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혁거세 21년에, 궁성을 쌓아 이름을 금성이라 하였으나,파사왕 22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 혹은 재성이라고불렀는데, 그 둘레가 1천 23보였다.신월성 북쪽에 만월성이 있는데 둘레가 1천 8백 38보였다.또한 신월성 동쪽에 명활성이 있는데 둘레가 1천 9백 6보였다.또한 신월성 남쪽에 남산성이 있는데 둘레가 2천 8백 4보였다.시조 이래로 사람들은 금성에 살았고, 후세에 이르러서는 두 월성에서 많이 살았다.


처음에는 고구려 백제와는 국경이 들쑥날쑥 엇갈려, 때로는 서로화친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서로 침략을 하다가, 후일 당 나라와함께 두 나라를 침공하여 멸망시키고, 그 영토를 평정한 다음 마침내 9주를 설치하였다.


본국 경계 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왕성 동북쪽의 당은포 방면을 상주라 하고, 왕성 남쪽을 양주라하고, 서쪽을 강주라 하였다.


이전의 백제 경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백제의 옛성 북쪽 웅진 어구를 웅주라 하고, 그 다음 서남쪽을 전주, 그 다음 남쪽을 무주라고 하였다.


ㅡ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리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