 어금니가 콧구멍 쪽으로 솟아있다. 맷돼지는 대체로 아랫쪽으로 어금니가 자라는 반면, 이 종족은 위쪽으로 자라며, 그 어금니는 아주 큰 편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영락없는 오크족을 닮았다. 아니 이들은 바로 오크족일 것이다. 


"쉿, 인간의 피 냄새가 난다."

"뭐, 어디에 있지."


놈들은 완전히 개코를 가졌구나. 원시적인 종족일수록 후각이 발달했다는 가설이 딱 들어맞을지도 모르겠다. 후각이 발달했다면 아무래도 시각은 인간보다 약하지 않을까? 근접적에서는 시각이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까 내 가설이 맞다면 이놈들은 미세한 기술보다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전투에 임하는 녀석들일 것이다. 


오크들은 내가 숨어있는 나무쪽으로 뛰어온다. 미리 준비했던 화살 앞선 녀석의 가슴팍을 향하여 발사했다. 화살은 활줄의 강인한 탄성에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목표물을 향해 튕겨져 나갔다. 상당히 근접한 거리였기 때문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오크 한 놈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활을 버리고 장검을 손에 들었다. 


놈은 묵직한 칼을 높이 위로 치켜들더니 내 정수리를 노리고 힘껏 내리쳤다. 내 장검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떨어지는 녀석의 칼을 비스듬히 비껴막더니 슬쩍 옆으로 흘러내리게 했다.  이 동작과 함께 나는 힘껏 발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숙여 나아가면서 비스듬히 떨어진 검을 잽싸게 들어 오크의 어깨를 후려쳤다. 놈의 어깨는 깊숙히 베어졌다. 


"크엉엉"

오크는 고통의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오크를 거쳐지나가 3미터 정도 떨어져서 뒤를 돌아 오크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고통과 분노로 험상궂은 얼굴에 오만가지 인상을 다 지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통쾌함을 느꼈다.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쾌감일까? 아니면 내 기술이 그래도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흩트러진 틈을 노려 적의 무방비한 가슴을 향해 발을 내딛으면서 검을 깊숙히 찔러넣은 것이다. 놈은 한 동안 멈추었다. 녀석은 울부짖음도 없었으며 멍하니 저 멀리에 있는 커다라 나무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는 살며시 검을 빼내었다. 오크는 균형을 잃은 통나무처럼 푹 쓰러졌다. 나는 죽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쓰러진 통나무의 머리를 베었다. 


뒤를 돌아보니 가슴에 화살을 맞아 고통스러워 하는 오크가 땅바닥에 누워 발닥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녀석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하여검을 높이 들었다가 자연스럽게 내리쳤다. 댕강 경쾌한 소리와 함게 놈의 머리가 울퉁불퉁한 지면의 골로 굴러내려갔다. 


두 오크가 보유한 검 중에서 조금 더 우수한 것을 골랐고, 그것과 내가 갖고 있던 것을 비교했다. 대체적으로 보아 이 놈들의 검은 기사가 갖고 있던 우수한 품질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갖고 있는 것과는 그다지 차이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내 검이 깨지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여분으로 하나 정도는 보유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이 오크들의 존재는 여기에서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오크 마을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크는 지적인 능력이 있지만 역시 몬스터이기 때문에 용의 명령을 듣는다. 그러므로 이 오크도 내 복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적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일 것이고, 복수를 위해 밟고 가야만 하는 수순이다. 


오크는 고블린보다는 지적인 생명체인데다가 마을에서 고블린 고기를 충분히 말려 배낭에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오크의 살에는 단검을 대지 않았다. 나중에 고블린 고기가 다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오크 고기는 어떤 맛일까? 


나는 오크 정찰병이 왔던 길을 역으로 추적했다. 숲은 어두웠기에 그들이 걸어왔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허리를 충분히 굽히고 더욱 예미한 감각을 동원하면 지금부터는 더욱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차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