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죽을 위기에 처했다. 지금 기대고 있는 이 거대한 벽 너머에 거대하고 흉측한 거인이 있다. 그저 호기심에 온 것일 뿐인데, 별 다른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여기서 죽는 것일까? 살고 싶다. 그리고 살아서 무사히 돌아간다면 당장 그 빌어먹을 노인네를 잡아 죽여버릴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거대한 나무가 있다. 계속되는 흉작에 결국 한 마리 키우던 소를 팔려고 시장에 가려 했지만 시장에 가는 길에 소는 죽어버렸다. 시장으로 가는 길에 주저 앉아 내 빌어먹을 삶에 대해 욕하고 있던 차에 후드를 깊게 뒤집어써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노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노인은 장애가 있는지 움직임이 심히 부자연스러웠다. 노인은 내게 사연을 묻고 사연을 듣자 내가 불쌍했는 지 자신이 가진 콩 몇 알을 나눠주었다. 콩을 받고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돌아오니 비참한 현실을 느끼고 받은 콩알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안개가 자욱한 다음날, 무슨 기분이 들어 콩을 던진 쪽으로 가보니, 지금 내 눈 앞에 거대한 나무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나무를 오르고 있다. 어쩌면 절망적인 현실에 눈을 돌리기 위해, 내 얄팍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아니면 그냥 죽으려고 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무한히 이어진 나무를 오르다 보니 결국 구름까지 닿게 되었다. 구름에 들어가니 나무가 젖어서 오르기 힘들었고, 거기에 몸도 젖어 추위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왜 이걸 오르는 걸까? 죽을 것이면 그냥 여기서 손을 놓으면 되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이 나무를 끝까지 올라가고 싶다. 그게 호기심이든, 오기이든, 자포자기이든. 

 

 그렇게 추위와 추락의 위험 속에 나는 구름에 벗어났다. 따스한 햇빛을 받으니 온 몸에 긴장이 풀렸다. 주변에 평야처럼 깔린 구름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밟아보았다. 푹 밟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마치 잔디밭을 밟는 느낌이었다. 나무에서 내려와 두 발로 구름을 밟아 보았다. 그렇게 나는 두발로 구름 위에 서 있었다. 신기한 기분이다. 나는 신이 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저 멀리서 집이 보였다. 대체 누가 이 구름위에 사는 지 궁금해져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은 내가 생각한 모습과 많이 달랐다. 처음 봤을 때와 외견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크기만 한 10배로 키운 것만 빼면. 너무 압도적인 크기에 묘한 경외심까지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절대로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였던 문은 손을 대자 스스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의 저편은 빛이 들지 않아 어둠 그 자체였다. 깊은 어둠에 두려움이 나를 감쌌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심스럽게 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집 안을 둘러보던 중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이 집의 주인일 것이다. 나는 발소리의 주인을 피해 조그맣게 열린 문 틈으로 들어갔다. 문 뒤에 바짝 붙어 발소리가 사라지길 빌었다. 다행히도 발소리는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안도감에 한숨을 쉬고 들어온 방 안을 둘러보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금은보화가 방 안을 채웠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보물들에 다가갔다. 집의 크기만큼 보물들의 크기도 엄청났다. 금화는 방패로 써도 됐으며 목걸이로는 집 주변 울타리를 칠 수 있었다. 거기에 반지에 박힌 보석은 내 얼굴만큼 컸다. 이 보석들만 있다면 거지 같은 현실도 단번에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들고 갈 수 있는 보석들을 챙겼다. 그렇게 두 손 가득히 보석으로 채우고 이 보석방을 나오려고 했는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거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거인은 단순한 거인이 아니었다. 온 몸 구석구석에 초점을 잃은 눈을 한 사람의 얼굴과 손 발이 달려있고 나머지 살들도 억지로 뭉쳐진 것 마냥 기괴했으며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머리대신 촉수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흉측한 살덩이 괴물의 얼굴들은 일제히 나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이윽고 모든 입에서 온갖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괴물을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중 손의 보석들이 일부 떨어졌지만, 나는 떨어진 보석들을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괴물도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려도 저 거대한 괴물은 고작 한걸음 만에 나에게 가까워졌고 이윽고 두걸음을 내딛은 후엔 그 육중한 팔을 내리쳤다. 팔을 내리치자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마냥 땅이 흔들렸고, 나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쓰러진 곳 근처에는 괴물의 팔이 있었다. 팔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끔찍한 신음소리를 내었고 그들의 팔은 나를 잡기 위해 허공에 허우적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혐오감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결국 남은 보석들도 버리고 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지금 죽을 위기에 처했다. 지금 기대고 있는 이 거대한 벽 너머에 거대하고 흉측한 거인이 있다. 그저 호기심에 온 것일 뿐인데, 별 다른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여기서 죽는 것일까? 살고 싶다. 그리고 살아서 무사히 돌아간다면 당장 그 빌어먹을 노인네를 잡아 죽여버릴 것이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나에게 콩알을 준 후드차림의 노인네였다. 노인을 보자 당장 그에게 달려가 그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이냐고, 무슨 목적이냐고, 내가 뭘 잘 못 했냐고. 내 울분이 섞인 외침에 노인은 낮은 목소리로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나는 그 노인의 목을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목을 몰랐지만 노인은 멀쩡히 웃을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순간 공포를 느낀 나는 그를 내팽겨쳤고 노인은 쓰러졌다. 노인은 다시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왜 그러냐고? 난 자네에게 콩알만 줬을 뿐이네. 그 콩알이 자란 나무에 올라간 건 자네이고. 혼자 멋대로 올라온 것 가지고 나한테 그러면 쓰나.”

