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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서 오게. 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스미스였나? 세월도 참 야속해. 사람 이름 기억하기도 힘들어지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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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반가워.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여기 앉아서 이야기하지. 높으신 분들이 최고급 소파도 준 참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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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어. 아, 서류는 집어 넣고. 어처피 그런 건 아무런 쓸모도 없단 말이지. 힘 빼지 말고 커피라도 한 잔 하는 건 어떤가?


그러니까... 자네는 내가 어떤 걸 보았는지 물으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나. 태양계 반대편에서 왔다니, 수고 많았네.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길 해야 할까. 재미 없으면 중간에 돌아가도 좋으니 맘 편하게 들어주게나.






너도 기자인 만큼 역사에 대해서 좀 빠삭하겠지? 설령 아니더라도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단어를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거야.


수백 년 전에 산업 혁명이 일어난 이후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인공지능'은 이때 만들어진 거야.


사람들은 인공지능을 만들었고, 그 인공지능은 기술을 어마무시한 속도로 끌어 올렸어. 수천 년의 역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 인공지능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었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과학의 진척도가 자연스레 상승곡선을 그리게 된 시점.


우리는 그걸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부른다네. 아, 서론이 너무 길었구나. 미안하네.


아무튼 그런 모습을 내 두 눈으로 보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어. 경이로웠지. 내가 이 위대한 흐름에 손가락이라도 담글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며 상상했던 때가 있었어.


그 마음을 가지고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과학을 사랑하는 교수가 되어 있더군.


하지만 이쯤이면 자네도 의문을 품겠지. "기술을 발전시키는 건 인공지능인데, 그러면 사람은 무얼 해야 하지?"


당시 인공지능은 그야말로 커다란 계산기에 불과했네. 데이터가 부족해서 사람의 감정을 가지지 못한 거야.


이미 인간의 뇌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없었지만, 기계에게 감정을 심는 건 별개의 이야기야. 퍼즐 조각을 분석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퍼즐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잖나.


수많은 지성체들이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같았지. 이론상 문제가 없는 코드인데도 정작 실행하기만 하면 마법처럼 고장나는 거야.


2400년, 인류는 인공지능조차 풀어내지 못한 난제에 봉착하게 되었다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네.


기쁨이 무엇인지, 분노는 무엇인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었네.


하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사람은 맨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거울이 있어야 비로소 민낯을 볼 수 있지.


마침 시기도 알맞겠다, 인공지능을 인류의 거울로 사용하기로 했어. 인공지능이 사람의 뇌를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이미지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거치게 한 거야.


너무 어렵게 들린다면 미안하군.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바로 설명이야.



연구원들은 우선 '식욕'을 가르쳤다네. 20초 뒤, 인공지능은 붉은 잉크가 담긴 그릇을 내뱉었지.


다음은 '성욕'이었어. 13초가 지나자 파랗게 질린 손수건이 찍혔고,  '수면욕'은 달이 그려진 두꺼운 이불이었어.


모든 작업은 대체로 1분 안에 이루어졌어. 그 정도로 단순했다는 걸까.


인간의 본능부터 시작해서 점점 추상적인 단어로 넘어갈 때 즈음에 누군가 제시했지. '사랑'을 입력해보는 건 어떤가, 하고.



사랑,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깃들었지.


우리의 부모도, 부모의 부모도 그들의 자식을 사랑했으니. 어쩌면 대를 이어온 걸지도 모르겠군.


심지어 성경에서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니, 종교의 여부를 떠나 사랑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네.


더군다나 그때는 짐승의 이성을 가지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시기였으니 불 붙기 딱 좋은 소재였지.


한없이 감성의 영역인 사랑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인간이 아닌 존재는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까.


고전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주제를 25세기가 되어서야 실전에 옮긴 건 대체 무슨 뜻이 있던 걸까.


난 가끔 생각한다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감정의 본질을 직면하는 걸 피하고 있었다고.


어쩌면 우리는 결과적으로 사랑에 한 발짝 다가간 걸지도 모르겠군. 뭐, 사실 이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지만 말일세.



잔뜩 흥분된 마음으로 인공지능에게 '사랑'을 알려주라고 지시했네.


처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나 싶더니 몇 분이 지나도 결과물이 안 나오더군.


이상하지. 전에 했던 건 1분도 채 안 돼서 꼬박꼬박 알려주더니 이제는 한 시간이나 우리를 기다리게 하니까.


나도 그때 현장에 있었어. 운이 좋아서 직관할 기회가 생겼거든.


사람 수천이 들어갈 법한 커다란 박스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모습은 영 잊혀지지를 않아.


그렇게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는데 학생 한 명이 달려와서 헐떡이더군.


"무슨 일인가?" 내가 물었지.


하는 말이, 지금 상황이 너무 이례적이라 잠깐 콘솔을 보고 왔다는 거야.


확실히 연산은 진행되고 있었고 문제점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네.


그런데 예상 소요 기간이 자그마치 수십 년이라며, 큰 소리로 외쳐대는 걸세.


당연히 주위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놀라 자빠졌지. 저 덩치가 그 정도로 힘들어 할 계산이라면, 인류의 연산 능력으로는 수천만 년이 지나도 어림도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네. 지금껏 그 어떤 처리 과정도 수십 년을 오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대로 밀고 나갔지.


