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임시정부 탐사기 - 1일차와 이어짐

*기억에 따라 변질된 내용이 있을 수 있음


중국 임시정부 탐사기 - 1일차


시끄러운 핸드폰 알람소리를 듣고, 나는 비몽사몽하며 일어났다. 나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호텔 1층으로 선배와 함께 조식을 먹으러 갔다. 로비에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방 카드키를 보여주고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조식은 뷔페식이었지만 애슐X마냥 먹을 음식이 없었다. 나는 간단하게 소시지와 만두를 담아 먹었다. 소시지는 너무 짰고, 만두는 그냥... 먹을 만은 했다. 겨우 끼니를 채우고, 객실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상하이의 복수원이었다.  

가자마자 이윽고 학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복수원은 공동묘지로써, 이곳에는 중국 영화의 황제라고 불린 김염의 묘가 있습니다. 105인 사건으로 누명을 써 중국에 망명한 후로 그는 많은 항일 영화에 출연했으며. 일제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항일영화에 출현했습니다. 또한...'  

설명을 듣는 동안, 복수원은 온통 풀밭이라 모두가 벌레들에 시달렸다. 본인은 여기서 5번 이상 물림;


(중국 영화황제 김염의 묘)

 최근에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그를 기리고, 우리는 만국공묘로 이동했다. 

만국공묘에는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묘지들이 있었다. 이 묘지들은 외국인 묘지 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는 한국으로 이장되어 비석만 남은 상태였다. 근래에 들어 (2016년) 한국으로 이장된 신규식 선생의 비석 앞에서 우리는 참배를 마치고 중식을 먹으러 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 밖을 보았다. 내눈에 

초록 평야가 펼쳐졌다. 

'한국에서면 산이 보였을텐데...'

우뚝 솟은 산지가 보이는 내 망상이 스쳐지나가며 

아름다운 풍경과 교차되었다. 나는 내가 중국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이윽고 딤섬집(이름이 예상해?인가 그랬다)에 

도착했다. 

만두의 탄생지인 중국에서 만두를 맛본다는 것은 

꽤나 나에게 환상같은 것 이었다. 

(한상 차림)

나는 먼저 육즙이 배어나오는 만두를 먼저 먹었다. 씹자마자 육즙이 

배어 나왔다. 

'... ' 

'이게 뭐냐...' 

육즙은 고기맛이 느껴지지는 않고 느끼했다. 풍부했던 것도 아니었고. 다른 만두들도 입맛에 맞지 않았는데 아마 중국 만두는 만두피가 두껍기에 그랬던것 같다. 그중 새우가 들어갔던 만두가 만두피가 얇아서 맛있었다ㅎ(새우는 칵테일 새우였다) 분식점에서 파는 튀김만두가 중국에서 파는 만두보다 맛있다는 사실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중식을 먹고 난 뒤에 

우리에게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딤섬집이 있던 그 거리는 예원 옛거리었다. 우리는 자유시간을 거기서 가지기 전에 선생님이 간식용으로 각자에게 흑당버블티를 사서(개인 지출이 아니라 간식비가 지원됬었다) 나눠주셨다. 

'이게 무슨 맛이야?' 

'선생님 이거 (타피오카)펄 맛이 좀 이상한데요?'

버블티 맛은... 밀크티 특유의 풍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펄이 쫀득하기는 커녕 

뭉쳐서(...) 나오지 않았다. 자유 시간동안 나는 선배들과 딤섬집 아래에 있는 기념품 점에 있었다. 

상해 풍경을 찍은 뱃지와 부채들을 팔고 있었다. 

근데 나는 그런게 계륵이라고 생각해서 사지 않았다(선배들은 1개씩 샀음). 

자유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예원으로 갔다. 예원 입구에는 어느 탐방지들과 다르지 않게 공안이 서있었다. 수많은 문을 지나 도착한 예원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명나라의 한 부자가 지방으로 내려와 지은 대저택이라고 한다. 지붕의 화려한 장식들과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돌들이 인상깊었다.

(용의 발톱을 불완전하게 3개로 해서 왕에게 밉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만큼 대부호였다고.)


(이러한 돌들이 예원에 많았다. 사진 중 가운데에 위치하는 돌은 그중 가장 으뜸으로 친다.)

(경극 등 연극을 하는 무대.)

