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뚜렷하면서도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이 다분했다.


 스무 살의 나는 대학교에 간다.

 

 중년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노트에 나름대로의 필기를 끄적인다.

 

 교수의 눈에 띌까 말까 한중간 즈음의 책상에서 나 혼자만이 종이 펄럭이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를 퍼뜨리고 있다.

하루의 수업은 대게 이런 식이다.

 

 옆자리 친구와 떠들어대는 나는 도저히 그려지지 않고그와 동등하게 국어 외의 다른 수업을 듣는 나의 모습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실인 양그 흔적조차 없이 말끔히 사라져있다.


 수업이 끝나면 대학 도서관으로 직행한다.

 

그곳에 평소 관심 있던 소설책 중 한 권을 집어와 죽을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그곳의 나는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장례까지 치러야 할 판이다.


 시간은 하염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또는나는 아르바이트를 간다.


 한적한 편의점.


 손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나는 계산대에 죽치고 앉아 작은 양장본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도 벌써 질렸는지 어슬렁어슬렁 나와 잡일을 시작한다.


 그곳의 나는 의외로 성실하다


 아마 편의점 일이 꽤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골라내고 다시 새 상품을 채워 넣는다.


 잘 짜인 수칙 따위에 옭아매 인 삶에 만족하고 있다.


 오히려 그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때 손님 하나가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거기서 상상이 끊긴다.


 사실 제대로 응대를 했는지조차 긴가민가하다.


 어찌 됐든편의점의 나는 이대로 끝난다.


 다음은 길가를 거닐고 있는 내가 보인다.


 환한 대낮으로 보이는데복권 당첨이나 주식 대박이라도 난 건지 긴박함 없이 평온하다.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공원을 걷는다


 하릴없이 걷고만 있다.


 그리 할 일도 없는지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심취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적당한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꺼낸다.


 메모지를 열어무언가 바쁘게 타자를 친다.


 그 내용이 무언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길에 오른다.


 결국 무엇이 하고 싶었던 걸까.


 방랑자인 나는 거기서 끝난다.


 다음은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 대신배낭에서 소설 한 권을 꺼내 읽는다.


 어차피 멀미 때문에 몇 글자 못 읽는 주제에라며 비웃어보지만실속 없는 짓이다.


 이내 장면은 전환되고나는 어디 경치 좋은 산 중턱에서 쉬고 있다.


 여행이라도 온 듯하다.


 그럴 시간에 돈을 벌어라.


 이번 상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심정과는 별개로상상은 멈추지 않는다.


 이로써 마음은 뇌가 아니라 심장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벤치에 앉아 배낭에 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한시 바쁘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 혼잡함과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실감과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는 우주적 관찰자가 된 듯한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인다.


 오직 나만이 이 허구에서의 실존인 듯하다.


 여행 온 나는 거기서 끝난다.


 문득 눈에 들어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정신이 든다.

 

 인터넷 강의는 벌써 몇십 분째 멈춰져 있고 갓 펴진 문제집이 이전 페이지로 넘어간다.


 턱을 괸 자세를 오랫동안 지속한 탓에 목에 통증이 몰려왔다.


 가끔 성인이 된 후의 내 모습이 상상된다.


 이는 내 자의식과는 관련 없이아마 공부를 거부하는 심리 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곳에서의 나는 너무나 심심하고지루하며지나치게 건전한 자세뿐이다.


 또한 실제로는 해보지 않은아마 평생 하지 못할 것들이 섞여 있어 그저 내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픽션에 나를 대입하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목을 풀기 위해 고개를 한 바퀴 돌렸다.


 책장에 진열된몇 달 동안 펼쳐보지 못한 소설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은 픽션 없는 세계에서의 불치병일지도 모른다.