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도 엄청난 잔소리들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하던 일이나 잘 하라는 동어 반복적인 훈계였다. 그녀는 그나마 그 안에서 손톱만큼이나마 계약에 관한 비결이 담겨 있지 않을까 끝까지 귀를 기울였지만, 전혀 생산적인 이야기를 건지지 못하였다. 대신 공포스러운 도다라의 육체를 계속 바라보며 생긴 피로감만이 가중될 뿐이었다. 일장 연설이 끝나고, 결국 그녀는 도다라의 촉수 끝에서 거품이 일 정도로 반복해서 이야기한 '그놈의 현장 담당자'를 불러와야 했다. 집무실의 철문은 거대했고, 그 문을 여는 그녀의 모습은 그 무게에 비례해서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간신히 집무실 밖으로 나온 그녀의 표정은 족히 사흘은 못 잔 듯해 보였다.


뭐 이렇게 오래 걸렸어?”


 말을 건넨 것은 그녀의 사역마이자 집행 도구인 하얀 대낫 홀이었다. 자루 끝에 달린 두개골은 방금 전 전쟁터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형형한 안광을 흩뿌리며 달그락거렸고, 현세에서와는 다르게 둥둥 떠 있었다.그는 집무실 옆의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살짝 졸고 있던 터였다.

홀의 언제나 처럼 틱틱대는 말투는 그녀의 상할대로 상한 기분을 더욱 잡쳐 놓았다. 그래서 그녀는 홀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부루퉁하니 있는 그녀의 표정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금 어깃장을 놓았다.


밖에까지 소리가 빵빵 퍼지던데, 남들이 들으면 부부싸움 하는 줄 알겠어. 솔직하게 말해 봐. 사실 저 촉수공이 맘에 드는 거지?”


시끄러워욧!”


그녀는 그제서야 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집무실 안쪽에서 무언가 메아리치듯 울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니가 더 시끄러워!' 홀은 그 소리를 들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거 참 귀도 밝네.”


 그녀는 더 이상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무릎을 감싸 안고 주저 앉았다. 홀은 그 모습을 딱하다는 듯이 내려다 보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어 그녀를 도닥였다.


 “너무 신경 쓰지마.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언젠가 또 기회가 온다면 그 때는 지금보다는 나아 지겠지.”


 '그 때가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은 홀의 턱뼈 아래로 삭여 척추로 흘려 내려갔다. 지금은 굳이 더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계산에. 그 말에 그녀는 조금 기분이 풀린 듯, 무릎 사이로 파묻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렇겠죠?”


 “... 그렇지.”


위로로 던진 말이 아닌, 순전히 빈 말이었기 때문에 홀은 딱히 대답할 것이 곤궁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하여튼, 나오기 전에 뭐 하라고 그러지 않았어?”

 “, 맞다.”


 그녀는 홀의 지적을 듣고 다시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그 '현장 담당자'에게 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만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어느 쪽이나면, 별 일이 없어도 먼저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상대였다. 다만 그녀가 지금 전해야 될 소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간신히 무릎을 피고 일어났다. 그리고 힘 빠진 걸음걸이로 담당자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홀 또한 자리에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