(천장의 형태가 신기했다.)
홍커우(뤼신) 공원으로 갔다. 우리나라에서 의열 활동으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꼽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소이자 유명한 공산단원인 뤼신의 동상이 있는 곳이라 찾은 사람이 많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윤봉길 의사 의거 장소'라고 적힌 비석이 있었다. 사실 그 비석은 원래 의거로 인해 죽은 일본군 장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때려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 세운 것뿐이고 실제로 윤봉길 의사가 물병 폭탄을 투척하신 위치는 뤼신 동상이 있는 곳이라고 추정된다고 했다. 

(홍커우 공원 의거 기념비석)
비석을 지나 더 들어가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갔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1층에 전시된 윤봉길 의사의 흉상)
기념관은 크기가 작았지만 2층으로 구성되있고(1층 전시관 2층 영상실) 내부는 에어컨이 있어서 쾌적했다.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관련 영상을 시청한 후 공원을 나오던 길이었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붓을 물에 적셔 바닥에 뭔가를 쓰셨다. 

'(한글로)위대한 윤봉길 의사 만세!

대한민국과 중국 영원하라!'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는데 중국인이라고 해서 놀랐다. 아마 중국 교포가 아니셨을까. 

다음으로 영안백화점으로 떠났다. 이 백화점에서 뭐, 독립 자금을 지원해주거나 그런건 아니고 이 백화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년사진을 찍었던 장소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년사진)

그래서 위 사진을 재현하기 위해 백화점 옥상에서 타 학교 탐사단들과 함께(일정이 어느 정도 겹친 학교들끼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 갔다. 근데 그 날 온도는 35°C에 육박하는 미친 날씨에다 옥상에서 찍는 바람에 태양광을 직사로 받으며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찍을 수 밖에 없었다. 학교 별로 1번씩 더 찍겠다고 할 때는 진짜 미칠뻔했음. 

(정작 탐사단을 소개하기 위해 신문에 쓰였던 위

 사진에는 우리 탐사단원들이 없었다)

그리고 영안백화점 앞 남경동로에서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선생님은 7:30 까지 집합장소로 모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사라지셨다. 계속 남자 선배들이랑 다니던 나는 이번에는 여자 선배들이랑 같이 다녔다. 사실 남자 선배들을 놓쳐서 그런거지만. 선배들은 먼저 잡화점을 들렸다. 뭔가 중국의 다이소라고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의 가게였다.

(잡화점)

 잡화점을 둘러보고 할게 없어지자 선배는 집합장소로 먼저 가있을 것을 제안했다.

'우리 뭐 더 할거 없는 것 같은데 먼저 애플 스토어(집합장소) 가있을까?

'ㅇㅇ 그러자.'

'네 좋아요.'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모두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것 같았던 길로 계속 가보았지만 사과마크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떡해요? 우리 길 잃어버린거 아니에요?'

'아니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럼 우리 경찰(공안)한테 물어볼까?'

'아 그건 좀...'

(미쳤다고 공안도 찍은 남경동로의 모습)

하긴 남경동로에는 공안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깔려있었다. 하지만 내가 신문부에서 홍콩 시위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을 때, 나는 폭력진압을 하는 공안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들은 말 그대로 폭력의 주체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공안을 두려워하게 됬다(입국심사대에서 본것도 한몫함).

근데 그런 무서운 공안한테 말을 거는 건 내게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Hi. Excuse me.'

'아니 언제...?'

말릴 틈도 없이 두 선배는 우리 쪽으로 걸어오던 두 공안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작했다.

'한국어로 말해서 탈북자인줄 알고 끌고가면 어쩌지? 아... ' 

내 불안한 생각과는 별개로, 선배들은 태연하게 공안에게 계속해서 길을 물었다.

'어... Where is the 애플 스토어?'

한국어와 영어가 섞인듯한 말이었지만 공안은 신기하게도 알아듣고 길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중국어로 알려주다(건물 주소를 이용해 알려주려 했던 것 같았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걸 알고 제스쳐와 영어를 이용하며 방향을 알려줬다.

'Go straight.(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Thank you. Bye!'

'야 뭐야~ 원래 우리가 가단 방향이 맞네 ㅋㅋ'

'아 나 영어로 이상한 말 할까봐 개쫄았었엌ㅋㅋ 아 근데 저 공안 좀 멋있지 않냐?'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모든 공안이 억압과 폭력의 주체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다. 적어도 관광객들에게는.  