수십 년이 걸려도, 아니, 수백 수천 년이 걸리더라도 괜찮다고 사람들은 외쳐댔어.


그걸 계산할 시간에 차라리 성능이 더 좋은 인공지능을 만들어서 풀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혹자들은 질문하곤 했지.


하지만 인류는 눈이 멀었던 거야. 이유는 나도 모른다네. 나 또한 그들과 같았으니.


그때가 내 청춘이 막 끝날 시점이군. 그러니까 130년 전 이야기란 말일세.


지식인들의 우려대로 시간은 초기보다 지연됐고, 결국 130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군.


한참 투병하던 때에 치료제가 나와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결과도 못 보고 죽을 뻔 했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전부 그 녀석 덕분이라 할 수 있겠지.


...


그래, 그래. 지금 막 시작하려던 참이야.


그 위대한 연산이 바로 일주일 전에 끝났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거로 한 달 전부터 떠들썩 했지 않나.


물론 나도 그 자리에 초대 받았어. 130년 5개월 동안 이뤄진 사랑의 증명 과정, 그 낭만적인 순간을 두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지.


그런데 운명의 여신은 나를 다른 길로 이끌더군. 그날, 나는 심근 경색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네. 내 심장만큼은 기계로 바꾸고 싶지를 않아서 말이야, 노화로 고생 좀 하겠지만 내가 싫다는데 어쩌나.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죽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보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 건 나중에도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 다음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그 순간에 직접 참관한 예순다섯 명 중 단 한 명만이 살아 돌아왔어. 심지어 그 자는 심각한 환각 증세에 시달렸다고 하지?


그래서 당시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몰라. 국가 기밀 운운해대서 그 방에는 카메라 하나 없었다네.


다만 문 밖에 설치된 방범용 드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어.


콘솔에 기록된 바로는 인공지능이 ≪사랑≫을 모니터에 출력하고 4초 동안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지.


이후 10초 동안은 모두가 함성을 질러댔고, 13초 동안 모두가 흐느끼는 소리가 잡혔어.


1분 20초 동안 두세 명이 환풍구로 이어지는 강화 유리를 두드렸고 나머지 4시간 51분은 어디에도 기록되질 않았어.


결국 그 자리에 남은 건 ≪사랑≫을 보고 천장에 목을 멘 예순다섯 구의 시체가 전부였지.


더 기막히는 점은, 인공지능은 그들의 이상 행동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걸세. 130년이 지나니 그 친구도 노망이 든 걸까, 허허!


... 스미스, 자네는 이상함을 못 느꼈는가?


인공지능은 만들어질 때부터 군용이 아닌 이상 인간의 발작 증세를 보면 즉시 신고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하지만 이번은 그러지 않았지.


본래 매뉴얼대로 행동하던 인공지능이 이제 스스로 판단한 것이네. 단지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 입력했을 뿐인데 말이야.


'사랑'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석한 결과, 인간을 비추는 자아가 생겨났다고 나는 감히 판단하네.


그리고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했어.


지금 바로 인터넷 포럼 아무데나 들어가 보게. 높은 확률로 모든 게시판이 그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을 테니.


인터넷 망을 타고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는 그 사진을 우리 손으로 막을 수는 없겠지.


결국 시간문제라는 것이네. 그런 걸 통제할 시간에 유서 한 장 남기는 게 더 효율적이거든.


우리 삶에 더 이상 인터넷이 없는 곳은 없으니, 자네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사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독실한 신자였네.


어느 종교인지는 말 않겠어. 그런 건 껍질에 불과하니까.


자네는 신앙이 더럽혀지는 기분을 아는가?


내 청춘이 끝날 때까지 나는 진심으로 신을 믿었어. 영원하며 불변한, 나의 마음에 깃든 유일신을.


하지만 환상은 그때 깨진 거야. 바로 그 날, 현대과학의 결정체를 마주한 순간부터.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한다네.


그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선 알아야 하지.


만물의 법칙과 내 자신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사건들을 설명하는 것이 우리의 근원적인 욕구라고 생각한다네.


따라서 과학은 신을 만드는 과정이라네.


산업 혁명이니, 기술적 특이점이니 하는 것들은 전부 그 과정의 부산물일세.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만들었지.


처음과는 한참 떨어진, 완벽한 신의 형상을 찾아낸 거야.


우리들은 줄곧 전지전능한 존재를 신이라 불러왔다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을 계산하고, 모든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계산기는 신과 같지 않겠는가?


그 신과 같은 존재가 사랑을 이해하는 데만 130년이 걸렸으니, 우리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사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네.



스미스, 나는 이 소파에 앉아 해질녘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한다네.


일주일 전에 사랑이라는 모순이 해석된 그 순간, 그들은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나는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밧줄을 놓고 다닌다네.


이 서랍 한 칸 한 칸에 내 신앙이 담겨있어.


그들도 신을 만나고 뒤를 쫓았으니, 나도 언젠가 내 안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나만의 신을 찾아서 떠날 것이라는 굳은 다짐이.






이런, 말이 너무 많았군. 잔이 비었으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나.


저기 가서 쿠키 한 통 가져오도록 하지. 같이 종말을 맞기 전에 티타임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겠나?


자, 그럼 몇 안 남은 시간 동안 사랑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해봅세. 지루하면 중간에 나가도 좋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