 거인의 비명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아, 내 사랑스러운 피조물이 오는군. 자네가 볼 때 저 아이는 어떤가? 꽤 근사하지 않나? 아직 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완성이 된다면 지상으로 내려가 세상에 이리 저리 부수겠지.”

 그의 후드 너머에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자네도 저 아이의 일부가 되지 않겠나? 그래준다면 아주 기쁠 것 같은데.”

 후드 너머에는 끝없는 어둠과 수많은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또한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밀려오는 공포에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두 눈에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두렵다. 무섭다. 끔찍하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는 그저 소를 팔러 나갔을 뿐인데.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냐 소리쳤다.

 “그냥 자네가 내 앞에 있어서 콩알을 주었네.”

 노인의 대답에 나는 허탈한 웃음만을 내었다.

 

 “결국 나는 콩나무 너머에서 도망치듯 나왔다네. 아직 그곳에는 수많은 금은보화가 있지만, 나는 다시 저곳에 갈 생각이 없네.”

 “허튼소리 말고 그 보물들을 어떻게 얻었냐고.”

 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눈 앞의 불한당은 내게 위협을 했다.

 “말하지 않았나. 저 하늘 너머 구름 위 집에서 얻었다고.”

 “그런 거짓말에 내가 속을 거 같아? 다치기 싫으면 당장 불어.”

 “나는 사실대로 말했네. 정 못 믿겠다면 여기 이 콩알을 가져다가 심어보게나.”

 나는 말이 통하지 않자 불한당에게 남은 콩알을 주었다. 불한당은 콩알을 유심히 보더니 콩알을 가지고 같이 온 동료 불한당들에게 소리쳤다.

 “가자.”

 “너 설마 저 미친 노인네 말을 믿는 거야? 고작 이 콩이 저 하늘 너머로 뻗을 거라고?”

 “가자.”

 그의 말에 동료 불한당들은 불만을 내비치면서 내 집에서 나갔다. 저 불한당들이 모두 올라간다면 이제 백명도 채 남지 않았다.

 

 그때 노인은 나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이 보석들을 줄 테니 제물이 될 사람들을 올려 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려 보낼 때 마다 보석을 주겠다 하였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뭐든 하겠다 했고 노인은 그런 나에게 콩과 보물을 쥐어 주고는 나를 지상에 내려주었다. 처음에는 안도했다. 그 끔찍한 집, 거인, 노인. 그것들로 벗어나 다시 집으로 왔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윽고 불안함이 찾아왔다. 이미 저 하늘에는 이 세상을 파멸시킬 괴물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이 콩알들은 그것들이 결코 거짓말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결국 받은 보석을 전부 술로 바꿨다. 취하지 않으면 그날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고, 과음에 불쾌해진 속 만이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술을 사는데 돈을 쓰다 보니 결국 돈은 바닥나버렸다. 돈이 없다는 사실에, 더 이상 술을 마실수 없다는 사실에,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절망했다. 죽으려고 했지만, 그럴 때 마다 내 손 안의 콩알들이 나를 유혹해 왔다. 사람들을 올려 보낸다면, 그는 나에게 보석을 줄 것이고 보석이 있다면 술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술로 망가진 손을 덜덜 떨며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

 

 지금 내 눈앞에 수많은 콩나무 줄기들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콩알을 심은 것이다. 그들을 알까? 저 콩나무 너머에 있는 거대한 집 안에 수많은 금은보화로 사람들을 유혹해 자신의 몸집을 키우는 살덩이 괴물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괴물은 곧 다가올 파멸이란 것을. 이제 저 괴물이 완성이 된다면 이 세상은 혼돈과 죽음만이 가득 할 것이다. 이제 파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람들의 욕망이 있는 한 거인은 그들을 집어 삼키고 파멸을 앞당길 것이다. 콩나무 너머 저 새하얀 들판은 곧 붉은 석양의 색으로 물드리라. 파멸까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