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할 일이 없어진 저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자주 들춰보곤 합니다. 그러다보면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경래 작가의 <불꽃처럼>이라는 소설을 다시 읽다가 흥미로운 것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 지역의 역사를 통틀어서 제국의 흥성망쇠는 함대를 만들 수 있는 목재를 얼마나 조달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예시로 지중해 패권의 변화 양상을 들고 있습니다. 즉, 로마와 카르타고/이슬람 세력/베네치아와 잉글랜드(이 경우에는 패권이 지중해>대서양으로 축 자체가 이동한 경우이긴 하지만)의 흥망이 목재의 수급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저 예시 중 잉글랜드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봤자 나무에 불과한 목재가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듯 합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명제는 따로 예시를 들 필요가 없이 명백해 보이지만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저 말도 약간의 비약은 있을지언정(해군을 육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목재 뿐일까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단 배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목재는 일정 정도 이상의 크기와 강도를 지녀야 했습니다.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80~100년 정도의 나이를 가진 나무를 벌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림의 6번 부분, '무릎'은 강도를 위해서 자연적으로 'ㄱ'자 형태인 나무가 필요했습니다. 즉, 자연적으로 나무의 결이 저러한 모양을 띈 나무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폴레옹 시대의 표준 1급 전열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12만평 이상의 숲을 베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척의 전함을 만들 때는 최소 3종 이상의 다른 나무가 들어갔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하는 12만평 이상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을 베어야 비로소 배 한 척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물론 이는 나폴레옹 시대의 전열함이 기준이므로 갤리선이 전장의 표준이던 지중해 연안의 시대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조건마저 다른건 아니었기에 나무 수급은 항상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가져와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선은 로마와 카르타고입니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각각 어느정도 덩치를 불린 이후, 이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던 땅은 히스파니아, 즉 이베리아 반도였습니다. 반도의 북쪽 지역이던 비스케이 만 인근 부근에서는 키가 커 건조에 적절한 나무들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을 원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베네치아와 잉글랜드, 네덜란드는 어떨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굉장히 오랜 시간 유럽 경제의 중심이던 지중해 인근 지역은 16세기 경에 그 경제적 우위를 대서양 인근에 위치한 국가들에 넘겨주고 서서히 몰락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인한 중계 무역 중단이라던가, 신항로 개척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베네치아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목재의 부족에서 이러한 사태가 왔다가 말하고 있습니다. 지중해 해양의 최강자이던 베네치아는 국토의 크기로 인한 제약때문에 전함을 만들기 위한 목재를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전통적으로 이베리아를 장악한 이슬람 세력과 교역을 하는 동시에 알프스를 그 배후에 두어 수요를 충당했습니다. 하지만 알프스는 이베리아에 비해 목재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베네치아 공화국이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하던 16세기 경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충분한 식량을 수입하지 못하자, 오스만 제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게 종교국가 에스파냐의 성질을 긁어 목재 수입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1590년 경에는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군함을 건조하지 못해 조립된 선체를 수입하고 거기에 무기만 장착하는 형태로 해군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해군을 유지하지 못한 무역국가의 최후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죠.

다음은 잉글랜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튜더 왕조의 시초인 헨리 7세 시기부터 잉글랜드는 조국의 미래가 바다에 있음을 알고 적극적으로 해군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벌목 속도가 재생산 속도보다 빨라지자 목재와 관련한 사안은 사회적 갈등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왕정복고 이후에는 발트해 인근의 국가에서 목재를 수입하기에 이릅니다. 이마저도 부족해진 18세기에는 목재를 위해 러시아와 계약을 맺을 정도였고요. 물론 발트해 인근 국가들의 중요성은 여전해서, 나폴레옹이 스웨덴에 손을 뻗으려 하자 영국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합니다(물론 그 걱정은 기우였는데, 베르나도트가 뒤통수를...).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존재입니다. 17세기부터는 자국의 전투함을 아메리카에서 건조하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서는 1/3에 이르는 군함이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미국독립전쟁 중에는 군함의 건조를 위한 목재 부족에 시달렸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대부분의 수요를 캐나다 식민지에서 충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잉글랜드에서 건조되어 전투에 나서는 군함'과는 거리가 있죠. 

이제 제가 제목에 써놓은 말이 대강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맞는 말이죠. 그리고 바다를 지배하는데 필요한 배를 만드는 나무는 땅에서 옵니다. 결국 해양 패권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목재를 얼마나 잘 수급하느냐에 달렸다는 겁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국가의 흥망이 나무 수급에 달려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 원인이 되기는 하죠. 아무튼 꽤 재미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출처

대포 범선 제국-카를로 M. 치폴라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위대한 문명의 붕괴로 보는 환경과 인간의 역사-클라이브 폰팅
불꽃처럼-조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