약 200m 정도를 걷고 난 뒤, 이윽고 우리는 집합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해메고 다닌 우리는 덥고 다리가 저려 한시라도 빨리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빨리 가자;;'

'어우 더워;'

애플스토어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앉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나 중국 아니랄까봐 자리마다 사람이 있었다. 

'얘들아 우리 그냥 스토어 앞에 있는 벤치 가서 쉴까?'

"아 근데 밖은 너무 더운데 ㅠㅠ 어디 매장가서 음료 한잔 시켜서 앉아있으면 안되요?'

'그냥 나가서 앉아있으면 안돼?'

'뭐, 앉을 수 있으면 더운건 참을 수 있지.' 

나는 이 안일한 생각으로 선배들과 같이 밴치에 앉았다. 그러나 곧 이것이 끔찍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됬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모르는 것 중 하나는 담배를 사는데 나이 제한이 없어 초등학생도 흡연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금연 구역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담배냄새를 혐오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러나 결국 1분을 못 참고 나 혼자 애플 스토어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 약속한 시간에 가까워지자 나는 벤치로 나갔다. 벌써 대부분의 탐사원들이 도착해있었다. 근데 다들 이렇게 낮설고 큰 도시를 처음 와보기 때문에 길을 한번씩 잘못 들었다 했다. 하여튼 모두가 모이고 석식을 먹기 위해 애플 스토어가 위치한 상가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식당에 도착해보니 타 학교 선생님들과 탐사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대체로 맛있다는 의견이었다.

2일차 정도 되니 기본적으로 나오는 메뉴는 파악이 됬다. 계란찜, 계란토마토 국(개인적으로 정말 끔찍했다), 그리고 밥. 거기서 기억나는(그나마 나은) 음식은 치킨과 고기 조림이 있었는데 치킨은 간이 되있지 않았으나 소스에 찍어먹으니 나름 맛있었다. 

석식을 먹고 유람선을 타러 갔다. 근데 언제 유람선을 타러 가냐에 따라서 중간 크기의 유람선을 탈 수도 있었고 궁전 크키의 유람선을 탈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중간 크기 유람선을 타게 됬다 :( 

그래도 상해의 야경을 많이 찍어서 좋았다. 

근데 정작 내 사진은 못찍었다. 찍어달라는 것도 그냥 선생님한테 찍어달라 했다. 가뜩이나 스마트폰의 성능도 나쁜데..

(궁전 크기의 유람선)

(와이탄의 야경)

(저게 뭘까, 붉은색 마커?)

(무난한 상해의 야경)

(가장 잘 나온 야경)

(선배가 찍은 와이탄)




(기타 등등)

숙소(1일차와 같은 호텔)로 돌아가며 선생님과 위챗이야기를 했다. 로밍은 선생님만 하셨고 우리는 와이파이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서  우리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소통해야 했다. 우리가 당연히 위챗을 전자결제 용도로 깔은건 아니였고(중국인 아니면 사실상 못씀) 카톡이 안되면 대체제로써 사용하기 위해 선생님이 깔으라고 했다(홍콩 범죄안 인도조약 반대 시위 열릴 때였다). 중요한건 위챗을 쓰기 위해 중국 정부에 내 개인정보를 넘겨주는데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우리가 갔던 모든 지역에서 카톡은 상당히 잘됬다.

나는 호텔에 가며 선생님과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생님 제 개인정보 털려서 어떡해요?'

' 이미 입국 심사하고 비자 발급받을 때 지문까지 털렸단다. 너무 상심하지 마렴.'

'그래도 제 손으로 개인정보 바친게 너무 억울해요.'

'어차피 호텔 와이파이 접속하는 순간부터 위치 정보부터 다 털렸을거야. 너무 자책하지 마.'

'그래도...'

나는 끝없는 무기력함과 자책감을 느끼며 전체주의 국가에서 사는 것은 상당히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개같은 위챗... 

나는 호텔에 오자마자 위챗을 지워버리고 샤워를 했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시원함을 넘어 한기가 느껴지는 호텔 방으로 나올 때 기분이 참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하나 둘 씩 또 우리 방으로 단원들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려 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국 컵라면에 물을 붓고 웰치스 젤리도 까서 단원들과 나눠먹으며 행복한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