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정월에 송악 남쪽에 수도를 정하여 궁궐을 건축하고 3성(省) 6상서관(尙書官) 9시(寺)를 설치하였으며 시전(市廛)을 세우고 방리(坊里)를 구분하였으며 5부를 나누고 6위(衛)를 두었다.
3월에 법왕사(法王寺), 왕륜사(王輪寺) 등 10개 사찰을 수도 내에 창건하고 양경(개성과 평양)의 석탑과 묘우(廟宇)에 있는 화상들 중 없어지게 되었거나 오손된 것들을 전부 수리하게 하였다.
신사일에 3대 조상들의 시호를 정하여 증조부를 시조 원덕대왕(始祖元德大王)으로, 증조모를 정화왕후(貞和王后)로, 조부를 의조 경강대왕(懿祖景康大王)으로, 조모를 원창왕후(元昌王后)로, 부친을 세조 위무대왕(世祖威武大王)으로, 모친을 위숙왕후(威肅王后)로 각각 추존(追尊)하였다.
가을 8월 계묘일에 청주(靑州)가 귀순과 반역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여 유언비어들이 가끔 일어나므로 왕이 친히 가서 그 지방을 무마하고 드디어 거기에 성을 쌓도록 명령하였다.
9월 계미일에 오월국 문사 추언규(酋彦規)가 귀순하였다.
겨울 10월에 평양에 성을 쌓았다.


- 고려사의 소박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