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해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렇게 생각만 할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드래곤을 무찌르기 위해서라도 죽음의 각오를 해야 한다. 꿈 조작업자가 중세시대의 정보를 충분히 입력했다고 했으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라고 하는 정보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일보 직전이라고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는 꿈에서 깨어나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 어차피 꿈속인데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 과감하게 용이 살고 있다는 곳으로 가자. 그곳으로 가면서 만나는 몬스터를 죽임으로써 전투 경험을 쌓아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을 테지. 


죽음을 각오하고 몬스터의 본거지로 돌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더 용기 있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리콜하임 골짜기에 용이 산다고 했다. 이웃 마을을 침략해서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몬스터 군단도 바로 니콜하임에 사는 용의 졸개들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자 정신이 번쩍 뜨렸다. 마음속에서는 뭔가 모를 뭉큰한 것이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뭔가를 했던 적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애매모호한 상황에 처해지기는 했지만 꿈 조작업자를 찾아와서 이렇게 이상한 중세시대의 꿈을 꾸게 된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앙광장의 양 옆에 서 있는 잡화점 거리로 갔다. 잡화점에는 어떤 뚱뚱한 아저씨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저씨, 니콜하임 골짜기의 지도나 그 근처의 지도가 있나요?"


아저씨는 놀라면서 내 행색을 위 아래로 훑었다. 그 얼굴에는 상당한 의심의 빛이 감돌았다. 


"여보게 젊은이, 혹시 용이 산다고 하는 니콜하임 골짜기를 말하나?"


"맞아요. 용에게 복수를 하려고요."


"젊은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게. 자녀처럼 용에게 원한을 진 사람은 많아. 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수를 갚겠다면서 용이 사는 골짜기로 가지는 않는다네. 목숨이 하나니까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지." 


"저도 지금 당장 용한테 뛰어들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어차피 용한테 가려면 그 졸개들을 만나야 할텐데. 그 졸개와 싸우면서 저의 능력을 시험할 참입니다."


잡화점의 주인은 상당히 의심스러워하는 표정은 지으면서 나에게 지도를 건네주었다. 두툼한 양피지로 되어 있는 지도였는데, 정작 니콜하임 골짜기의 광대한 지역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정보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니콜하임 골짜기 주변에 있는 여러 마을과 도성의 이름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에서 니콜하임 골짜기까지 가는 길에 대한 정보는 대체적으로 상세한 편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니콜하임 골짜기로 향할 생각을 하니 그 지형을 알려주는 지도야말도 굉장한 보물처럼 생각되었다. 지도를 잘 접어 배낭에 집어 넣었다. 


나는 5일 동안 걸어서 니콜하임 골짜기에서 비교적 가깝다고 하는 플라센 마을에 도착했다. 플라센 마을은 지도에는 나왔지만 그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황량한 바람 소리가 울리는 중에서 을씨년한 풍경을 연출하는 버려진 집들은 외로운 심정을 자아내게 했다. 몬스터가 자주 침몰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이곳에 남은 사람은 모두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버려진 여관의 빈 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밤은 깊어갔으나 늑대의 비명소리를 닮은 어떤 처량한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계속 되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문득 잠에 들었고 눈을 뜨자 창문으로 아스라한 빛이 비춰오고 있었다. 


실눈을 뜨고 멀리서 비춰오는 빛을 바라보며 일어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쥐 소리는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큰 놈의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